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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 3인이 지난 10월 10일 대구 서재 동화아이위시 아파트 건설현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11월 20일 현재 42일차다.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 3인이 지난 10월 10일 대구 서재 동화아이위시 아파트 건설현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11월 20일 현재 42일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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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노동자들이 민주노조 깃발을 움켜쥔 채 올바른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 목숨 건 투쟁을 잇고 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권오준 수석부지부장과 박경태 금호지구장, 배진호 조직부장이 '시다오께(하도급업자) 노조(한국노총 영남건설노조)' 퇴출과 단체협약 이행을 촉구하며 지난 10월 10일 서재 동화아이위시 현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것.

타워크레인 고공농성 42일차인 11월 20일, 대구 동화아이위시 건설현장을 찾아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고공농성 상황을 살펴보았다. - 기자말

동대구역에서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택시를 타고 달려간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1002번지 소재 동화아이위시 건설현장. 경찰버스가 두 대 서 있고 군데군데 경찰들이 서 있다. 20일 오전 10시경 컨테이너 앞에 서 있던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 몇 명이 밝은 얼굴로 기자를 맞는다.

현장 정문은 굳게 닫혀 있고 회사가 고용한 용역이 지킨다. 정문 바로 옆 컨테이너 문에 '투쟁 상황실'이라고 적혀 있고, 그 뒤로 천막 두 동이 자리했다.

"10년 넘게 싸웠는데 10년 전으로 돌아갈라카믄"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들이 돌아가며 이곳 사수조로 현장을 지키고 대구시내 순회투쟁을 나간다. 오늘은 경북 구미·칠곡지구 조합원 18명이 오전 5시 30분부터 와 있다.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서재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온 것이다. 그들에게 물었다.

-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이렇게 오셔서 어떡합니까? 먹고는 살아야 하는데요.
"좁쌀을 굴리는 게 나응교? 호박을 굴리는 게 나응교? 백날 굴리보소. 호박을 굴리면 한방인기라."
"오늘 구미 석적 현장에서 18명이 왔는데 4명은 여기 있고 14명은 순회투쟁을 나갔는기라."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이 2000명 되는데, 돌아가면서 여기 사수조를 해요. 우리는 네다섯번 째 되는가부다."

주간조는 오전 5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야간조는 오후 5시 30분에 와서 교대를 한 후 오후 5시 30분까지 현장을 지킨다.

"당사자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요. 우리가 10년 넘게 싸웠는데 10년 전으로 돌아갈라카믄 절대로 안되지요."

"시다오께 오야지(하도급업자 가운데 우두머리)를 우리가 다 겪어봤는데 건설노조 조끼를 입고 나서 없어졌어요. 유보 임금도 그 전에는 짧으면 60일, 길면 90일이나 됐어요. 지금은 15일 이내로 다 주니까 얼마나 좋아요? 좋은 세상이지요."

"시다오께가 10년 전에 한 걸 다시 하려고 하는 건 이치에 안 맞아요. 노조를 해서 임금도 올랐는데…. 우리 구미에서도 비조합원은 얼마 전에 임금이 깎였다 카더라구요."

"시다오께라는기 원청이 전문건설업체한테 1단계 하청을 주잖아요. 그 전문건설업체가 건설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서 공사를 하면 되는데, 그라믄 훨씬 투명해질 텐데 최소한 3단계, 많으면 5단계까지 (하청이) 있어요."

"시다오께 밑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특히 어려워요. 산재사고가 나도 그렇고, 임금도 적게 주고, 화장실이나 식당 같은 후생복지도 제로에요."

박경태 금호지구장, 배진호 조직부장, 권오준 수석부지부장(사진 왼쪽부터) 등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 3인이 50m 타워크레인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박경태 금호지구장, 배진호 조직부장, 권오준 수석부지부장(사진 왼쪽부터) 등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 3인이 50m 타워크레인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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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장아찌, 생선조림, 우거지 볶음... 타워크레인 위로

이영철 건설노조 부위원장(토목건축분과위원장)이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이 부위원장은 매주 월요일 건설노조 상집회의를 마치고 이곳 현장에 내려와 상주하며 투쟁을 이끌고 있다.

