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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의 사진전이 열리는 갤러리 조선 입구
▲ 갤러리 조선 입구 김병훈의 사진전이 열리는 갤러리 조선 입구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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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풍경의 계절이다. 봄바람에 흩날렸던 벚꽃잎의 향수가 채 가시기도 전에 산과 나무는 초록빛으로 풍성해진다. 봄을 지나 초여름의 무성한 녹음에 서서히 접어드는 5월, 전국의 명소들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전시가 열렸다.

김병훈 작가의 <유진> 설치가 진행되고 있는 갤러리 내부
▲ 설치 전경 김병훈 작가의 <유진> 설치가 진행되고 있는 갤러리 내부
ⓒ 여준수(갤러리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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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위치한 갤러리 조선은 오는 5월 6일부터 5월 27일까지 김병훈 작가의 유진(幽眞)전을 개최한다. 작가의 호(號)이기도 한 '유진(幽眞)'은 '존재 자체로 참되고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미지의 조합으로 완성한 진짜 같은 풍경

한국 곳곳의 명소를 담아낸 이 정교한 풍경 사진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장소가 어딘가에 실존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사실 이 풍경은 실제  풍경이 아니라 작가가 여러 시간에 걸쳐 촬영한 이미지들을 조합하여 마치 실재처럼 보이도록 만들어 낸 허구의 세계이다.

또한 사진이라는 매체는 그 특성상 이미지가 사실 그대로라고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그러나 사진 광학 렌즈의 왜곡 현상 때문에 사진의 사실적 재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작가는 광학 렌즈의 물질적 한계로 인한 시선의 왜곡에서 벗어나 다각도에서 찍은 이미지들을 정교하게 결합하여 넓은 범위의 풍경을 한 눈에 아우를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풍경사진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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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악산 산벚_전북 완주 Klcp eg003 cse2015 Pigment Print_Silk, brush and their mounting, image size 109x300 cm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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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점은 사진을 액자에 넣는 대신 족자와 병풍이라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식에 결합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을 거쳐 만들어진 병풍과 족자의 틀은 풍경사진과 어우러져 마치 진짜 풍경을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사진으로 진경산수의 맥을 이어가다

진경산수화는 조선 후기 때 유행한 우리 나라의 산천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종래의 실경산수화 전통에 남종화법이 가미되어 겸재 정선에 의해 개척된 우리나라의 전통적 화풍이다. 진경산수화는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실경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회화적 재구성을 통해 경관에서 받은 감흥과 정취를 감동적으로 구현하였다는 데 그 특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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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gment print_Silk, brush and their mounting, image size 100x207cm
▲ 임하 백운정_경북 안동 Klcp eg011 cse 2015 pigment print_Silk, brush and their mounting, image size 100x207cm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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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역시 선택된 풍경을 다각도에서 관찰하고 조립하여 실제로 우리가 넒은 범위의 풍경을 한눈에 둘러보는 것과 같이 표현하였다. 또한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흑백으로 만들어졌다. 컬러사진보다는 다소 관념적이고 무거운 흑백의 색감은 계절감과 색깔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장소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할 여지를 준다.

이렇게 다양한 조건과 시간, 공간의 층이 겹쳐 있는 작가의 이미지들은 사진의 사실성이라는 일반적 믿음을 역이용하여 관객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사진과 회화의 특성을 고루 갖춘 우리 자연과 문화유산의 이미지들은 작가의 프레임을 통해 수집되고 또 복원되어 새로운 진경산수화로 완성되었다.


신철원 삼부연폭_강원 철원
Klcp eg021 cse 2015 
Pigment print_silk, brush and their mounting, image size 257x100cm


고당 옥계폭_충북 영동
Klcp eg022 cse 2015 
Pigment print_silk, brush and their mounting, image size 257x100cm
▲ 신철원 삼부연폭_강원 철원,고당 옥계폭_충북 영동 신철원 삼부연폭_강원 철원 Klcp eg021 cse 2015 Pigment print_silk, brush and their mounting, image size 257x100cm 고당 옥계폭_충북 영동 Klcp eg022 cse 2015 Pigment print_silk, brush and their mounting, image size 257x100cm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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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훈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전시 된 작품 중 반 이상이 흑백 사진입니다. 흑백 사진은 컬러 사진보다 관념적이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데요, 흑백 사진을 선호하시는 이유를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저는 컬러 사진으로만 이루어진 전시는 거의 하지 않습니다. 흑백 사진은 형태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어 정교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컬러 사진과는 달리 관객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기기도 합니다. 컬러가 명확히 드러나는 사진은 계절과 날씨, 색감이 곧바로 인지되는 반면에 흑백사진은 흑백의 농도로만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안개나 물결, 나뭇잎의 풍성함 등 형태와 농도만을 보고 사진의 색감을 자유롭게 상상하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한 장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보통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다리시나요?

작품의 윤곽을 잡는 데는 보통 1년 반이 걸리고, 최종적으로 다듬는 데까지는 3년이 걸립니다. 저는 같은 장소를 여러 번 방문합니다. 방문할 때마다 자연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장소에 계속 방문하면서 이전에 찍었던 사진과 대조 작업을 합니다. 예를 들어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안개가 드리워져 있다면 그 안개를 조합하고, 물결의 방향이 달라져 있다면 물결의 방향도 새로 조립해 나가는 식입니다. 그렇게 수정작업을 거치다 보면 최종적으로 원하는 프레임에 도달하게 됩니다.

Q.  어떤 설명도 듣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한 지점에서 한 번의 셔터로 담아낸 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정교한 공정을 거쳐 만들었다는 의미인데요, 정확히 어떤 공정을 거쳐 만드는지 궁금해 하는 관객들이 많습니다. 사진에 문외한인 관객들을 위해 제작 과정을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저는 필름 카메라로 작업합니다. 필름은 디지털 카메라보다 거리감이 더 좋습니다. 거리감이란 디지털의 쨍한 느낌과는 다른, 자연스럽고 둔탁하고 사람에게 익숙한 느낌을 말합니다. 또한 셔터를 오랜 시간 노출시켜서 형태의 경계가 흐려지고 퍼져가는 듯한 느낌을 선호합니다. 필름 카메라로 한 장소에서 여러 장면을 찍어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재조합하고 수정해 나가는 것이 제 작업 방식입니다.

Q. 수많은 사진의 형태 중 풍경사진을 선호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에세이 사진을 주로 찍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에세이 사진의 한계를 느끼게 됐어요. 스케일이 큰 사회 이슈를 다루는 작가들이 정권의 변동에 따라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제가 50살이 되어도 계속 에세이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했고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에 무작정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게 되었고, 풍경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해 전국 명소의 풍경을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풍경에 매료되었고, 현재는 풍경 사진만을 대상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대량생산된 이미지의 천편일륜적인 서사가 아니라 관객의 이상향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우리 문화 유산을 복원하려는 역사적 고증의 성격은 아우라의 상실이라는 현대 사진의 딜레마에 새로운 논쟁거리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이미지와 정보들이 반복적으로 생산되고 소멸되는 현대 사회 속에서 김병훈의 작업은 우리 조상의 삶의 터전과 역사를 다시금 사유하게 한다.




태그:#갤러리 조선, #김병훈, #유진, #여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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