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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같은 의원들" 막말에 대한 규탄을 막말로 대하고 있다.
▲ [제보 화면] 김태흠 의원과 새누리당 "쓰레기 같은 의원들" 막말에 대한 규탄을 막말로 대하고 있다.
ⓒ [제보] 페이스북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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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사진 한 장을 받았다. 이어 "기사를 써줄 수 있냐?"는 문장이 딸려왔다. 바로 답할 수 없었다. 그 안엔 누군가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캡처한 사진이 있었다. '인물 A….'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혹시 기자가 모르는 유명인이 아닐까 싶어 검색창에 커서를 올려놨다. 여전히 낯선 이름이었다. 사진을 보낸 이에게 바로 되물었다.

"누구죠? 이 사람."

한참이 지나서야 "조심스럽다"는 말과 함께 "A는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보령·서천)의 지근거리 사람"이라는 답을 받았다. "그럼 보좌진?", 다시 물었다.

"아니다. 보좌진은 아니다. 김태흠 의원의 SNS 사무팀장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본인은 같은 지역 사람으로 A와 안면이 있어 절대 이름이 밝혀져선 안 된다"고 했다. 제보자가 말을 아낀 까닭이다. 시간은 12월 14일 00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도 특별한 것이 없었다. 흔하디 흔한 사진이었다. 클릭 한 번이면 누구나 확인 가능한 '양승조-장하나 두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 규탄대회' 모습이었다. 이내 이마에 팔자 주름이 잡혔다.

'(기사로써)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무엇보다 사진 속 현장이 이미 이틀이나 지나있었다. 하지만 제보자는 사진 말고 문구를 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 반전이 있었다.

"이런 쓰레기 같은 국회의원 때문에 날씨도 추운데 많은 시민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쓰레기. 이름을 거명하진 않았지만 '양승조·장하나', 현역 국회의원 두 명을 '쓰레기'로 표현한 것이다. 사진 속 중앙엔 '대선불복 장하나 OUT'이란 팻말을 든 김태흠 의원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놀란 사실은 따로 있었다. 글쓴이의 진심이었다. 분노와 짜증, 불편함이 그대로 엿보였다. 100자도 안 되는 짧은 글이지만 '쓰레기'라는 단어 하나가 모든 것을 담아냈다.

"쓰레기? 보령·서천 사람들은 김태흠 의원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김태흠 의원의 페이스북에 가면 대통령 앞에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김태흠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 김태흠 의원의 페이스북에 가면 대통령 앞에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 김태흠 의원 SNS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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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내준 인물은 스스로를 '보령주민'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이 글과 사진을 보고 너무 부끄럽고 어이가 없어 연락했다"고 했다. 그는 말을 보탰다.

"쓰레기, 과연 누가 진짜 쓰레기인 거죠? 똥 묻은 개가 어찌 겨 묻은 개를 나무랄 수 있어요?"

그러면서 '보령주민'은 "요즘 어딜 가도 보령 사람이라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바로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의 지역구가 충남 보령·서천인 탓'이라 했다.

실제로 초선에 불과한 김태흠 의원은 11월 마지막 주 전국구 스타가 됐다. 온종일 포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결정적 사건 때문인데, 국회 운영위원회 질의에서 김 의원은 '청소노동자 직접고용(정규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람들 무기계약직 되면 노무관리문제도 그렇고, 이제 노동3권 보장돼요. 툭하면 파업 들어가고 할 텐데… 이것을 어떻게 관리하겠나?"

이 발언이 김태흠 의원을 '전국구'로 만들었다. 언론은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시민들은 그의 말을 곱씹었다. 그러면서 말했다. "똑똑한 국회의원도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모르는구나." 조소 가득했다.

김태흠 의원은 "오해였다. 야당과 일부 언론의 곡해로 본인의 의도가 뒤집혀 억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분명 "노동 3권이 보장되면 툭하면 파업할 텐데"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었다. 뒤늦게 나온 보도문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그는 전국구 스타가 됐지만 '노동 3권도 모르는 국회의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보령·서천 주민들은 "김태흠 의원이 우리 지역구라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올 겨울, 자숙해라. 그리고 공부해라"

분명 응원 메시지 게시판이다. 하지만 비판과 조롱의 글이 더 많다. 가장 조회수가 높은 것은 "근거없는 비방은 삭제하겠다"는 경고문이다. 아이러니다.
▲ 응원 메시지? 분명 응원 메시지 게시판이다. 하지만 비판과 조롱의 글이 더 많다. 가장 조회수가 높은 것은 "근거없는 비방은 삭제하겠다"는 경고문이다. 아이러니다.
ⓒ 김태흠 의원 홈피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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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입장에 따라 듣기 거북할 수도 있는 '대통령 사퇴' 발언이 터졌다. 그것도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몸을 낮추고 입을 닫아야 했던 김태흠 의원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12월 12일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웠다는 그날, 그는 충남지역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도의원을 규합해 천안에 모였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의 지역구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목소리를 높여 '양승조와 장하나 아웃'이라 외쳤다. 민주당엔 사죄를 요구했다.

문제는 이날 3000여 명의 지지자가 모였지만 눈보라까지 몰아친 탓에 추위를 막을 순 없었다. 김 의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영하 5도의 겨울은 매섭다. 하지만 싫은 내색을 할 수 없었다. 분명한 건, 민주당 장하나 의원의 '대통령의 사퇴' 발언은 그에게 있어 부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를 바라보는 보령·서천 사람들의 얼굴이 다시 한 번 구겨진 이유다.

그런데 김태흠 의원의 페이스북에 가면 재밌는 장면이 있다. 김 의원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지만, 마치 수백수천 누리꾼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바뀌어버렸다. 문제는 그것이 '성토의 장'이라는데 있다. "정신차려라", "부끄러운 줄 아세요",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셨네요. 노동 3권이 그런 의미였군요"라는 말까지.

홈페이지 역시 다르지 않다. 특히 <정책제안 게시판>과 <자유게시판>, <응원한마디>가 뜨겁다. "잘하는 짓입니다", "하루만 욕먹으면 끝날 줄 알았지?", "김 의원은 상도덕도 없는가?"라는 말이 있었다. 물론 그중 가장 눈에 띈 글도 있었다. 게시판 상단마다 적힌 "근거 없는 비방이나 욕설은 바로 삭제합니다"라 게시물이었다. 쉼 없이 올라오는 비판글로 홈페이지 관리자의 분주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여기 보령·서천지역민의 뜻을 담아 제안 하나 한다(참고로 기자 역시 40개월 군생활의 대부분을 보령에서 했다). 우선 겸허한 마음으로 침묵하자. 자꾸 말하면 말할수록 더한 소리가 나오고 있다. '막말'로 명성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자신의 막말로 주민들이 점점 부끄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이번 겨울엔 보다 진지한 공부가 필요하다. 앞서 본 대로 김 의원의 지근거리 인물들도 바라고 있다. 매서운 겨울이다. '노동 3권',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반성하길 바란다.

분명한 사실은 막말은 막말을 덮을 수 없다.


태그:#김태흠, #막말, #양승조, #장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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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팀 취재기자. 오늘도 애국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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