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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에도 그들은 땡볕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 5.1.노동절 아침. 노숙농성중인 먹튀폐업 당한 하청노동자들. 노동절에도 그들은 땡볕에서 노숙농성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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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절(5월 1일) 아침입니다. 125회 노동절이라고 합니다. 노동절 역사에 대해선 인터넷 검색하면 수두룩하게 나오니 여기선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저도 노동절 하면 세계적 노동자의 생일이자 축제의 날로 기억합니다. 대한민국은 국가권력에 의해 노동자란 말 대신에 근로자란 말로 사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지요. 아직도 법률이나 방송가에선 '근로자의 날'로 표기합니다.

의식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노동자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런 노동절 아침. 울산 동구지역 노동자는 이런 세계적 축제의 날 어떻게 보낼까요? 궁금해서 아침 일찍 동구지역에 있는 현대중공업을 지나 미포조선으로 가 보았습니다.

오전 6시 40분께 버스를 타고 현대중공업을 지납니다. 많은 하청 노동자가 출근하고 있었습니다. 동구엔 2002년 월드컵 당시 각국 축구선수들에게 연습장으로 내주기 위해 만든 잔디구장이 서너 개 있습니다. 그중 한 곳으로 가는 입구에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가족 한마당"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노동절 기념으로 축제를 하나 봅니다. 하청노동자도 함께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미포조선으로 간 이유는, 그곳에서 현대미포조선의 건조부 하청업체 중 한 곳인 KTK선박 소속이었던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어서입니다. 얼핏 듣기는 했으나 자세한 내막을 몰라 도대체 왜 그곳에서 농성을 하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미포조선엔 정문과 동문이 있는데요. 걸어서 동문에 이르니 길가에 수십여 장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습니다.

'원청은 슈퍼갑질, 하청은 먹튀 노동자만 죽는다. 현대중공업, 미포조선이 고용승계 책임져라!'
'KTK 먹튀폐업 체불임금, 고용승계, 진짜 사장 미포조선이 책임지고 해결하라!'

천막도 못치게 합니다. 비닐도 못치게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노숙 밤샘 농성중에 있습니다.
▲ 4월 20일부터 노숙농성 시작 천막도 못치게 합니다. 비닐도 못치게 합니다. 그래서 저렇게 노숙 밤샘 농성중에 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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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께 노숙농성장에 다가보니 몇몇 나이든 노동자가 현수막을 펼치고 서 있었습니다. 한쪽에선 노동가를 틀거나 방송으로 지나가는 노동자에게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옆에 서서 아침 출근시간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수십여 대의 버스와 오토바이가 출입문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대부분 출근할 겁니다. 특근하면 돈을 더 주니까요."

노동절인데 왜이리 출근을 많이 하느냐는 말에 옆에 서 있던 하청노동자가 말했습니다. 대부분 하청노동자는 오늘이 노동절인지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쉬는 날이고 돈을 더주니까 일하러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농성자들은 오전 8시가 가까워오자 출근 농성을 접었습니다. 그늘에 앉아 한 노동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 아니 왜 천막을 치지 않고 이렇게 노숙농성을 하는거죠?
"천막을 치기만 하면 경찰이 와서 뜯어 버려요. 불법이라네요. 회사에서 신고가 들어 온다네요. 그래서 이렇게 바닥만 깔고 밤새죠. 요즘은 춥지 않아 밤을 새도 괜찮아요."

5.1. 노동절이 되어도 해결 안되고 있는 먹튀폐업
▲ 현장에 들어가 일하고 싶다 5.1. 노동절이 되어도 해결 안되고 있는 먹튀폐업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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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이렇게 노숙농성까지 하게 된 거예요?
"지난 4월 11일(토) 오전 11시 30분쯤이었어요. 오전 일 잘하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단체로 카톡문자가 온 거예요. 공구를 모두 반납하라고요. 요즘 여기선 작업지시나 일정 공유를 카톡으로 하거든요. 뜬금없이 그런 카톡 받으니까 황당했지요. 예고도 없이 그날부로 바로 폐업된 거였죠.

4월 13일 월요일 출근해서 모여 있었어요. 소장이 노무사와 함께 나타나더니 회사 사정으로 폐업한다고 하더군요. 임금지급 능력이 없으니 임금 체당금 신청하라대요?"

그 노동자의 설명으론 임금체당금이란, 업체가 폐업이나 도산된 경우 체불된 임금을 국가에서 정액제로 70% 수준으로 보전해주는 것이라 했습니다. 노무사가 그렇게 설명하더라고 하네요.

