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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광화문 K문고, Y문고에 3시간째 한곳에 앉아 사람들의 동선을 분석했다. 목요일인 평일이었지만 과연 서울은 서울이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고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책을 읽는지 관찰했다. 고객들은 어떤 책에 눈을 기울이고 책을 바라보는지 메모지에 체크했다. 먼저 두가지 부류의 독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말그대로 이미 어떤 책을 살지 완벽하게 책을 정해온 case.
검색대에서 책이름을 입력하고 책을 구입하는 한 부류의 독자였다. 다른 한 부류는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여러 책을 뒤적거리곤 했다. 절대적으로 어느 독자도 서가에 꼽힌 책을 보는 것이 아니라 평대에 놓여진 책을 주로 살펴봤다. 그 중에서도 스탠드에 베스트셀러, 스테디 셀러, 분야별로 고객들의 눈에 띄게 진열된 책에 손이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래 서가에 꼽힌 책이 아니라 평대에 꼽힌 책이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러고는 평대에 꼽힌 책들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최소 5권이상은 되어야 평대에 책이 쌓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매장별로 책이 5권 정도는 전시가 된다는것!

그러면 질문은 다시 한번 간단해졌다. 어떻게 하면 평대에 우리 책을 상추 씨 뿌리듯 뿌릴 수 있을까?

머리가 팽팽하게 이륙 엔진증상을 보인다. 엔진과열 되면 냉수를 들이켜서 열을 식혀줘야 한다. 두리번 거리며 정수기를 찾던중 김디자이너와 강팀장이 뚱한 표정을 마주한다.

"머 문제있나요?""대표님, 이제 이동을 해야하는디요? 서울은 뭔놈의 주차비가 이리 비싼지, 부담시러버서리. 주차비가 비싸서 차 빼야됩니더."

열이 솟구쳐 오른다. 지금 제작비로 3천만원 쓴 책이 모두 창고서 바퀴벌레와 쥐들 틈에서 갉아먹힐지도 모르는 판이다. 주차비 3천원이 머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주차비는 내가 냅니다. 잠깐만 기다려보세요. 김 디자이너님은 여기 광고 걸린 책들 광고 포스터들 한번 다 찍어와봐요. 포스터에 트렌드가 있을 것 같으니 어떻게 대형출판사들이 광고포스터를 만드는지 보고 우리도 광고포스터를 한번 만들어봅시다. 강팀장은 평대에 깔리는 책들이 온라인에서 지금 베스트셀러순위가 어느정도 되는지 한번 봐보세요. 분명 먼가 연결고리가 있을 겁니다. 평대에 놓인 책 이름을 온란인 베스트셀러 순위안에 드는 것들 체크해봐요"

김디자이너와 강팀장은 미션 수행을 위해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잠시 머리를 부여잡고 벽에 기대 앉는다.

'아, 편두통'작가출신의 출판사 대표. 나는 작가로서는 혼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출판사대표로서 이 책을 대중마켓에 내어놓는 지금 과연 혼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이 필요했다. 전화를 건다. 대구에 먼저 내려간 김영주팀장님께 거는 SOS였다.

"김 팅장님, 오늘 Y인터넷 서점건은 죽을 제대로 만든거 같아요. 준비가 많이 미흡했습니다. MD의 선택은 이번 건은 조금 힘들듯 한데, 학교별 오리엔테이션 출간기념 스피치건은 어떻게 진행이 되어가고 있나요?"

"대표님, 경북대, 계명대에는 지금 시기가 맞지 않아서 신입생입학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 같구요, 제가 영남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연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오! 그래요? 잘되었습니다. 영남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규모가?"

"약 2500명 정도입니다.대표님, 잘 준비해서 이번 행사때 신입생들에게 책을 널리 알리는 일도 병행을 하려 합니다. 분명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내용들이 있으니까요."

경쾌한 수화기 저편의 소리를 들으니 레드불을 들이킨 것처럼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본진에서 저리 열심히 일을 이뤄주고 있는데 원정나온 3남자가 성과없이 가서 되겠는가?

"고생많아요, 내 곧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식사들 거르지 말고 일하셔요!"

2시간동안 광화문 대형서점의 구석진 카펫에 쪼그리고 앉아 공책에 날짜별로 우리 회사가 해야 할 일을 적고 있었다. 옆에는 아이들이 뛰어논다. 한아이가 집어던진 공이 하필이면 내 얼굴을 강타한다.

'아 내팔자야.' 사돈 남말 할때가 아니다. 6월에 세상에 나올 추대감님, 나의 아이 사랑이도 저렇게 공을 펀펀(funfun 재미나게)하게 차대겠지. 엄마 배도 그리 차대고 있는데. 망하면 갈길 없다. 배수진에 배수진을 쳐야 한다.

난 지금 얻어 터지고 있다. 그것은 누가 때리는 게 아니다. 겁 없이 뛰어든 출판시장의 압력에 이리저리 정신없이 얻어터지고 있다. 수없이 내 자신감을 좀 먹는 시장의 압력과 스스로에 대한 의문들에 대한 질문의 연속이다. 나는 출판시장에서 제 3의 사춘기를 맞고 있다. 스스로를 정의하고 다시 분류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이랄까. 질풍노도의 출판사 대표. 내일은 논현역에서 위치한 본사 Y문고 신규거래 및 엠디(MD)미팅이 있다.

지금 겪는 많은 감정들이 나에게 가져다 줄 궁극의 목적지는 깨달음이리라. "
우선 숙소로 복귀합시다. 내일 Y문고 신규거래 관련 서류도 정리하고 우선 차를 빼지요."주차장에서 차를 뺀다. 주차비가 2만원이 넘었다.

"대표님 주차비 정산하셔야 됩니대이."

김디자이너의 펑퍼짐한 (김디자이너는 남자입니다) 엉덩이를 걷어찰 정도로 얄밉다. 지갑에 남은 현금을 다 털고 나니 16000원. 설렁탕집에서 각혈을 했더니 헐빈한 자금사정.돈이 없을수록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누가 이야기했던가?

"저희가 출판사 거래 때문에 지방에서 왔는데 현금이 이거 밖에 없는데 주차비 좀 깍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카드됩니다."

카드.. 카드 신공을 발휘하고 광화문으로 나오니 이순신 동상이 보인다. 깜박 잠이 들었다. 나

는 지금 출판 명량해전을 치룰 판이다. 코에 들러붙은 긴 수염과 펑퍼짐한 한복을 보니 나 지금 조선시대로 타임머신 주전자를 타고 이동한듯 하다. 가진 배가 없고 적은 많다. 거기다 지난 날 불까지 나 배가 몇척 타서 없어졌다. 장수들에게 오라고 초호기를 울려대지만 김디자이너와 강팀장은 저 뒤에서 홀로 싸우고 있는 내 배를 보고있다. 화살이 빗발친다. 요리조리 피해다니다가 결국 화살에 맞고 땅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 쩌렁한 고함이 들린다.

"대표님, 일나시소.(일어나세요의 대구사투리), 숙소 왔습니다."

멍한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임시로 머물고 있는강남의 한 호텔이다. 이렇게 하루가 다시 간다. 내 서른의 치열한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김디자이너가 맥주 3캔을 어디서 구해왔는지 손에 드는데.

"오늘 맥주 한잔 합시다. 대표님, 속이 타네유"

그래, 잘 될거야! 우리의 거북선이 곧 바다에 나갈테니. 제품으로 승부를 보자!


태그:#마케팅, #촉진, #시장조사, #광화문, #평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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