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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에는 사람과 삶에 대해 사색하는 예술작품들의 소식을 자주 만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지나온 1년을 잘 정리하고 잠시나마 주변을 돌아보며, 거센 겨울바람에 각자의 가슴 속을 씻어내려는 자기성찰이 있다.

요즘 젊은 지성의 상징인 신촌에서는 인간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삶의 불가해성에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150분간의 정극 무대.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30분 동안 관객들에게 사색과 집중력을 요구하는 당당한 작품 <공포>(12월 22일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상연)는 연극이라기보다 어쩌면 소설에 가깝고, 한편으로는 인간의 속성에 대한 탐구에 가깝다.

이 연극은 '새로운 체홉극'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연극 <공포>는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홉이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와 발표한 동명의 단편소설을 참고해 만든 작품이다. 체홉은 작품을 통해 늘 '인간의 삶과 행동의 문제'를 지적해왔는데, 이 문제제기는 여전히 유효하며 아직도 지금의 우리에게 새로운 시험의 순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 작품을 쓴 작가 고재귀씨는 삶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그들의 인과관계를 짚어보고 시험이라는 문제제기의 장치를 사용했지만, 결국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지점에 다다른다고 했다.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7일 작가 고재귀씨를 만나봤다.

연극 <공포> 공연사진
▲ 연극 <공포> 공연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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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홉의 동명소설을 참고해 만들었다고 하면서, <공포>라는 제목을 고수한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 제목을 생각 한 게 있기는 했으나, '공포'가 가장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제목이 흥행의 측면에서는 참담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공연 전체의 톤이나 주제의 측면에서 봤을 때 '좋다'보다는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 방금 이야기한 공연의 주제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삶이라는 공포'이다. 웃음이라는 것도 예술이라는 것도 죽음이라는 공포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안톤 체홉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연민이나 웃음은 삶에 대한 공포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자기방식이 아니었을까?

체홉은 친구 실린의 아내인 마리와 첫 번째 관계를 맺고 사할린으로 도망치듯 떠난다. 이 부분은 원작과 달리 내가 만든 허구이다. 그리고 사할린이라는 지구의 끝에 가서 유형수들을 보고 여러 경험을 하고 자기 안에 있는 어떤 죄의식을 쏟아내려 했었는데, 돌아와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이것이 체홉 스스로 말해주고 있는 '삶의 불가해성'이라고 생각하다. 자기가 글로 쓰고 있는 삶에 대한 불가해성을 스스로 경험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연극 <공포> 공연사진
▲ 연극 <공포> 공연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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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기간 묵혀 발효시킨 대본이라고 들었다. 이 작품을 최근에 마무리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이 작품은 '독'이라는 창작모임 스터디에서 만들어졌다. 2008년 문지 사이문화원에서 스터디 하던 기간에 1장의 조시마 신부가 등장하는 부분까지 만들어놓고 손을 대지 못했다. 그 이후 마음내킬 때마다 한 장씩 써서 3장까지 써놓고는, 또 3년을 못 썼다. 여기까지가 1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박상현 연출의 권유를 통해 마무리하게 됐다.

1막까지 써 놓고 뒷부분을 못 썼던 이유는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답'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엄두가 안 났다. 안톤 체홉이 왜 이걸 소설로 썼을까?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때는 내가 겁 없는 시도를 했다고 생각했다. 안톤 체홉이 사할린을 갔다는 것과 그 이후에 그의 작품세계가 달라졌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나머지 부분들을 허구로 채운다는 게 겁이 났다.

처음에는 <공포>라는 체홉의 소설 자체가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체홉이 폐병이 걸린 채 사할린에 석 달 동안 갔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 부분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생각이 <공포>라는 소설하고 맞물려, '체홉식'으로 그리고 '체홉이 등장하는 방식'으로 하면 풀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둘 중 어느 하나가 빠져서도 안 된다. 대본 표지에 이 작품이 허구임을 밝힌다고 썼던 건, '체홉이라는 가상의 인물이 이렇게 했을 것이다' '작가도 삶의 어느 부분에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라고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였다."

- 삶의 공포나 삶의 불가해성의 반대말은 어떤 것들일까?
"인물로 비춰보면 요제프 신부와 조시마 신부 역할이 될 수 있다. 또 시대적인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당시는 이미 자연과학이 중요해진 시대였고, 사람들은 그 시대를 지나며 신앙에 대해 회의했을 것이다. 요제프 신부와 조시마 신부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 신성으로 인해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안고 포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지 않았을까? 체홉은 조시마 신부의 이야기도 듣고 요제프 신부의 이야기도 듣지만, 어디에서도 답을 찾지는 못한다. 체홉이 찾으려는 것은 삶에 대한 대답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신은 무얼 하고 있는 겁니까?'라는 체홉의 절규는 자신을 포함해 인간이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간절히 찾는 삶에 대한 답일 수 있다."

연극 <공포> 공연 사진
▲ 연극 <공포> 공연 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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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장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해 시작하고 있다. 매 장마다 어떤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사용한 것인가?
"전체 작품의 톤과 매너(Tone and Manner)를 고려해 처음부터 종교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작 소설에 없는 조시마 신부라는 인물을 집어넣었고, 각 장마다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썼던 이유도 이와 연장선상에 있다.

대본에 '죄'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독교 신앙이 성립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자 첫 번째 조건이 '죄'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처럼 죄를 짓고 태어났다. 그 죄는 어디서 온 것이고, 무슨 죄이며, 인간은 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사는 게 바쁘다'라는 관용구의 말을 쓰는데, 이건 매우 끔찍한 이야기이다. '사는 게 바빠서 난 그걸 할 수 없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태어나는 게 죄라면, 과연 인간은 어디서 구원을 받아야 하고 그 죄로부터 어떻게 도망쳐야 할까?

