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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매장 CCTV가 찍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백화점 매장 CCTV가 찍고 있는 곳은 어디일까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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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판매직원들은 진상고객을 만났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고객을 직접 응대하며 받는 스트레스는 극히 일부다.

하루는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뒤늦게 출근한 매니저가 화난 표정으로 "너 하루 종일 핸드폰만 하고 있었다며?"라고 물었다. 조금 억울했다. 주문받은 옷이 창고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창고 사진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니저도 가끔 그렇게 핸드폰으로 창고 사진을 들여다보거나, 나보고 직접 사진을 찍어오라고 시키기도 했다. 나는 이런 사정을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살짝살짝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옆 매장 매니저가 보고 우리 매니저에게 살짝 귀띔한 것이다. 매장은 아일랜드형으로 사방에서 매장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벽면이 존재하는 일반적인 박스형과는 달리 어느 방면에서도 직원들을 감시할 수 있는 구조다. 사방이 뚫려 있으니 어디서든 감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옆 매장에서까지 감시할 줄은 미처 생각도 못했다. 

매장 사이 구분이 명확히 나뉘어 있지 않은 아일랜드형 매장은 '파놉티콘'이 따로 없다. 파놉티콘은 영국의 철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으로,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모든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형태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시설이 감옥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한다.

18세기 감옥과 21세기 백화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 등 뒤에도 눈이 있다는 말은 사실 여기서 나온 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개방된 구조 때문에 고객들이 매장을 가로질러서 이동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방에서 매장을 드나들기 때문에 그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항상 태도를 신경 써야 한다. 그만큼 높은 긴장감이 유지된다.

백화점에서는 이러한 감시의 시선으로 직원들의 행동을 통제한다. 그런데 그 중에는 쓸데없는 것들이 많다. 히터 바람 때문에 부르트는 입술에다가 입술보호제 한 번 바르는 것조차도 매장 안에서는 허용이 안 된다. 그나마 박스형 매장에서는 사각지대에 숨어서 재빨리 바르면 그만이지만, 아일랜드형 매장에서는 그나마도 어렵다. '뒤'가 없기 때문이다.

입술보호제를 바르는 일이 고객에게 무례한 행동인 것인지 보기 안 좋은 모습인 것인지 혹은 영업에 방해가 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건조한 곳에서 말을 많이 하다보면 자연스레 입술이 금세 건조해지게 된다. 그러나 명찰을 착용하지 않았다든지 하는 사소한 부분들까지도 세세하게 감시되고 무섭게 평가되는 곳이 백화점이다.

사방으로 열린 매장... 옆 매장에서까지 감시할 줄이야

한번은 어떤 고객이 여러 벌의 옷들을 입어보면서 매장 한 편에 그 옷들이 잔뜩 쌓인 적이 있었다. 조금씩 옷을 정리하면서 응대하고는 있었지만 워낙 빠른 속도로 이 옷 저 옷을 지목하는 바람에 옷이 쌓여가는 속도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 고객은 결국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떠났고, 나는 쌓인 옷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근처 행사장에서 우리 매장의 옷을 구경하는 고객이 눈에 들어왔다. 매니저가 자리를 비운 상태였으므로 내가 급히 행사장에 가서 옷 한 벌을 팔고 돌아왔다. 매장에 돌아오자마자 잊어버리기 전에 판매내역을 작성하려는데, 때마침 돌아온 매니저는 "매장을 엉망진창으로 해놓고 다닌다"라고 화를 냈다.

알고 보니, 내가 잠시 행사장에 다녀온 사이에 백화점 관리자가 매장 상태를 보고 곧바로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나에게 직접 말 하지 않고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매니저와 나 모두에게 무안을 준 것이다.

감시는 CCTV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간혹 고객들은 피팅룸 쪽 천장에 CCTV가 있다며 불안해하는데, CCTV가 향하는 곳은 직원이 서 있는 계산대다. CCTV는 도난사건 예방보다는 노동자 감시와 통제를 위한 것이다.

일명 '미스터리 쇼퍼'라고 불리는 암행감시단이 진상고객 행세를 하며 직원들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임무를 부여받지 않은' 일반 고객들도 노동자를 감시하는 무서운 존재다.

백화점에서 안내판을 통해 상품할인을 알릴 때 거기에 있는 모든 상품이 다 그만큼 할인한다는 뜻은 아니다. 판매되는 상품들 중 특별히 할인폭이 큰 상품을 전면에 내세운 것뿐이다. 아마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등에서 이런 홍보문구들을 자주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알 만한 사실일 것이다.

한번은 어떤 50대가량의 여성이 매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다가가서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 고객은 "됐어요"라고 말하더니 "여기 걸려 있는 옷들이 전부 40% 할인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그 고객이 가리킨 안내판에는 빨간 글씨로 크게 40%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일부품목 제외'라고 쓰여 있었다.

"응대를 잘 못하시네... 나 여기 매니저랑 잘 아는데"

나는 모든 상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고, 할인율은 상품마다 차이가 있음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팔짱을 낀 채로 안내판을 가리키며 "그럼 이거 거짓말 한 거네? 40% 할인하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써놓으면 안 되지"라고 까칠한 말투로 말했다.

'이 사람은 시비를 걸러 왔구나!'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줄곧 나에게서 트집 잡을 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안 살 거면 빨리 가주시길 바라면서 "찾으시는 상품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응대를 잘 못하시네. 알반가 보지? 매니저는 어디 갔어요? 나 여기 매니저랑 잘 아는데"라고 말했다.

단골고객임을 은근히 눈치 주면서 협박하는 것이었다. 단골고객들이 매니저에게 고자질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듣기는 했지만 막상 대놓고 당하니 기가 막혔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고객에게, 관리자에게, CCTV에 감시당하고 평가당하는 백화점 노동자에게 마음 편한 시간이란 없다. 근무시간 내내 긴장감이 지속된다.

매장 매니저는 20대 때부터 20년 가까이 이 일을 해왔는데, 하도 사람 대하는 일에 지쳐서 휴일에는 혼자 있는 게 최고의 휴식이라고 말했다. 신경은 많이 예민하지만 고객을 대할 때는 그렇게 사근사근하고 붙임성 좋던 사람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무척 의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나 역시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것도 즐거워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백화점에서 일하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하루하루 변해갔다. 퇴근 이후에는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꺼리게 되었고, 얼굴에 웃음기도 메말라갔다.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편안해졌다.

다행히 백화점을 벗어나서 다시 이전의 나로 돌아온 지금, 오늘도 그곳에서 애써 웃고 있을 수많은 '나'에게 서글픈 마음을 담아 묻고 싶다. 저 거대하고 차가운 건물 안에서 당신들은 내내 안녕하시냐고.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백화점, #감정노동, #판매직, #감시, #파놉티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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