오전 11시가 가까워지자 타워크레인에 밥을 올려보낼 준비를 한다. 안상민 지부 조직부장이 아이스박스에 담긴 밥을 가져왔다. 처음 올라가서는 하루 3끼를 먹던 농성자들이 얼마 전부터 2끼로 식사를 줄였다. 운동량도 부족하고 소화도 잘 안 돼서다. 오늘 반찬은 뭐냐고 물었더니 박스를 열어 보여준다. 깻잎장아찌, 생선조림과 우거지볶음, 나물 2가지, 조기구이가 오늘 중식이다.

사측은 하루 2번 식사를 올려보낼 때 출입을 허용한다. 그것도 식사를 나르는 한 사람에 한해서다. 기자가 현장에 들어가 사진을 찍겠다고 한 요구도 묵살 당했다.

식사를 올리는 동안 타워크레인을 가까이서 촬영하기 위해 이영철 부위원장과 함께 건설현장을 둘러싼 펜스를 돌아 큰 도로 쪽으로 나갔다. "시다오께와 결탁하는 전문업체 박살내자!", "시다오께 비호하는 석종건설 박살내자!"고 적힌 현수막이 타워크레인에 가로세로로 걸려 휘날린다.

타워크레인 위에 천막이 한 동 보인다. 움막식으로 비닐을 덮어놓았다고 한다. 거세게 부는 바람에 타워크레인이 흔들리고 돌아가기도 한다. 세 명의 건설노동자가 저 50m 위 고공에서 42일째 목숨 건 농성을 벌이고 있다.

50m 높이 타워크레인을 향해 이영철 부위원장이 농성자들을 소리 높여 부른다.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권오준 수석부지부장(51), 박경태 금호지구장(43), 배진호 조직부장(28)이 얼굴을 내밀고 힘차게 나부끼는 초록색 건설노조 깃발 옆에서 마주 손을 흔든다.

잠시 후 타워크레인 운전석 아래 사다리가 끝나는 지점까지 내려온 농성자들이 밥 상자를 끌어올린다. 이영철 부위원장이 말했다.

"처음 1주일 간은 매일 100명 200명씩 모여 사수를 했어요. 그랬던 걸 조금씩 줄여서 지금은 야간에 5명, 주간에 20명 정도가 사수조를 하죠. 장기투쟁으로 자리를 잡아가니까 조합원들에게 크게 부담을 안 주려고 해요. 주간에는 순회투쟁을 나가서 주요 거점을 다니며 선전전과 집회, 피케팅을 하고 일부는 남아서 천막을 지키고 밥을 올리고 그래요."

고공농성자들 건강은 어떨까.

"아직 건강에 큰 문제는 없어요. 박경태 금호지구장이 현대차 희망버스 때 울산에 갔다가 손 인대가 끊어져 아직 완치가 안돼서 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죠. 2명은 계속 감기를 달고 있구요. 저 위가 바람도 많이 불고 굉장히 춥거든요. 24시간 난방도 전혀 안되고 하니까요."

고공농성자들을 위해 준비한 점심식사를 크레인 위로 올린다. 농성자들은 하루 2끼를 먹는다. 생선조림과 깻잎, 나물이 오늘 반찬이다.
 고공농성자들을 위해 준비한 점심식사를 크레인 위로 올린다. 농성자들은 하루 2끼를 먹는다. 생선조림과 깻잎, 나물이 오늘 반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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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자들이 타워크레인 중간 부분에서 줄에 맨 식사를 끌어올리고 있다.
 농성자들이 타워크레인 중간 부분에서 줄에 맨 식사를 끌어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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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은 16만 원 지급했는데... 노동자 손에는 10만 원 만

동화주택 사측은 지난 10월 건설노조가 농성을 시작한 후 공사방해 가처분을 신청했다. 그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인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농성으로 인해 공사가 늦어지면 분양도 늦어지고 입주민에게 하루 2600만 원씩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간 손실액이 35억이라고 주장하며 이 금액을 노동조합에 덮어씌우려 한다고 대구경북건설지부 측은 전했다.

