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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이는 일제가 한국과 대륙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것으로 <탁류>에서는 고태수가 근무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 근대건축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이는 일제가 한국과 대륙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세운 것으로 <탁류>에서는 고태수가 근무했던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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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18은행 군산지점. 이곳에서 일본인은 사업을 빙자해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조선인에게 고리대금업을 하였다. 이로 인해 농토를 잃은 농민이 많았다.
▲ 근대미술관 구 일본18은행 군산지점. 이곳에서 일본인은 사업을 빙자해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조선인에게 고리대금업을 하였다. 이로 인해 농토를 잃은 농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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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당시 무역회사였던 미즈상사를 이전 및 보수하여 현재는 카페로 사용 중이다. 2층은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다.
▲ 미즈카페 일제시대 당시 무역회사였던 미즈상사를 이전 및 보수하여 현재는 카페로 사용 중이다. 2층은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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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군산은 현재까지도 당시의 근대 문화 유산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선 군산에서 근대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면 군산 내항 일대로 가는 게 좋다. 이곳은 우리의 쌀과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조성한 곳으로 당시에는 관공서·은행·무역회사가 즐비했다. 내항 일대는 1980년대까지 도심 기능을 유지하다가 새로운 도심의 개발로 쇠락했는데 최근에는 기존의 건물들을 재정비해 군산역사문화지구로 거듭났다.

내항 일대에서 눈여겨 볼만한 곳은 일제시대 건축물을 활용한 군산근대건축관(옛 조선은행군산지점), 군산근대미술관(옛 일본18은행군산지점)을 비롯해 미즈카페(옛 미즈상사), 장미공연장(옛 미곡창고), 장미갤러리(일제시대 건축물) 등이다.

그리고 같은 구역 내에 근대역사박물관과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있어 볼거리가 풍부하다. 진포해양테마공원에는 일제 수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부잔교(뜬다리)도 있다. 뿐만 아니라 도보로 5분 거리 안에 옛 군산세관이 있어 이 일대는 일제가 남긴 근대 문화 유산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군산에서의 근대 역사 문화 체험

안에 있는 자료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가 되는 곳이다. 때에 따라 테마 전시를 하기도 하는 등 볼거리가 많다.
▲ 근대역사박물관 안에 있는 자료들을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가 되는 곳이다. 때에 따라 테마 전시를 하기도 하는 등 볼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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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부터 1938년까지 총 4기가 설치되었고 현재 3기가 남아 있다.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한 시설물로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는데 일조했다.
▲ 부잔교(뜬다리) 1926년부터 1938년까지 총 4기가 설치되었고 현재 3기가 남아 있다. 서해안의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한 시설물로 호남평야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나르는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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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 구.군사세관 본관건물만이 남아 있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서양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의 하나로 현재는 호남관세전시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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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항 일대를 벗어나도 일제시대의 흔적은 많다. 대표적인 건물이 동국사, 신흥동 일본식 가옥, 고우당, 옛 군산부윤관사, 해망굴 등이다.

당시 일본 불교의 한국 진출은 순수한 포교의 목적이 아닌 조선를 일본에 종속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동국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에 있던 487개의 일본식 사찰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곳이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로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內田佛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曹洞宗) 사찰이었다. 1913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대웅전과 요사채를 신축하기에 이르렀다. 대웅전은 일본산 쓰기목으로 지어졌고 대웅전이 요사채와 복도로 연결돼 있는 등 우리나라의 사찰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이곳의 범종은 1919년 일본의 장인이 주조한 것이다. 동국사는 일제 강점기 동안 일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해방을 맞아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그 후 1970년에 남곡 스님이 동국사로 개명했고,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24교구 선운사 말사로 등록돼 있다.

동국사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침탈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5000여 점 소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일본의 조동종 소속 아오모리 운상사 주지 이치노헤 스님께서 조선침략에 대한 참회의 뜻으로 기증한 조선침탈자료와 동국사 소장의 자료를 합한 수다. 동국사는 최근 삼일절 제95주년을 기념해 <동국사 침탈사료관 기획전> 세 번째 행사로 일제의 무단통치의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군사, 신사, 경찰관련 자료 중에서 엄선된 300여 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한국-일본-서양의 건축 양식 섞여 있는 곳들

일본 에도 시대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은 것이다. 지붕은 급경사를 이루고 외벽에는 미서기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전통한옥과는 다른 모습이다.
▲ 동국사 대웅전 일본 에도 시대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은 것이다. 지붕은 급경사를 이루고 외벽에는 미서기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전통한옥과는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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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문이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글을 말한다. 동국사의 참사문은 동국사를 창건했던 일본 조동종에서 식민지 지배의 수단으로 전락했던 조동종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에 비석이 세워졌다.
▲ 참사문비와 종각 참사문이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글을 말한다. 동국사의 참사문은 동국사를 창건했던 일본 조동종에서 식민지 지배의 수단으로 전락했던 조동종의 잘못을 뉘우치는 내용을 공식 발표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에 비석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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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 안의 히로쓰 가옥은 일제시대에 군산의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세운 것으로 그는 임피 부근에 조그마한 농장도 운영했다. 이 가옥의 독특한 점은 일본식 다다미방과 한식 온돌방의 혼합 구조라는 것이다. 가옥의 외부에는 정원이 조성돼 있는데 잘 다듬어진 정원수와 석탑, 다리로 연결된 연못 등이 일본 특유의 미를 잘 보여준다.

