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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에 반응하는 센서 조명을 조립하고 있는 한지석 작가
▲ 작업 중인 한지석 작가 소리에 반응하는 센서 조명을 조립하고 있는 한지석 작가
ⓒ 갤러리 조선/여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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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갤러리 조선은 오는 4월 2일부터 26일까지 한지석 작가의 <Silence, please> 전을 개최한다. 한지석 작가는 최근까지 추상 회화에 중점을 두고 활동했지만 초기에는 설치와 사진 작업을 주로 선보였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초기 작업 스타일로 돌아가 페인팅보다는 퍼포먼스 성격이 강한 설치 작업을 진행한다. 관객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관객이 곧 퍼포머가 되는 방식이다. '소리'를 감지하는 센서 덕분이다. 관객의 발소리, 음성이 감지되면 조명 센서가 켜지고 점멸하는 빛 속에서 관객들은 비로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관객이 직접 소리를 내야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에서 <Silence, please>라는 전시 제목은 매우 반어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 제목 속에 작가의 궁극적 의도가 숨어 있다. 사진과 페인팅은 모두 사회적 이슈를 다룬 보도자료의 일부를 확대한 이미지이다. 그러나 작가의 설명을 듣기 전에는 이 이미지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나이든 유명 여성 정치인의 손을 확대한 작업
▲ the pin 나이든 유명 여성 정치인의 손을 확대한 작업
ⓒ 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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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일련의 정치적 사건을 담고 있지만, 그 사건의 일부만을 크게 확대한 결과, 애매하고 익명성이 짙은 이미지 그 자체만 남게 된 것이다.

이처럼 작가는 일련의 정치적 사건에 관한 메타포를 굳이 관객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대신 작가는 관객 참여적 전시를 통해 언론을 받아들이는 관객들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수많은 정보들을 한 번쯤 의심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다.

예를 들어, <the pin>은 나이 든 여성 정치인의 손을 확대한 작업이다. 그러나 그 이미지를 확대한 결과 유력인사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하고 거친 손의 이미지만 남았다. 이처럼 작가는 관객들이 초신경을 자극하는 이미지 그 너머에 있는 지점을 내다보고,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의심하고 새로운 지점을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오랜만의 개인전 준비에 한창인 한지석 작가를 갤러리 조선에서 만나보았다.

- 작품에 사용된 사진이 모두 기사 사진의 일부를 확대한 사진이라고 들었습니다. 특히 세월호 선박의 일부를 확대한 작품이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을 택하신 계기나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를 비롯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세상이야기를 끊임없이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선별하고 택한 이야기(이미지)들이 아니라 타의적 환경에 의해 전해지는 경우가 대다수일 것입니다. 그 이야기(이미지)들이 큰 재난든 아니면 시시콜콜한 개인사든, 이 정보들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제공됩니다.

그 과정 속에 심각한 폭력이 숨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이미지)들의 의미는 해체되고 껍데기만이 상징화 되어 남게 됩니다. 그 상징들은 우리의 의식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이런 영향력에서 벗어나길 시도합니다. 상징화된 이미지의 한 부분을 크게 확대하거나 일부분을 잘라내어 그 상징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관찰하는 시도를 합니다. 세월호 선박의 일부를 확대한 작품도 그 일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작업 중인 한지석 작가
▲ 전시장 전경 작업 중인 한지석 작가
ⓒ 갤러리 조선/여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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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는 관객의 음성, 발소리 등 '소리'가 있어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silence, please>라는 전시 제목은 굉장히 반어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제목을 지으신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전시제목 'silence, please'는 관객에 대한 권유, 어쩌면 명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직접적 규율이나 명령이 아닌 내제된 명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꼭 지키고 따라야 한다는 어떠한 장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내제된 명령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이번 전시작품에서 내포하고 있는 의미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제된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각자 다르게 전시이미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미디어 이야기(이미지)들 속의 내제된 명령을 어떻게 소비하는가에 따라 그 본질에 접근하는 거리도 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이번 전시는 세월호를 비롯한 비극적인 이슈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소음과 불빛이 생겨날 때만 드러나는 간접적인 전달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작품으로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의 비극적 이슈를 다루는 것에 대해, 또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ilence, please>는 세월호가 뒤집혔을 때 보였던 선박 코드 번호를 확대한 이미지를 테이블 위에 고정시킨 작업입니다. 뒤의 벽면에 걸린 <knife edge>는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의 이미지를 그린 회화 작업입니다. 빛이 계속해서 점멸하면서 이미지가 사라졌다 나타나는 이미지는 누군가에게는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환기시키는 감정적인 작업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저는 참혹한 비극마저도 소비의 대상으로 삼아 그 이미지들을 무한 생산하여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약화시키는 구조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량소비를 전제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의 영향에서 저 자신도 피해갈 수 없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저에게 미술 작업은 스스로의 자각을 위한 방편이기도 합니다. 아주 섬세한 감각의 시대인 것 같지만 정작 세심하게 느끼고 바라봐야 할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조형예술이란 매체를 택하여 발언하고 있습니다."

-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와 주제이지만 함께 새로운 곳을 여행하듯 경험하는 전시가 되길 기대합니다."

세월호 선박의 한 켠을 확대한 이미지를 테이블 위에 설치한 <silence, please,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를 그린 <knife edge>
, 세월호 선박의 한 켠을 확대한 이미지를 테이블 위에 설치한 <silence, please,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를 그린 <knife edge>
ⓒ 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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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갤러리 조선, #한지석, #SILENCE, PLEASE, #여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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