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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아침, 매니저는 왜 '신용카드 있냐'고 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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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신용카드 있니?"

백화점에서 일한 지 열흘째 되던 날 아침, 수화기 너머로 매니저가 물었다. 그날은 매니저가 오랜만에 쉬는 날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지만 판매 쪽으로는 경험이 거의 없었다. 아마도 매니저는 매출이 무척 걱정됐을 것이다. 그래서 전날에도 계속 매출 걱정을 했다. 그러다 쉬는 날 아침까지 전화해 매출관리를 신신당부하더니 뜬금없이 신용카드 얘기를 꺼낸 것이다.

체크카드만 사용하고 있기에 당연히 없다고 대답했다. 신용카드가 없다는 말에 매니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한번 매출에 대해 단단히 당부를 해두고는 전화를 끊었다. 만약 신용카드가 있었다면, 매니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대충 짐작은 갔다.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2013년 3대 백화점 중 한 곳의 매니저가 백화점 옥상에서 자살한 사건이었다. 

잠시 세간을 술렁이게 한 그 일은 한때 백화점 내의 갑을관계 논란을 일으켰다. 매출압박에 자신의 신용카드로 결제를 하고 또 다시 빚에 허덕이는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한다. 그러다 이내 잠잠해졌다. 개인적인 빚 부담 때문인지, 백화점의 매출압박이나 관리자의 횡포 때문인지를 따진다면 단순한 접근방식일 것이다. 그날 아침 매니저의 전화를 받고 나서 2013년 자살한 그가 왜 백화점 옥상을 마지막 장소로 선택했는지 다시 떠올려봤다.

나는 올해 1월부터 2월 말까지 백화점 여성의류 매장에서 판매직원으로 일을 했다. 당시 TV에는 백화점 주차장에서 주차요원을 무릎 꿇린 '갑질 모녀 사건'이 큰 화제였다. 1년 전까지 백화점 온라인 쇼핑몰에서 고객센터 상담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기에, 무릎 꿇은 주차요원의 마음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때마침 일하던 곳에서 해고 통보를 받으면서 평소 관심 있던 백화점 감정노동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직접 겪어본 백화점은 답답하고 우울한 곳이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하루하루 자신이 닳아 없어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도 꼭 이야기하고 싶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팔린 물건도 안 팔린 것처럼, 안 팔린 물건도 팔린 것처럼

 백화점 정기 가을세일이 시작된 1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을 찾은 고객들이 세일 품목들을 살펴보고 있다. 2014.10.1
 서울 유명 백화점의 정기세일 때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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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는 브랜드에서 백화점에 파견된 파견직이지만 개인사업자 형태로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품을 파는 만큼 수입을 챙겨간다. 얼핏 생각하면 매출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것같이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본사와 백화점 양측의 눈치를 모두 봐야 한다.

백화점에 임대료를 내는 게 아니라 상품을 판매한 만큼 수수료를 지불하는 형식이기 때문에 백화점에서는 수익을 높이기 위해 매장에 끊임없이 매출신장을 요구한다. 실시간으로 매출 현황을 예의주시하는 것은 기본이다. 매출이 좋지 않은 매장은 재계약을 하지 않거나 매장을 철수시키고, 매니저를 교체하기도 한다. 판매직원으로서 매출부진은 곧 해고위기인 것이다.

수익을 높이려는 백화점과 백화점에서 브랜드가 철수되지 않길 바라는 브랜드 본사 사이에서 매장 직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걸고 상품을 판매해야 한다. 한 곳에서 매출부진으로 직장을 잃은 매니저는 다른 곳에서도 채용되기 어렵다. 백화점 사이에 공유되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업계에서 한 번 '찍힌' 사람은 다시 같은 일을 하기가 어려운 구조라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매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을 하면서 지켜본 바로는, 매니저가 백화점과 브랜드 본사 양측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매출을 조작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브랜드 본사에는 당일 매출을 더 보고하거나 덜 보고하는 방식으로 매출관리를 한다. 이를테면 매니저는 매일 그날 판매한 상품들을 그룹웨어를 통해 본사에 등록한다. 매출은 요일, 시기, 행사 여부에 따라 들쑥날쑥하다. 매출은 낮은데 환불해가는 고객이 많은 날에는 당일 매출이 마이너스가 되기도 한다.

