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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부산·경남지역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대표자들이 <부산일보> 등에 호소문을 게재했습니다. 이에 부산·양산 지역에서 AS기사로 일하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홍명교·곽형수·박종태·이동석·김현우·염태원)이 <오마이뉴스>에 반박문을 보내왔습니다. [편집자말]
삼성전자서비스 방문수리 AS기사(조합원)가 에어컨을 수리하는 모습
 삼성전자서비스 방문수리 AS기사(조합원)가 에어컨을 수리하는 모습
ⓒ 홍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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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입니다. 삼성 제품이 고장 나면 직접 달려가서 고치고, 제품 관리에 대해 설명해드리는 그 AS기사들입니다.

최근 삼성전자 AS기사들의 파업으로 시끌벅적해진 것 느끼셨을 겁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장에라도 저희가 가장 사랑하는 일, 고객님들 만나 친절히 제품 고치는 일을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꿈

저희는 궁금했습니다. 알고 싶었습니다. 왜 그렇게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월급 통장에는 100만 원 남짓의 돈이 찍히는지. 주면 주는대로, 시키면 시키는대로 마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 급여가 어떻게 산정된 것인지 물어도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장님은 '다 녹아있다, 기다리라'고만 말했습니다. 여름, 자정까지 일하고 어지럼증에 출근을 하기 힘들어도 사장님이 까라면 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적이 좋지 않으면 인민재판식 평가를 받고, 정당하게 일한 급여가 깎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저희는 몰랐습니다. 하루 15시간씩 일했던 우리가 근로기준법에도 못 미치는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가 노동자인지도, 근로기준법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제 알았습니다. 우리도 사람이고,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감히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꾸었고, 노동조합(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삼성은 지금까지 '삼성' 마크가 달린 작업복을 입고 삼성제품을 고쳐온 저희에게 '너희는 우리 직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이미 감사가 끝난 4년 전 업무까지 표적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노동조합만 탈퇴하면 챙겨주겠다고, 잘해주겠다고 회유했습니다.

삼성에 의한 전방위적 노동조합 탄압이 이뤄졌습니다. 지난해 10월 31일, 천안에서는 돌이 된 딸 '별이'를 둔 서른세살의 젊은 엔지니어가 노동탄압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는 노동조합 탄압에 의한 명백한 타살이었습니다.

머리 길면 이발소 가라는 회사, 이런 곳에서 일합니다

AS기사들의 용모 복장에 대한 가이드 라인
 AS기사들의 용모 복장에 대한 가이드 라인
ⓒ 홍명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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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부산·경남지역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 대표자들은 지난 13일 부산지역 일간지에 호소문 형식의 광고를 내 저희의 임금 요구안을 무리한 요구라고 치부했습니다. 이후 언론들은 협력사 대표들의 호소문을 인용해 노조가 ▲ 경력 1년 차 연봉 5000만 원 ▲ 헤어 관리비·신발 구입비 지급 ▲ 정년 65세 보장 등을 요구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데일리안>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을 '황제 노조' '귀족 노조'라 비꼬았습니다. 앞뒤 맥락을 빼고 진실을 호도하는 협력사 대표의 말과 일부 언론들의 보도에 후안무치(厚顔無恥)라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성 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삼성 제품을 고치는 AS기사들은 같은 일을 하는 원청 노동자 평균 임금의 70% 수준인 3690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AS기사들이 연봉 5000만 원을 요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근로기준법도 지켜지지 않는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든 저희가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삼성전자서비스 원청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무리한 요구입니까.

머리가 단정한지는 다섯 단계로 나뉘어 평가된다.
 머리가 단정한지는 다섯 단계로 나뉘어 평가된다.
ⓒ 홍명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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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협력체 대표자들은 저희가 헤어 관리비·신발 구입비 지급을 요구했다고 주장합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는 중학교에서도 하지 않는 두발검사·손톱검사를 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길면 일을 시키지 않고 이발소에 갔다 오라고 합니다.

협력사 사장들은 두발에도 5단계(매우 잘함, 잘함, 보통, 약간 부족, 부족) 평가 기준을 둬 저희의 점수를 매깁니다. 그리고 그 평가는 급여에 연결됩니다. 저희는 그런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심지어 협력사 사장들은 빌딩에 매달려 에어컨을 고칠 때도 구두를 신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일터에서 이발비·구두 구입비를 요구하는 게 귀족노동자의 요구입니까?

저희는 교섭을 진행하면서 협력사 대표들에게 '임금'에 대한 '안'을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을 무시하고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지급했으니, 제대로 된 '임금안'을 내라고 지난 수개월 내내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협력사 대표들과 경총 교섭단은 아무런 안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교섭에 나온 날짜보다 나오지 않은 날짜가 훨씬 많았습니다. 이렇게 대화의 기본도 지키지 않는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삼성을 변화시키는 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것"

시민 여러분과 함께 고장난 삼성을 AS하겠습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캐릭터 '쎈'이 고객과 손을 잡은 모습.
 시민 여러분과 함께 고장난 삼성을 AS하겠습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캐릭터 '쎈'이 고객과 손을 잡은 모습.
ⓒ 박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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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그래서 더 많이 알리고, 호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삼성 이건희-이재용 부자는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몇 년간 우리 서민들의 삶은 추락했지만 이건희-이재용 일가는 재산을 불렸습니다. 그 액수가 무려 14조 원이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8조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습니다. 하지만 이런 수치들은 우리의 삶과는 무관합니다.

비록 백지화됐지만 신입사원 채용 전형에 총장추천제를 넣을 계획을 세워 대학을 줄 세우고, 영화 상영에 대한 외압 의혹까지 받는 기업. 그게 삼성입니다. 삼성에 좋은 것이 한국에도 좋다는 말은 거짓말 아닐까요.

저희는 삼성을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삶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부자들에게만 풍족한 나라가 아닌, 서민들 모두가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는 나라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동안 저희 AS기사들은 '힘내시라, 함께하겠다'는 응원의 말씀, 건네주신 커피 한 캔에 힘을 냈습니다. 비싼 AS 가격은 낮추고, AS기사들의 생활임금이 보장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걸고 싸우겠습니다.


태그:#삼성전자서비스, #삼성, #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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