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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교육청 학교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 장면.
 전라북도교육청 학교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 장면.
ⓒ 김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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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한다는 것은 저마다 다른 의미가 있겠지만 저에게 일이란 우리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하였습니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그래도 매달 밀리지 않고 나오는 월급이 감사했고 부족한 이 사람에게 믿음과 응원을 보내주는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부모님들로 인해 보람도 느꼈습니다.

그러던 2013년 11월의 어느 날, 내년엔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가 대량 감원되고, 그 후에는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래도 설마 했습니다. 6년 동안 있었던 사업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겠어?하는 마음도 있었고, 설마 전국 3800명의 가장들을 생계대책을 세울 여유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자르겠어?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학교현장에서는 95%의 만족도를 보이며 필요한 존재들로 여겨졌기에 '설마'에 대한 믿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6년 동안 동결된 임금에도 군말 없이 일했는데...

그동안 학비를 벌기 위해 안 해 본 일 없이 갖은 고생을 했었지만, 그 어떤 일터에서도 이렇게 갑자기 사람을 나가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10개월 계약직인 우리들은 계약 기간이 종료되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합니다.

혹자들은 비정규직들은 계약 끝나면 꼭 저렇게 난리를 피운다고, 계약직인 줄 모르고 들어왔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일은 10개월 계약이 종료되고 2개월 후면 평가에 의해 다시 재계약되기를 6년간 반복한 만큼, 갱신에 대한 기대가 있는 사업입니다. 만약 하루아침에 160명을 자르고 150명 또한 추경 확보 전엔 3개월만 쓰겠다고 한다면 그에 따른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줬어야 합니다.

우리는 계약직, 비정규직이라는 이름 앞에 선 사람입니다. 심장이 뜨겁고 밥 안 먹으면 배도 고픕니다. 무시당하면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켜야 할 가족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일도 견딜 수 있었고 6년 동안 동결된 임금에도 군말 없이 일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도교육감이라는 자리가 굉장히 높은 자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세상을 좀 더 넓게, 깊게 보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았습니다. 적어도 높으신 분들이 보시기에 우리도 사람이고 전북도민이라면 이렇게 사람에 대한 배려도 예우도 없이 나가라하진 않습니다.

최근 서식을 통해 안 사실은 이미 전라북도교육청에서는 우리들의 대량 감원이 2013년 6월에 확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때 그 사실을 미리 말해주었더라면 이 추운 겨울이 이다지도 춥고 길게 느껴지진 않았을 겁니다.

계약이 종료된 지 약 2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전북교육청을 통해 대량 감원에 관한 어떤 직접적인 설명도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지난해 11월 즈음 급하게 각 학교에서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들에게 계약해지 서명을 하라고 했던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사람인 줄 알고 살았는데, 저는 숨 쉬는 물건이었습니다

전북교육청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싸우기에 저는 힘도 없고 가진 것도 없고 싸우는 방법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번 일이 잘못됐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대량감원이 되기까지 전라북도교육청의 태도는 일관되게 무시와 침묵이었습니다.

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할 땐 무력행사가 없었음에도 교육청은 정문을 봉쇄했습니다. 굉장한 배려라도 하는 듯 본관으로 가는 길을 막아둔 채 화장실 한편은 내주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스포츠 강사 뒤에 체육 용구에나 쓰일 법한 '활용하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를요.

사람인 줄 알고 십수 년을 살았는데 저는 숨 쉬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냥 쓰다가 계약이 끝나면 버려도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당연시 되어버리는 일회용이었습니다. 몇 년 전 국가대표 체조선수를 했던 초등학교 스포츠 강사 선생님이 아침에 눈을 떠보니 자신의 삶이 너무나 비참하여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생계의 곤란함이 아닙니다.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사회의 무관심과 시선이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너희도 열심히 공부해서 정규직되라고 쓴소리를 하지만 우리들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게으름 탓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스포츠강사 90%이상이 2급 정규교원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며 그 나머지도 석, 박사 이상의 학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재들은 많이 배출해놓고 수용할 수 없으니 결국 그들은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이렇게 앞에 나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리고 이 일로 인해 여지껏 잃어버린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릴 것이란 걸 알지만 용기를 내어 봅니다. 10%의 정규직과 90%의 비정규직이 끌고 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 속에서 우리 아이도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장담 못하기에 엄마로서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열어주고 싶어 세상을 향해 무모하고 힘든 도전을 해보려합니다. 언젠간 열심히 일한만큼 인정받는 세상을 바래봅니다.

덧붙이는 글 | 전주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는 전라북도교육청 학교비정규직 대량해고 사태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21일 교육청 기자실에서 진행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읽은 증언 발언 글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태그:#학교비정규직, #스포츠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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