일본 전국시대 사무라이 가옥의 은폐 구조 양식이다. 목조로 된 2층 건물로 각 방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복도를 통해 안뜰로 드나들 수 있다.
▲ 히로쓰 가옥 일본 전국시대 사무라이 가옥의 은폐 구조 양식이다. 목조로 된 2층 건물로 각 방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으며 복도를 통해 안뜰로 드나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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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숙박을 할 계획이 있다면 고우당을 추천한다. 고우당은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지어놓은 가옥을 활용해 근대 역사 체험 공간으로 새롭게 만든 곳이다. 특히 고우당을 중심으로 해망굴, 히로쓰 가옥, 동국사, 옛 군산부윤관사, 이성당, 초원 사진관 등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도보 여행객들에게 최적의 장소이다.

내부는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고 외부는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일인실부터 다인실까지 다양하고 내부에 편의 시설이 함께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 고우당 내부는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고 외부는 일본식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일인실부터 다인실까지 다양하고 내부에 편의 시설이 함께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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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군산부윤관사는 고우당과 동국사 사이에 있는 도로를 따라 월명터널 쪽으로 가다 보면 나온다. 군산 부윤은 지금의 군산 시장에 해당하는 직책으로 일제시대에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부를 자랑했던 자리라고 한다.

현재는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내외부의 모습은 당시 일본식 관사의 원형을 반영하고 있으나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 구.군산부윤관사 현재는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내외부의 모습은 당시 일본식 관사의 원형을 반영하고 있으나 관리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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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굴은 일제시대 군산항의 제3차 항구 구축 공사 기간이었던 1926년 10월 16일 구 군산시청 앞 도로인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하고자 만든 반원형 터널이다.

당시에는 군산신사와 신사광장, 공회당, 도립군산의료원, 은행사택, 안국사 등이 인근에 있어서 사람들의 통행이 빈번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해망굴을 만든 목적이 시내의 물자를 보다 빠르고 편하게 항구로 나르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이 역시 일제 수탈의 잔재다.

월명공원 입구와 군산서초등학교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 해망굴 월명공원 입구와 군산서초등학교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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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항 근방을 벗어나서 서쪽으로는 일제시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영춘 가옥, 옛 일본인 농장창고, 임피역사 등이 있다.

이영춘 가옥은 원래 대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의 별장으로 지어졌다. 이 가옥은 한국, 일본, 서양의 건축 양식이 혼재돼 있는데 샹들리에 및 가구들은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로 건축비가 조선총독부의 관저와 비슷하게 사용됐다고 한다.

구마모토는 고리대금업을 통해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는 형식으로 당시 최대 규모의 농장을 소유했는데 1932년에는 농장 소유의 논이 1부 5군 26개면에 걸쳐 있었고 이는 여의도의 10배가 넘는 규모였다고 한다. 그는 소작쟁의를 무마시킬 목적으로 자혜진료소를 세우고 이영춘 박사를 불러왔다. 이 박사는 해방 후 구마모토가 물러간 뒤에도 이곳에 남아 농부들을 진료하다 1980년 세상을 떠났다.

옛 일본인 농장창고는 시마타니 야소야가 지은 것으로 그는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 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해 1909년에는 임피 외에도 2개 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된다.

그는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주변 지역에서 불법 수집한 문화재인 도자기나 서화 등을 금고에 보관했는데 시마타니 금고는 아직까지 발산초교 한편에 남아 있다. 그러나 탑이나 석등 같은 규모가 큰 석물들은 금고에 넣지 못해 정원석으로 활용했는데 이는 아직도 발산초교 건물 뒤편에 남아 있다.

1936년에 신축된 임피역사는 1912년에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에 위치한 역사다. 당시 군산선은 전라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였다. 현재 임피역사는 역사의 상처를 간직한 채 화물과 여객 취급이 중지된 상태로 일제강점기 군산의 현실과 채만식의 작품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일제 수탈을 위한 군산선에 설치된 임피역사가 이제는 근대 문화 역사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 임피역사 일제 수탈을 위한 군산선에 설치된 임피역사가 이제는 근대 문화 역사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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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피역사 뒤 철길에는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벚꽃 나무 한 그루만이 지키고 있을 뿐이다.
▲ 임피역 철길 임피역사 뒤 철길에는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대신 오래된 벚꽃 나무 한 그루만이 지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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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살펴 본 건축물에는 당시를 살았던 수많은 우리 민족의 굶주림과 울분이 서려 있다. 특히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전국의 쌀 수탈양의 절반 가까이까지도 담당했던 군산은 일제강점기 역사의 아픔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지역의 중심지는 일본인들에게 빼앗긴 채 허름한 동네로 내몰려 비참하게 살아갔던 그들의 모습이 곧 <탁류> 그 자체였던 것이다.


태그:#군산관광, #근대역사박물관, #진포해양공원, #동국사, #임피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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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 않아, 하지만 그냥 있을 순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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