동화주택의 골조공사 담당 하청업체인 (주)석종건설은 지난 8월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와 임단협을 맺었지만, 이후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배제하고 지난 9월 설립된 한국노총 영남건설노조 조합원들을 공사현장에 투입했다고 한다. 건설노조는 이것이 임단협 내용을 어긴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석종건설은 건설노조와 임단협을 체결한 것에 대해 노조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체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문대권 전 석종건설 이사가 교섭을 하고 회사 직인을 가지고 와서 도장을 찍은 것에 대해 '대표이사가 위임장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말하고 있다. 문 전 이사는 건설노조 측이 '시다오께 어용노조'라고 부르는 한국노총 영남건설노조 부위원장이다(영남건설노조 측은 자신들이 '시다오께 노조'라는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건설노조 측이 '사측 이사가 노조 임원을 해도 되느냐'고 항의하자, 석종건설은 문대권 이사가 이사직과 부위원장직을 내놨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문 전 이사가 한국노총 노조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이 건설노조 측 주장이다. 대구경북건설지부는 석종건설이 이미 체결한 임단협을 파기하고 지부 조합원들을 내몰아 입힌 손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방침이다.

건설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으로 인해 건설산업기본법이 개정됐다. 2008년 1월 1일자부터는 건설현장에서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못하게 돼 있다. 다음은 이영철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동화주택이 석종건설이라는 전문건설업체에 하청을 줬잖아요. 석종건설까지는 합법이에요. 그 다음부터는 모두 불법인 거죠. 석종건설이 노동자들을 고용해서 공사를 해야 되는 겁니다."

며칠 전 이곳 동화아이위시 현장에서는 임금을 지급했다고 한다. 그런데 원청이 지급한 16만원 중 시다오께 오야지가 5만 원을 떼고, 용역업체가 또 1만 원을 떼서 건설노동자들은 일당 10만 원을 받았다. 근로계약서를 쓸 때는 16만 원이라고 명시했다. 10만원을 받아 쥔 노동자들은 항의를 했다고 한다.

농성장을 사수하기 위해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온 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 조합원들. 이들은 구미 석적 아파트 현장에서 일하는 형틀목수들이다.
 농성장을 사수하기 위해 하루 일당을 포기하고 온 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 조합원들. 이들은 구미 석적 아파트 현장에서 일하는 형틀목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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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부위원장은 "매일 오전 5시 30분 야간조와 주간조 교대를 할 때 안상민 조직부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구호를 선창한다"면서 "제가 그 소리를 듣고 깬다"고 말했다. 상황실장을 맡아 농성장에 상주하며 사수조를 챙기고 투쟁을 점검하는 안상민 대구경북건설지부 조직부장(31).

- 매일 새벽에 나오시는 거예요?
"네, 제가 유일하게 칭찬받는게 그겁니다. 새벽에 나오는 거요."
- 젊으신데 연애하기도 어렵겠어요?
"우리 조합원들 평균 연령이 54.3세에요. 연령이 높으시니까 상근자가 잘 움직여야 하고 제가 잘해야죠."

안 조직부장은 학생운동을 하다 올해 4월부터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로 결심을 한 후 체계도 잘 잡혔고 투쟁력도 좋은 건설노조가 좋아서 건설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게 됐다고 한다.

- 농성자들 식사나 그밖에 필요한 물품들은 잘 전달이 되고 있나요?
"휴대폰 건전지를 올리지 못하게 해요. 식사를 올릴 때 밥 속에 뭐가 들었나까지 푹푹 쑤시며 검열을 해요. 위에서는 정작 휴대폰 건전지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말이죠."

