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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포조선 KTK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지난 19일부터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여기서 밤 샐 겁니다 현대미포조선 KTK 하청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지난 19일부터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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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여기 왔는데 경찰이 쫙 깔리고 난리 났어요. 우리 몇 명 노숙농성하러 여기 오는데 경찰이 때로는 많이 오더라고요. 민생치안 어디 가고 떼인 임금 달라는 우리를 이렇게도 밀착 탄압하는지 모르겠어요."

지난 19일 오후 6시경 버스 타고 지나는 길에 어디서 많이 보던 노동자들이 울산광역시 현대중공업 공장 정문 앞에 앉아 있어서 가보았습니다. 그들은 현대미포조선 하청인 KTK선박 노동자들이었습니다. 128일간 현대미포조선 정문 앞에서 원청사를 상대로 "먹튀폐업으로 떼인 임금 지급하고 원직복직 시켜달라"며 노숙농성을 벌이다 아무런 소득이 없자 '큰 집' 격인 현대미포조선 대주주 정몽준씨를 상대로 노숙농성을 이어가겠다는 겁니다.

현대중공업 퇴근시간이 되니 10여 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모여 집회를 시작했습니다. 집회는 현대중공업이 보이는 길 건너에서 열렸습니다.

"지나가는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동자 여러분. 오늘도 일하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는 현대미포조선 KTK선박 하청노동자들입니다. 우리는 현대미포조선 정문 앞에서 128일 동안의 노숙농성을 접고 현대중공업 앞으로 왔습니다.

우리가 '먹튀폐업' 당한 지 5개월이 되었지만 허수아비 사장하고는 협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씨와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판단 아래 오늘부터 미포조선 큰집 격인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미포조선 먹튀폐업 하청노동자들은 즉석에서 호소문을 써붙이기도 했습니다.
▲ 정몽준은 체불임금 해결하라 미포조선 먹튀폐업 하청노동자들은 즉석에서 호소문을 써붙이기도 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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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포조선 하청업체인 KTK 선박은 지난 4월 11일 업체 폐업 공고나 서류로 하는 절차도 없이 80여 명의 직원에게 카톡으로 '공구 반납하고 퇴근하라'는 문자만 남기고 갑자기 폐업했습니다. KTK 사장은 지난 7월 중순 구속됐다(관련기사: 문자로 폐업 통보한 현대미포조선 하청 사장 '구속').

폐업 당한 노숙 농성자가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땐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카톡으로 공구 반납하고 집에 가라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동안 일했던 우리 임금은요? 땀 흘려 가면서 열심히 일했는데 3월 임금하고 퇴직금 한푼도 안 주고 고용보장이나 근속승계 같은 기본적인 노동자 생존권까지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 아침에 실직돼 버렸잖아요. 너무 억울하고 열 받아서 저는 물러설 수가 없었어요. 처음에 함께 했던 많은 동료들이 다른 일자리 찾아 떠나기도 했지만요. 여기 모인 동료들은 모두 저와 같은 심정일 거예요. 완전 '먹튀폐업'이잖아요.

우리 업체 사장이 뭐라는 줄 아세요? 현대미포조선으로부터 2억 7천만 원 받았는데 모두 자기가 빚진 거 갚았다고 하네요.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종업원 일한 거 월급하고 퇴직금 주라고 현대미포조선에서 주었을 텐데 그걸 개인 빚 갚는 데 쓰고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오잖아요. 차라리 구속되겠다니, 뭐 그런 업자가 다 있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업체 폐업 직후 80여 명이던 노동자는 지금 6명 정도 남았습니다. 남은 하청노동자들은 현대중공업 하청노조에 집단가입하고 떼인 임금지급과 고용보장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른 하청 노동자 이야기도 들어 보았습니다.

"저는 한때 새누리당을 지지한 사람입니다. 지난 대선 땐 박근혜 후보를 찍어 주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회사 다니며 성실하게 일했는데 하루 아침에 실직 당했습니다. 현대라는 대기업에서 일했는데 임금도 받지 못하고 고용승계도 없이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번에 먹튀폐업 당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에 '먹튀폐업'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일하는 사람 임금 떼어 먹고 튀어도 되도록 제도를 만들어 놨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도를 주도하는 곳이 어딥니까? 바로 새누리당 아닙니까? 성실히 일한 죄밖에 없는 우리가 왜 이렇게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나야 합니까? 우리가 쫓겨난 일자리, 현대미포조선 안에 없어졌나요? 아닙니다. 다른 업체 다른 사람이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 굴지의 대기업에서까지 '먹튀폐업'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저는 너무 억울해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내 땀 흘려 번 돈 받을 때까지 또, 고용승계와 근속승계가 되어 복직할 때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경찰은 오자마자 폴리스라인부터 설치했습니다.
▲ 이 선을 넘지 마시오? 경찰은 오자마자 폴리스라인부터 설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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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일 동안 미포조선 앞에서 하던 노숙농성을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시작했습니다.
▲ 현대중공업 정문 길 건너 공원 앞 노숙농성 128일 동안 미포조선 앞에서 하던 노숙농성을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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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 정문 밖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런 풍경은 오후 5시 이후 7시가 넘을 때까지도 이어졌습니다. 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들은 현수막을 들고 서있었습니다. 간혹 지나가는 노동자들이 "수고한다"면서 손을 들어 보이기도 했습니다. 지나가던 어느 외국인도 관심을 가지며 다가와 영문 피켓 내용을 읽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정몽준?"라며 묻기도 했습니다.

KTK선박 노동자들은 지난 17일 정몽준씨가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 출마를 선언할 때 '먹튀폐업 체불임금이나 해결하라'면서 "먹튀폐업으로 고통받는 하청노동자 문제 해결도 않으면서 피파 개혁을 논하느냐? 논할 자격이 없다"면서 서울 현대본사와 정몽준 자택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이 선을 넘지마시오'라는 플라스틱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고 집회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차량으로 노동가를 계속 틀어 놓자 경찰 여럿이 오더니 "집회 끝났으니 노동가 끄고 차량을 치우라"고 했습니다. 그 중 젊은 경찰은 경찰과 노동자가 대화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고 있었습니다. 대화하는 것까지 채증하려는 것인지 경찰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에 가야 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밤늦도록 그들과 앉아 있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노조간부들은 회의하러 가고 5명 정도 앉아 있었습니다. 경찰도 계속 주변을 어슬렁 거렸습니다. 그 와중에 현대중공업 경비가 가끔 길을 건너와 농성장 주변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늦은 밤 저는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비온다고 하던데요. 걱정이 앞섭니다. 하루 빨리 해결되어 모두 체불임금 지급받고 다시 현대미포조선으로 복직되기를 바랍니다.

"여기가 현대미포조선 큰집 아닙니까. 미포조선 사장이 해결 못하니 큰집 대표에게 우리 문제 해결해 달라고 해야죠. 우리 문제 어려운 거 아니잖아요. 떼인 임금 지급하고 일하던 곳에 복직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우린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이곳에서 농성을 이어갈 것 입니다."

미포조선 '먹튀폐업' 당한 한 노동자가 노숙농성 장소로 가고 있었습니다. 경찰 차량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 현대중공업 본관 건물 미포조선 '먹튀폐업' 당한 한 노동자가 노숙농성 장소로 가고 있었습니다. 경찰 차량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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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현대미포조선, #현대중공업, #먹튀폐업중단,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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