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난 뒤 기뻐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원고들이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에 소속돼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와 사내하청업체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일부승소 판결이 난 뒤 기뻐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1부(정창근 부장판사)는 "원고들이 현대차에 직접 고용된 근로자임을 확인한다"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변창기 동지 이름도 이번 승소자 명단에 있어요. 불법파견 단체 소송에 참여한 조합원 모두 승소했어요. 변 동지처럼 사직서 낸 조합원은 물론이고 해고자와 2차, 3차 업체 조합원도 모두 승소했어요."

지난 18일 서울지방법원 41부 법정에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과 관련, 1차 집단소송자들을 대상으로 한 판결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엔 42부 법정에서 2차 집단소송자들이 판결을 받았습니다.

3년 11개월 만에 내린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지난 2010년 7월 22일 대법원이 판결한 대로 현대차는 불법파견 기업이고 소송자 전원이 현대차 직원이라고 인정했습니다. 더불어 약 230억 원의 체불 임금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현대차 불법파견 집단소송자입니다

재판 결과를 보러 울산에서 서울까지 간 조합원들이 '전원승소' 판결에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방송으로 봤습니다. 네, 저도 현대차 '불법파견' 집단소송자입니다. 지난 2010년 3월 중순경, 당시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을 4개월여 앞두고 저는 10여 년 다니던 현대차 사내하청업체에서 정리해고됐습니다.

15년이 다 되어가지만 '2000년 7월 3일'이라는 날짜는 잊히지 않습니다. 울산 현대자동차에 첫발을 내디딘 그때, 제 나이 36살이었습니다. 그땐 머리도 검고 몸도 팔팔했습니다. 이후 10여 년간 몸 고생, 마음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2010년에 현대차에서 쫓겨날 적엔 주름도 많아지고 흰 머리도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노조를 찾아갔습니다.

"해고자는 돼도 사직서 쓴 사람은 안 될 거야."

역시나... 희망사직서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는 강제 정리해고되기 전에 희망사직서를 썼습니다. 사직서를 쓰지 않으면 강제 정리해고되고 퇴직금이 줄어드는 등 불이익이 있을 거라고 해서 말이죠. 주변으로부터 들려오는 맥 빠지는 이야기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냥 버텨서 해고되지 왜 사직서 썼노?"라며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결국 저는 1차 소송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저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원'으로 흔쾌히 받아준 것만 해도 고마웠습니다.

1차 소송에 참여하겠다고 한 서류 제출자가 2000여 명이나 됐습니다. 그렇게 소송단 모집이 끝나고 나니 조금 후회가 됐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지인 한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모르니 한 번 소송에 참여해 봐.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아내와 의견을 나눴습니다. 아내는 60여만 원을 빌려와서는 소송에 참여해 보라 했습니다. 집단소송 변호인단은 2차 소송자를 모집했고 저도 접수했습니다.

"기본 소송비용이 110여만 원인데요. 변창기씨 같이 사직서를 쓴 경우는 어찌 될지 모르니 우선 절반의 비용으로 참여해 보시죠. 나중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승소하면 그 때 나머지 비용을 주시면 됩니다."

소송 접수를 맡은 분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2차 집단소송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두 번째 소송에 참여한 사람들은 300여 명 정도. 저는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물론 마음속에선 여전히 '사직서 쓴 사람도 될까?'라는 의구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9일, 저는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간부에게 "2차 재판 승소자 명단에 제 이름도 있는지 확인 좀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두어 시간이 흐른 후 연락이 왔습니다.

"창기는 안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됐네. 축하한다 야."