이영철 건설노조 부위원장이 말했다.

"여기 서재 투쟁이 꼭 이겨야 됩니다. 지역 건설자본들이 현장 공사를 늦춘 채 여기만 보고 있어요. 동화주택이 건설자본의 대리전을 치르는 셈이에요. 회사는 노노싸움이라고 주장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대구 건설 투쟁의 역사가 깊죠. 1998년에 시작해서 IMF 때도 큰 투쟁을 했고 2006년에 2000명을 조직해서 불법다단계하도급 문제를 갖고 한 달 간 총파업도 했어요. 31명이 구속됐구요. 그 성과로 2007년 다단계하도급이 법적으로 폐지됐잖아요. 건설산업법을 개정했죠. 2006년 포항건설노조가 70여 명이 구속되며 투쟁을 벌였고 대구도 싸웠어요. 이 두 곳의 투쟁으로 다단계하도급을 폐지한 겁니다."

"그후 조직이 어려워졌는데 지난해 300명이 다시 총파업을 해서 임단협 투쟁을 승리했어요. 조합원에게 적용하던 임단협을 전체에 적용해 오후 5시 퇴근하고 임금도 많이 올랐어요. 지난해 조합원은 13만 원을 받고 비조합원은 11만5천 원을 받다가 올해 16만 원을 받아요. 일요일 근무시간을 단축했구요. 자본이 저항할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하네요."

이영철 건설노조 부위원장이 50m 높이 타워크레인 위를 바라보며 농성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이영철 건설노조 부위원장이 50m 높이 타워크레인 위를 바라보며 농성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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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노싸움? 절대 그렇지 않다"

타워크레인 고공농성을 시작했을 때는 200~300명이 타워 밑을 점거하고 싸웠으나 사측이 노동자들을 밖으로 내쫓았다. 식사를 올릴 때만 겨우 출입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노총 노조가 크레인에 노동자를 끌어내려 하는 등 농성자 신변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들은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11월 1일 2차 집중결의대회 때 현장에 진입해 농성자들의 안전보장을 약속받았다. 투쟁 과정에서 이길우 대구경북건설지부 지부장이 업무방해와 집시법 등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영철 부위원장이 말을 이어갔다.

"아파트 833세대를 지어 831시대를 분양했는데 총분양가가 1261억이에요. 땅값이 229억, 일반관리비와 이윤을 포함한 총 공사비가 633억이에요. 400억이 어디 간 건지 몰라요. 광고비와 홍보비, 금융이자비 등을 감안해도 너무 많은 금액이고, 사측은 밝히지 않고 있어요."

"동화주택 사장 동생이 석종건설 사장인데 동생에게 골조부분 하도급을 준 거에요. 동화주택 사장 친척이 이 현장 안에서 함바집을 하고 있어요. 이런 정황을 볼 때 건설산업이 과연 제대로 된 사업인가 싶어요. 건설산업 내 모든 비리와 부정부패가 집약된 게 동화주택인 것 같아요."

"건설산업을 투명하게 만들려면 유일한 게 노동조합이라고 봐요. 정부정책에 기대서 이 혼탁한 구조 속에서 이뤄지는 온갖 비리와 비자금 조성을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유일하게 노동조합만이 이 구조를 깨려고 투쟁을 하죠. 그래서 저들은 노조를 특히 거부하며 내몰려고 하는 거고요. 우리는 사라진 400억의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할 겁니다."

자신들은 당사자가 아니며 '노노갈등'이라고 주장하던 동화주택이 최근 사태를 해결하고 싶다며 면담을 요구해왔다. 동화주택은 자신과 석종건설,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 4자가 만나자고 했고 대구경북건설지부는 거부했다. 한국노총을 빼자고 했다. 노동부가 적극 중재에 나섰고, 지부는 22일 동화주택과 석종건설을 만나기로 했다. 사태가 일어난 후 첫 번째 교섭테이블이 만들어진 셈이다(하지만 이날 교섭은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다고 한다).

