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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아트센터 미술관 본관 입구
▲ <또 다른 예술> 전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본관 입구
ⓒ 염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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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무대, 서서히 빛이 비친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무대 중앙에 서 있다. 우수에 찬 깊고 그윽한 눈빛, 복잡 미묘한 표정과 손짓. 배우의 숨소리마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될 만큼 객석과 가까운 거리에서 여배우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열연한다.

관객들은 객석에 앉아 여배우의 몸짓 하나하나와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관객들은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배우의 감정선을 따라가며 함께 즐기고, 종종 관객이 배우들이 서는 무대에 즉흥적으로 참여해 함께 극을 만들기도 한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리얼리티와 즉흥성. 이것은 공연예술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배우들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그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공연예술의 매력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극장으로 이끈다. 

공연예술의 역사는 길고 길지만 공연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던 시기는 19세기 영미권에서였다. 공연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19세기에 성행했던 다양한 공연들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세계 유명 공연 포스터>전(4월 4일까지)을 관람해도 좋을 듯하다.

성남아트센터는 19세기 영미권의 공연 문화를 담은 당대의 홍보 포스터 100여 점을 오는 4월 4일까지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본관에서 전시한다. 1800년대에서 1900년대 초까지 100년의 역사를 아우르는, 다채롭고 풍부한 공연 포스터는 당시 인기리에 상연됐던 연극의 종류와 당시의 시대상을 한눈에 보여준다. 마치 화려한 19세기의 공연을 직접 관람하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한다.

19세기 여배우들을 만나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포스터 제작자인 쥘 세레의 '아크로바틱' 공연 홍보 포스터(이미지 왼쪽, 파리의 카지노, 1891)와 기모노를 입은 미국 여성을 그린 오페라 홍보 포스터(슬픈 파도 아래서, 스트로브릿지 앤 컴퍼니, 1898).
▲ 파리의 카지노, 쥘 세레 1891 역사상 가장 유명한 포스터 제작자인 쥘 세레의 '아크로바틱' 공연 홍보 포스터(이미지 왼쪽, 파리의 카지노, 1891)와 기모노를 입은 미국 여성을 그린 오페라 홍보 포스터(슬픈 파도 아래서, 스트로브릿지 앤 컴퍼니,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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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미권에서 극장 문화가 크게 성장하면서 공연예술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했다. 공연예술이 흥행하면 할수록 많은 공연 포스터들이 쏟아져 나왔고, 대중들은 이 포스터를 통해 공연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포스터가 예술가와 대중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셈이다.

전시장을 채운 수많은 포스터들 중 특히 여성을 그린 포스터의 수는 압도적이다. 아름답게 치장한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는 화려한 색감의 포스터들은 이상적인 여성의 이미지로 소비됐던 19세기 여배우들의 삶을 담고 있다.

포스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인 쥘 세레의 <파리의 카지노>는 당시 파리의 나이트클럽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크로바틱' 공연의 포스터다. 이 공연은 당대 파리를 주름잡았던 스타 카밀레 스테파니가 주연으로 출연해 성황리에 개최됐다.

포스터 전면에 등장하는 카밀레는 풍성하고 노출이 심한 드레스를 입고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남성에 비해 행동의 제약을 많이 받았던 당시의 중산층 여성들의 삶과 비교했을 때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여성은 비교적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성의 욕망에 부합하는 순진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역할로 표현되고 또 소비됐다.

19세기 미국의 경향을 한눈에 보여주는 래그타임(재즈 피아노 연주가 가미된 오페라의 형태) 홍보 포스터도 눈길을 끈다. 19세기는 일본의 판화 '우끼요에'가 유럽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동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시기였다.

포스터 전면에 등장하는 여배우가 일본의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있는 모습은 당시 동양 문화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자신들이 동경하고 신비화했던 동양의 이미지를 여배우에게 덧씌워 표현한 이 포스터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신비화된 동양의 이미지와 아름다운 여성의 결합은 남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자연스럽게 공연 홍보 효과를 창출해냈다.

포스터는 그저 상업용이었다?

레오네토 카피엘로의 캉캉춤 공연 포스터이다.
▲ 바람이 스치는 소리, 레오네토 카피엘로, 1899 레오네토 카피엘로의 캉캉춤 공연 포스터이다.
ⓒ 성남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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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포스터 제작자인 레오네토 카피엘로는 캉캉춤을 추는 아름다운 여자 댄서의 모습을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해 공연 홍보 효과를 노렸다. 강렬하게 대비되는 색채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여배우의 역동적인 몸짓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포스터에 등장하는 여배우도 다른 여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에로틱한 표정과 몸짓, 노출이 심한 무대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해 남성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여배우가 그려진 모든 포스터에는 여배우의 성적 매력과 아름다움이 부각돼 있다. 당시 포스터 제작자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공연의 홍보 효과를 극대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화려한 색채와 생생한 표현법은 공연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을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공연 포스터는 기본적으로 이익 창출을 위해 제작된 상업적인 대중매체지만, 19세기의 공연 포스터들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섬세한 표현기법과 아름다운 색감을 자랑한다. 관람객들은 본 전시를 통해 19세기의 이상적인 여배우의 모습과 당시 유행했던 다채로운 공연문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여 악기를 연주하는 민스트럴 공연 포스터이다.
▲ 윌리엄 웨스트, 민스트럴 쥬빌리, 스트로브릿지 앤 컴퍼니, 1900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하여 악기를 연주하는 민스트럴 공연 포스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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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팁] 여배우들을 주제로 한 공연 포스터 외에도 '민스트럴'(중세 유럽의 봉건귀족에게 봉사하던 직업음악가를 가리키는 용어, 이들은 노래를 작곡해 부르고 연주하는 한편 군주가 작사·작곡한 노래를 연주하며 공연했다, 보통 백인이 흑인으로 분장해 연기했다)을 홍보하는 포스터, 서커스 포스터, 코미디 쇼 포스터 등 다양한 종류의 공연 포스터들을 감상할 수 있다.


태그:#또 다른 예술, #성남아트센터, #여배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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