"며칠 전부터 폐업 소문이 자자했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폐업될 줄 몰랐지요. 우리 임금은 물론이고 퇴직금과 고용, 근속까지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되었잖아요. 얼마나 황당합니까. 완전 먹튀폐업이지요. 마무리도 대충 하려고 했어요. 그날 2시간 대기하다가 뭔가 이상해서 원청사무실로 찾아가 업체장 나오라 했더니 이미 사라졌어요. 그럼 원청이 해결하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원청 관리자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우린 하청업자에게 다 지급했으니 업자에게 받아라. 업무방해되니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그랬죠. 어째서 당신들 책임없냐? 공정관리 당신들이 하지 않느냐? 도의적 책임져라 그랬죠. 원청 관리자는 같은 말만 되풀이 했어요."

80여 명의 KTK선박 하청노동자들은 원청사에도 가보고 원청노조에도 하소연 해보았습니다. 억울함과 생계의 절박함이 생긴 노동자의 절규는 산속 메아리처럼 흩어졌습니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힘없는 하청노동자는 현대중공업하청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자 연대의 힘을 빌립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함께 지난 4월 16일 현대미포조선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연대농성에 들어갑니다.

"우리 요구는 지극히 정당하잖아요. 임금 달라, 퇴직금 달라, 고용승계하라, 근속인정하라는 거잖아요."

시일이 지나면서 많은 하청노동자들이 떠났습니다. 노동자 권리보다 생업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남은 하청노동자는 지난 4월 20일(월)부터 미포조선 동문 앞에서 철야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안에서 농성할 때는 많았었는데 회사 밖으로 들려나온 뒤 많은 사람들이 떠났어요. 원청이 개별작업에 들어간 것 같아요. 생계문제가 걸린지라 악으로 깡으로 안 하면 못 버텨요. 생계문제냐, 노동자 권리냐 두 가지를 놓고 뭐가 우선이냐고 질문하면 뭐라 대답할수 없었어요."

저도 거기에서 말문이 막혔습니다. 저 또한 현대차에서 지난 2000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근 10여 년간 사내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정리해고 됐습니다. 이후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났음에도 가족 생계 때문에 농성을 계속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 오늘이 125회 노동절이잖아요. 노동절을 이렇게 맞이하는 기분이 어떤가요?
"법에 알아보니 업자 구속되어도 벌금 몇 푼 물면 그만이었어요. 우리같은 하청노동자는 먹튀폐업을 당해서 그동안 일한 임금도 못 받고 권리조차 박탈당해도 법의 보호를 못 받고, 원청노조가 있어도 보호 못 받는 현실이었습니다. 정규직 위주의 세상에서 비정규직으로 먹고 산다는 게 힘드네요."

옆에 있던 다른 분이 이야기 했습니다.

"슬프죠. 우리의 이런 호소가 그사람들 귀에 들리기나 할까요? 뒤이어 그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는 건데요. 노동문제에 무관심한 현실에 많이 안타깝습니다."

미포조선 동문에서 만난 KTK선박 하청노동자 중 그곳에 노숙농성하며 남아 있는 분들은 나이든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한결같이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에게 물어보니 같은 대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든 하청 노동자 한분이 문쪽을 바라보고 서있었습니다.
▲ 현장에 들어가 일하고 싶어요 나이든 하청 노동자 한분이 문쪽을 바라보고 서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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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으로 원하는 게 뭔가요?
"우린 다른 거 없어요. 우리가 일한 시간에 대해 임금을 지불하라는 것이고요. 그동안 일해왔던 기간 인정해주고 다른 업체라도 들어가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우리는 현장에 들어가 일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겐 생업이잖아요. 하루 빨리 농성 끝내고 일하러 가야해요. 하루라도 빨리 해결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아침에 업체가 폐업되어 생업에 위기를 맞은 가장들을 노동절날 현대미포조선 동문 앞에서 만났습니다. 오늘 따라 유난히도 날이 뜨거웠습니다. 땡볕에서 체불임금 받기를, 고용이 승계되기를 바라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그분들을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습니다. 길을 따라 나오는데 큰 회사 건물에 현대그룹 창업주 고 정주영 회장이 했다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게 보였습니다.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말한 '우리' 속에 하청노동자의 인생도 들어 있을까요? 정 회장이 말한 잘되는 '나라' 속에 비정규직 노동자 인생도 첨부되어 있을까요? 노동절 날 현대미포조선에서 폐업된 하청노동자를 만나고 오면서 대한민국 비정규직 노동현실을 생각하는 하루였습니다.

하청 노동자 모두 정규직 전환 시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현대그룹 창업주가 했다는 말? 하청 노동자 모두 정규직 전환 시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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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현대미포조선, #하청노동자, #먹튀폐업, #비정규직, #울산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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