"우리 요구는 이미 체결한 임단협 내용을 준용해서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을 고용해서 공사를 하라는 거예요. 공사기일이 늦어졌는데 우리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민형사상 문제를 풀고 농성을 해제하고 공사를 해야죠. 인력을 투입해 열심히 일해 줄 겁니다."

대구시내 곳곳을 돌며 동화주택을 규탄하는 순회투쟁을 하고 돌아온 지부 조합원들이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며 저녁에 쓸 촛불을 준비하고 있다.
 대구시내 곳곳을 돌며 동화주택을 규탄하는 순회투쟁을 하고 돌아온 지부 조합원들이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며 저녁에 쓸 촛불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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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 경 순회투쟁을 하고 돌아온 조합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컵에 초를 끼우는 작업을 한다. 저녁 촛불집회에서 쓰려는 것이다.

- 오늘 순회투쟁 어디어디 다녀오셨어요?
"동화주택 본사하고, 모델하우스하고, 동산의료원 신축현장하고 갔다왔어요. 선전전도 하고 그랬지요."

- 시민들이 선전물은 잘 받나요?"
"아우~ 시민 거의 대부분이 다 받아요. 일부러 와서 달라고도 하고, 차를 탄 사람들은 창문을 내리고 받기도 했어요."
"어떤 아주머니는 이거 문제 있다고, 부실공사라면 어떡하느냐고 하면서 자신이 1차 분양을 받았는데 취소해야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고 그러더라고요."

한 조합원이 '동화주택은 부실공사의 원인, 불법하도급 당장 중단하십시오!' 제하 선전물을 펼쳤다. 원청인 동화주택이 석종건설에 하청을 주고, 시다오께 불법하도급으로 이어지면서 건설노동자 등에 빨대를 꽂아 피를 빠는 일러스트 그림이 눈길을 끈다.

"이걸 좀 보소. 동화주택이 100%를 주면 석종건설이 15%를 먹고, 85%를 내려요. 중간에서 하도급업자가 떼먹고 시다오께가 또 15%를 먹고 결국 건설노동자들은 60% 정도를 갖고 공사를 해야 돼요. 공사가 제대로 될 턱이 없잖아요."

"기리빠시(철근 짜투리)를 연결해서 전부 쓰고 있어요. 철근을 잘라 쓰고 남은 걸 실 같은 철사로 감아서 다시 공사에 써요. 공구리를 해 버리면 속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죠. 그렇게 공사를 하니까 100년 갈 건물이 50년도 못 가는 거에요. 삼풍백화점이니 성수대교니 다 그래 공사를 해갖고 사고 난거 아이요?"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소재 동화아이위시 아파트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농성현장.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 소재 동화아이위시 아파트 건설현장 타워크레인 농성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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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한 번 지으마 40년 동안 굳어지고 40년 동안 풀린다고 해요. 우리나라 같이 지진이 없는 나라에서는 건물을 제대로만 지으면 100년은 가야 돼요. 아파트 한 층을 올리는데 1주일 정도 걸려요. 공구리를 하고 나면 양생이라고 해서 보름이나 겨울에는 한 달 정도 말려야 돼요. 우리나라에서는 어디 그런가요? 그 다음날 곧바로 다음 층을 올리죠."

"구리에서 대단위 아파트를 짓는데 일본 사람들이 와서 같이 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 공사할 걸 일본 사람들은 골조를 올리는데만 2년 넘게 걸렸어요. 양생을 충분히 하고 빨리빨리 그렇게 안해요. 우리나라 건물들은 지진 나면 다 무너질 거라요."

"쟁점은 불법다단계하도급을 꼭 없애야 한다는 겁니다. 법이 바뀌어서 2008년 1월 1일부터 다단계하도급을 하면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돼 있어요. 건설현장에서 1년에 700명이 죽는다고 하죠? 집계된 것만 그래요. 돈 주고 합의한 비공식적인 죽음까지 하면 사망자는 엄청날 거예요."