방송을 보고 지인 몇몇이 축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노조 게시판에 가끔 실명으로 제 의견을 올리면 "니는 사직서 내고 나갔잖아, 기대 그만하고 다른 일자리 찾아 봐라"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법과 원칙이 승리... 그동안의 서러움

2000년 7월 현대차 공장에 들어가 일한 지 얼마 안 돼 원청과 하청 구조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말이 좋아 '도급'이지 업체는 소위 '삐끼'처럼 벼룩시장에 구인 광고를 내고 구직자가 연락 오면 현대차 생산공장에 투입했습니다. 사람 찾아 인원만 보충하는, 그야말로 파견 업체였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용된 비정규직의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인간적 차별과 노동 착취,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겪었지만 생계유지를 위해 군말 없이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 틈바구니에서 어렵사리 비정규직 노조가 생겨났습니다. 제가 십 수 년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현대차 정규직 노조조차도 정말 중요한 시기에는 뒤로 발을 뺐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자신들의 권리 확장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느낌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지난 2005년 한 집회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불법파견' 농성이 한창이었는데, 비정규직 노조가 퇴근시간에 '현대차 불법파견 항의집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그날따라 함께하던 정규직노조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만 십 수 명 모여 집회를 한 겁니다. 결국 현대차 경비원들이 나서 집회 참가자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했습니다. 저는 현대차 경비대가 무섭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 경비들은 일부러 시비를 걸고, 카메라를 빼앗아 밟아 부쉈습니다.

경비들은 '현대차는 불법파견 인정하라'는 현수막 몸 벽보를 한 제게도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벽보를 강제로 빼앗았고, 저를 넘어뜨려 구둣발로 지근지근 밟아댔습니다. 후유증으로 온몸이 한동안 욱신댔습니다. 경비대 폭력에 치가 떨렸습니다.

그 후로도 현대차는 수시로 비정규직 노조에 감시원을 붙이고 시비를 걸었으며, 폭행을 가했습니다. 조합 간부를 경비대 차로 납치해 경찰에 넘기기도 하고 외진 곳에 버리기도 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가 어떻게 싸워왔는지, 얼마나 험한 길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작은 사례입니다.

물론 현대차가 강경책만 쓴 것은 아닙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적잖은 조합원, 노조 간부가 회유에 넘어갔습니다. 불법파견 단체소송이 시작된 후에는 그 회유와 협박이 더 심해졌습니다. 수백억 원이 걸린 손배 가압류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거기다가 현대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신규채용을 강행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고민 끝에 신규채용에 지원했습니다. 비노조원은 말할 것도 없고 노조원과 일부 노조 간부도 신규 채용에 응시했습니다. 현대차는 노조원과 노조 간부를 바로 합격 처리해 집단소송 소송자를 축소시켜 나갔습니다.

현대차는 단체소송 판결이 다가오자 현대차 노조를 압박해 불법파견 협상을 전주·아산공장 하청노조만 참여시켜 마무리 짓기도 했습니다. 또 노조 간부의 투쟁 포기 벽보를 법정자료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차가 불법파견 해소책으로 '정규직 전환'이 아니라 '신규 채용'을 고집하는 것은 단 하나 때문입니다. '체불 임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서'지요.

비정상의 정상화, 불법 기업 경영부터 바로 잡아야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약 4년 동안 벌여온 법정 싸움에서 승리했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1부는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며 사측이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약 4년 동안 벌여온 법정 싸움에서 승리했다.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41부는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며 사측이 이들을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 박소희

관련사진보기


법원은 '법과 원칙'을 지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현대차는 두 차례나 판결을 유보 시켰고, 판결까지는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현대차는 별별 이유서를 법정에 제출했지만 "현대차는 제조업이고, 제조업에서 파견업체를 두고 사용하는 건 불법 파견"이란 법과 원칙을 깨뜨릴 수는 없었습니다.

이번 판결에선 모든 하청업체의 노동자를 '불법파견'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동안 불법파견 문제를 풀기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1998년 이후부터 기획된 현대차 불법파견.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님, 이제 그만 하시죠?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정신적 피해보상까지 청구하고 싶습니다. 십 수 년간 현대차 사내업체에 다니면서, 또 부당해고 당한 후 받은 정신적 피해가 크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차는 반성은 커녕 지난 23일 항소를 결정했습니다. 이거 정말이지, 해도 너무한 것 아닙니까?


태그:#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댓글8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