그래서 실린이나 체홉이 했던 말과 비슷한 성경 구절을 찾고 싶었고, 찾다보니 나온 성경 구절들이다. <욥기>가 두 번 정도 나오는데, 욥(Job)은 하나님에게 시험을 받던 인물이다. 모든 걸 하나님에게 빼앗긴다. 나중에는 신앙의 힘으로 극복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 끔찍하다.

빅토르 위고는 '인류가 쓴 최고의 문학작품은 <욥기>'라고 하지만, <욥기>는 너무 끔찍한 이야기이다. 실린이 자기 삶의 공포를 이기는 방식으로, 포도주 열 병을 두고 우스꽝스러운 제안을 하지 않나? 그런 '시험'이라고 하는 것들이 욥기에서의 어떤 부분들과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인간의 문제인데, 여기에 대한 어떤 반대 지점이나 대답 같은 걸 채워주는 게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기독교 신앙이 있어야 될 것 같아서, 또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어서 사용했다."
      
- 작품을 쓰면서 애착이 갔던 인물이나 도무지 진행이 어려웠던 인물은 누구인가?
"진행이 어려웠던 인물은 물론 체홉이다. 실존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함부로 다룰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말을 그에게 다 말하도록 시킬 수 있는 인물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체홉의 대사를 만들 때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1장부터 7장까지 한 번도 퇴장하지 않고 무대에 등장하는데, 말을 많이 하지는 않고 주로 듣는 입장에 있다. 그래서 체홉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 밖에 1장의 조시마 신부를 공들여 만들었다. 그의 긴 독백을 쓰고 나서 기분이 좋았다. 머릿속에 세부 설계도를 갖추고 대본을 쓴 게 아니라, 어떤 정서를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대본을 썼다. 그의 독백을 쓰고 나서 '아, 희곡으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나중에 요제프 신부와 체홉의 꿈 속 대화 장면은 첫 연습 때는 없었던 장면이다. 머릿속에서는 그 장면을 집어넣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무대적으로 옮겨놓아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꿈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가 짧게 들어오는 것으로 대본을 채웠다. 체홉이 듣고 싶은 말을 요제프 신부가 해주지는 않지만, 그 둘이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의 대사들을 공들여 썼다. 객석에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연극 <공포> 공연 사진
▲ 연극 <공포> 공연 사진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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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들이 시험이라는 장치로 관계가 묶여있는 것 같다. 그중 체홉과 마리의 관계는 시험의 결과에 대한 비중이 특별한데,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런 게 인간이 아닐까? 인간적으로 가장 성숙한 인간이자, 문학적으로 가장 성숙한 위치에 있던 작가이자, 인간을 가장 잘 이해했던 작가가 바로 체홉이다. 그런데 그 작가가 흔들렸다면, 다른 인간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본 안에서 '의지'라는 단어가 두 번 언급된다. 첫 번째는 요제프 신부와 체홉이 꿈 속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나온다."

체홉 : "(절규하듯) 도대체 인간에게 선이란 무엇입니까?"
(발걸음을 멈추는 요제프.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요제프 : "선이란 마음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이 극중에서 가장 터무니없는 인물이 술주정뱅이인 가브릴라이다. 나중에 그가 술에 취해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필사의 의지라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하면서 술 병 하나를 어딘가에 묻고 온다. 체홉이 요제프 신부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왜 인간은 이 모양인지, 나라는 인간을 포함해서 왜 인간은 이 모양인지가 아닐까? 이를 '선(善)'이라는 말로 물었던 것이고, 요제프는 '선이란 마음이 아니라 의지입니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런데 가장 하찮은 인물이 그 얘기를 하는 그 순간, 체홉이 돌아버리는 것이다. 자기가 찾지 못했던 대답이 어떤 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 그래서 그 마음이 괴로워서 체홉이 또 다시 마리에게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괴로우니까.

실린과 공허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도 찾을 수 없었고 신부님하고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을 가브릴라라고 하는 가장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것이 필사의 의지라며 술 한 병을 숨겨놓고 와서는 나중에 그걸 자기 때문에 죽은 여자의 무덤에 뿌려주겠다는 말을 했을 때, 체홉은 부끄러웠을 것이다. 자기가 사할린까지 가서 찾으려고 했던 게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니까.

만일 가브릴라가 그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체홉은 마리와 다시 한 번 동침하지 않고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가브릴라가 들어와서 그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어떤 상태의 의지, 가장 나약한 상태의 최소한의 의지를 표명하는 말을 해버렸기 때문에, 체홉이 오히려 반작용으로 자기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그 날 마리와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 모두가 알 수 없는 삶의 불확실성에 대해 두려워하고, 시험에 대한 선택도 모두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예상했을까?
"….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웃음)."

연극 <공포> 공연 포스터
▲ 연극 <공포> 공연 포스터
ⓒ 드림아트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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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 연출은 이 작품은 안톤 체홉 자체를 조명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 같다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 작품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체홉의 작품'을 넘어, '체홉이라는 인물'에 대한 접근의 과정이며, 한 시대의 지식인과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연극 <공포>의 등장인물 모두는 삶이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두렵고 진부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거의 행동 때문에 현재에 고통받고 있지만, 고통의 원인이 되었던 과거의 행동에 아직도 취해 있다. 이 삶을 끝내는 방법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선택하지 못한다. 체홉의 말대로 "삶이 생활의 고통에 대한 보답으로 끝나거나 오페라처럼 갈채를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라면, 왜 우리는 당장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가?

알 수 없는 인간의 속성과 삶에 대한 연극적 탐구가 150분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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