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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우리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어렵고 긴 터널을 지나 겨우 얻은 직장으로 향하는 길인데도 말입니다. 이대로 다닐 수도, 사표를 낼 수도 없는 진공 상태 속에서 오늘도 억지로 출근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걸까요? 직장인의 삶을 진단해봅니다. [편집자말]
이제는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그날, 팀장님은 내게 별말을 하지 않았다. 앞으로 뭘 하려고 그러느냐, 어디 갈 데는 있느냐, 공부를 하려고 그러느냐 등등의 말을. 대신 웃으며 본인이 어렸을 적 꾸었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릴 적 팀장님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고 너무 충격을 받았던 나머지, 그 충격의 에너지를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고 다른 공책도 아닌 바로 그 <죄와 벌> 뒤표지에 뒷이야기를 이어 적어 내려갔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내게 들려줬다. 지난 6년간 함께 핸드폰을 만들던 공대 출신 팀장님과 나는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책에 대해, 꿈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 했다.

팀장님과 이야기를 하며 나는 지난 회사 생활을 돌이켜봤다. 그리고 그 회사 생활이 하고 싶어 안달이 났던 대학생 시절도. 학점을 높이기 위해, 토익 점수를 만들기 위해, 필기시험 합격을 위해, 면접을 위해 쏟아 부어야만 했던 그 많은 시간들.

눈물 끝에 '쟁취'한 직장

거듭된 낙방 끝에 취업에 성공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거듭된 낙방 끝에 취업에 성공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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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실패했다는 메시지를 연달아 받던 어느 날, 나는 엄마랑 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렸었다. 자다가도 울었던 그 날, 그래도 계속 시도해야만 했던 그때. 그러다 받은 '축 합격' 메시지. 경사가 났다며 기뻐하던 부모님과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회사 신입사원 연수에서 만난 나와 내 동기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쁘게 하루하루를 즐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8살 나이에 학교에 들어가 산수를 배우고, abc를 배우고, 바른생활을 배우고, 탐구생활을 배웠던 이유가 바로 이 순간에 있었다는 것인지도 몰랐다. 긴 시간 달려왔던 우리들은 마침내 결실을 봤고, 신입사원 연수 2개월 동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뿐한 기분으로 내일을 맞을 수 있었다.

그리고 끝. 두 달이 지나자 이제 나는 더는 학생도, 연수생도 아니었다. 회사를 위해 이익을 내줘야만 하는 회사원이 됐다. 유럽향 휴대폰 소프트웨어를 담당하는 부서로 발령 난 나는 아주 간단한 것부터 조금씩 복잡도를 높여가며 일을 배워 갔고, 학교생활과는 판이한 회사생활에 때론 짜증을 내고, 때론 분노하다, 나중에는 체념했다. 마지막으로는 기를 써서 어떻게든 적응을 해냈다.

그간 내가 맡았던 휴대폰이 몇 개였는지를 기억할 만큼 일에 애정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재미없지는 않았다. 일의 양에 짓눌려 싫증이 난 적이 더 많긴 했어도, 때로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하는 '몰입'을 경험하기도 했고, 집중해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되어 있었던 적도 있었다. 몇 개월을 야근한 끝에 마침내 세상에 뿌려진 '내' 휴대폰을 보며 마음 뿌듯했던 적도 있었다.

단체 회식은 싫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끝내고 술 한 잔 기울이는 시간은 좋았다.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보다, 회사에서 만난 동료들이 더 친밀하게 느껴졌다.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던 사람들. 전날 함께 야근을 하고, 아침에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본인의 피로를 풀기 위해, 다른 사람의 피로를 덜어주기 위해, 쓸데없는 농담을 하고, 웃고, 애써 씩씩한 척하던 사람들.

회사 밖의 삶, 거기 있는 사람들, 입사하기 전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는 점점 더 멀어졌지만 나는 괜찮다고 느꼈다. 회사 안의 삶, 여기 있는 사람들, 현재를 함께 보내는 사람들과 점점 더 긴밀히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대체로 괜찮았던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회사 생활이 힘이 들 땐 나의 온갖 짜증을 신나게 받아줄 동료들이 곁에 있었고, 웃고 싶을 땐 나보다 더 신나게 웃어줄 동료들이 곁에 있었다. 함께 밥 먹고, 일하고, 무엇보다 나만큼이나 힘들어하는 동료들이 주위에 가득했기 때문에 나는 대체로 괜찮은 것 같았다. 보통의 삶이었다. 보통 다들 이렇게 살지 않나.

"너는 무엇을 원하니?"... 어느 날 찾아온 혼란

내 마음을 들여다 보자, 괜찮다고 여겼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보자, 괜찮다고 여겼던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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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뭐랄까,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뒤표지에 까맣게 써내려간 팀장님의 글쓰기 같은 것 때문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간 아이가 품고 있던 마음 같은 것 때문이었다. 그래, 마음. 내 마음. 내 마음이 이끄는 삶. 내 마음이 이끄는 인생. 그 때문이었다.

마음, 삶, 인생….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이고, 그래서 순진해 보이는 이런 단어들이 스물아홉 살 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하나. 그간 내가 해왔던 굵직굵직한 선택들엔 한 번도 내 마음이 개입돼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선택들만 해왔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내 마음을 아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었다.

"너의 마음이 어떠니?"
"너는 무엇을 원하니?"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니?"
"어떻게 살면 행복할 것 같니?"

나는 살면서 이런 질문을 몇 번이나 받아봤던가.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던가. 그리고 이런 질문들에 답을 해본 적이 있던가. 진실하게, 간절히,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던가.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대체로 괜찮다 여겨지던, 그러니까 어쩌면 괜찮지 않았지만 적응되어 괜찮다 여겨지던 회사 생활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적응한 생활 이면에 감춰져 있던 내 마음속 공허함을 만날 수 있었다. 동료들과 나누는 술 한 잔, 농담, 웃음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던 그 뻥 뚫린 마음을.

그리고 그때 또 하나의 사실을 알았다. 내 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죽고 싶다고 바라본 적은 없다. 하지만 가끔 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지금은 건강하게 잘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나 또한 죽으리라는 사실 말이다. 그게 당장 내년이 될 수도, 60년 후가 될 수도 있다.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꽤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마음이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되자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두렵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꼭 한번은 거쳐야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 같았다. 퇴사한 그 다음 날 아침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마치 오래된 습관에서 막 벗어난 듯 몸과 마음이 가뿐한 아침이었다. 마치 어제도 이렇게 일어났던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아침이었다. 그 날 나는 세상이 두렵지 않았다. 자신만만해져 있었다. 무언가 진짜 삶이 시작되는 것 같았다.


태그:#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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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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