마이너스 매출이란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상황이다. 그래서 매출이 부진한 경우에는 오늘 환불된 상품에 대한 환불등록을 미루거나, 아직 팔리지 않은 상품을 팔린 것으로 등록해서 실제보다 매출을 늘리는 것이다. 아예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평소보다 매출이 많이 나온 날에 판매등록을 덜 해두기도 한다.

매출 낮은 매장은 철수시키거나 매니저 교체하기도

처음에는 매니저님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오늘은 이만큼만 등록하고 나머지는 밀어둬"라고 해서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다. 그러나 나중에는 알아서 '오늘 총매출은 얼마이고, 그 중 얼마를 판매등록 했다'고 말씀드리곤 했다.

이런 관행들 때문에 상품의 실제 재고와 전산 재고에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판매등록을 하려는데 전산상으로는 이미 다 팔려서 재고가 없는 것으로 돼 있는 경우도 있다. 또 환불등록을 하려는데 그 상품이 전산상으론 판매된 내역이 없어서 환불등록이 안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도 당일 매출액은 대충이라도 맞춰둬야 하므로 대신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상품을 판매등록하기도 한다. 여간 복잡한 작업이 아니다. 

그런데 백화점에는 이 방법을 쓸 수가 없다. 결제가 백화점 포스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고객이 결제를 하거나 취소하는 즉시 백화점에서는 매출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사용하는 방법이 '신용카드 가매출'이다. 결제와 취소가 비교적 자유로운 신용카드를 이용해서, 매출이 부진한 날에는 일정 금액을 결제해서 매출을 올리고 매출이 좋은 날에 취소를 하는 것이다.

물론 나중에라도 매출이 좋아져서 결제내역을 취소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문제는 이 금액이 고스란히 매장 매니저의 빚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인의 카드를 빌려서 가매출을 내고, 나중에 그 금액을 취소하지 못하면 다른 카드로 돌려막는 식이다.

일부 매장에서 어쩌다 한 번씩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백화점도 몰라서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 알고도 묵인하거나 조장하고, 때론 적극 독려하거나 동참하기도 한다. 관리자들은 백화점의 매출이 안 좋으면 책임을 져야 하고, 백화점에서는 외관상으로라도 매출이 좋은 것으로 보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벗어나기 어려운 신용카드 가매출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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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빠져들면 벗어나기 힘든 가매출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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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한 매니저나 그 동료 직원들도 수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 빚을 떠안고 있었다는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다. 실시간 매출로 평가하고, 그에 따라 압박이 들어오고, 끝내 매출을 올리지 못하면 직장을 영영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가매출은 매니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강요되고 있다.

지속적인 매출부진으로 가매출 규모가 점점 커지더라도 이미 빚을 떠안은 상황에서 직장마저 잃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가매출로 하루를 연명하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워낙 좁고 말 많은 유통업계 특성상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옮기기도 쉽지 않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특히 관리자들이 직접 가매출을 요구한다면 누구도 쉽게 거절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니저들은 브랜드 본사로부터 자신이 판매한 만큼 급여를 받는다. 매출이 좋으면 많이 받아가고, 적으면 적게 받아갈 뿐이다. 만약 백화점이나 브랜드 본사가 각자의 입장을 내세워 매출압박을 주지만 않았다면 매니저들이 스스로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서까지 매출을 조작해야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백화점 수익을 높이려고 애꿎은 노동자에게 빚을 질 것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정상일까?  

경우에 따라 차이는 크겠지만, 겉으로 화려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백화점 매니저들의 실상이란 이처럼 보이는 것과 많이 달랐다. 항상 매출을 걱정해야 하고, 관리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며,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매출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머리 아프게 고민해야 한다. 가매출로 빚이라도 점점 불어나서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외줄 타는 심정일까?

그래서 관리자들 뒤에서는 투덜대고 욕을 해도 앞에서는 웃으며 사근사근 대하는 판매직원들의 이중적인 모습이 내 눈에는 그저 슬프게 보일 따름이었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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