건설노동자들의 성토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건설산업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이라고 적힌 감색 조끼를 입은 건설노동자들. 희끗희끗한 머리에 단결투쟁 머리띠를 맨 채 당당한 모습으로 싸우는 그들. 온몸을 던져 건강한 노동에 종사하며 민주노조 깃발을 쥐고 투쟁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대구지역을 지키고 있다.

"노동법을 지키라고 하마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캐요. 조합원들은 미움은 받아도 해고는 안 당하지만요."

"이 사람 이야기도 좀 쓰소. 오늘 사수조도 아닌데 현장에서 일하다가 중국사람들이 안전벨트를 안 맸는데 안전점검이 나와서 일이 중단됐대요. 집에 가서 자면 못 일어나니까 촛불집회 가려고 먼저 여기 온거라요."

안영주 조합원(50세)은 오늘 촛불집회 참석 담당인 옥포·현풍지구 소속이다. 구미 석적 진흥건설 아파트 현장에서 일하는 김아무개 조합원이 말했다.

"우리 일당 16만 원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란데 생각해 보이소. 우리 일이란게 날씨 영향을 많이 받으니까 비 오고 눈 오면 일 몬하지, 경조사 있거나 명절에 일 몬하지, 한 달에 기껏해야 20~23일 해요. 일이 워낙 힘들어서 나이들고 기운 없어지면 몬하지, 새벽부터 나와서 밤 늦게 들어가지, 게다가 퇴직금도 없잖아요."

건설노동자들은 퇴직금이 없다. 200억 이상 공사현장에 한해서 전문건설업체가 일하는 날 수만큼 퇴직금공제회에 노동자 임금을 하루 4000원씩 적립케 돼 있으나 제도 자체가 형해화돼 있다. 실행하지 않을 경우 적발돼도 1차 벌금 25만 원, 2차 벌금 50만 원에 그친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자 서재리 건설현장 일대에 어둠이 깔린다. 오후 5시 경 건설현장 정문이 열리고 한국노총 노조 소속 철근·목수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퇴근한다.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들은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 조합원들이 대구시내 동화주택 모델하우스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건설노조 대구경북지부 조합원들이 대구시내 동화주택 모델하우스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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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설노조 대구경북지부는 동화주택에 대해 이미 체결한 임단협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견설노조 대구경북지부는 동화주택에 대해 이미 체결한 임단협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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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불법다단계하도급"

야간조가 오면 오후 5시30분 교대를 하는데 구미 현장에서 일 마치고 오는 조합원들이 조금 늦는다는 소식이 왔다. 기자는 교대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조합원들에게 인사를 한 후 대구시내 촛불집회 장소로 이동했다. 노동자들은 교대식을 하면서 서로에게 고생했다고 하고, 고생하라고 하며 투쟁 승리를 위한 구호를 외친다.

대구경북건설지부 주 1회 집중촛불을 진행하고, 금호지구, 옥포·현풍지구, 구미·칠곡지구, 시내직할지구가 돌아가며 대구시청과 동화주택 본사 및 모델하우스 그리고 서재현장 문제로 인해 함께 문제가 되고 있는 동산병원 현장, 삼호아파트 현장 등 대구시내 주요 거점에서 매일 촛불집회를 열어 동화주택을 규탄하고 서재 현장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옥포·현풍지구가 20일 촛불집회를 사수하기 위해 모였다. 오후 6시 대구시내 이곡동에 있는 동화주택 모델하우스 앞에서 촛불집회가 열렸다. "에코폴리스 I-WISH 모델하우스 방문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모델하우스 앞에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 120여 명이 앉아 촛불을 밝혀 들었다.

동화주택을 규탄하는 현수막과 피켓도 자리했다.

"불법하도급 만연! 무법천지! 서재 동화주택 신축현장 원청사 동화주택 규탄한다!"
"서재동화 아파트현장 무법천지 비리천지"
"불법하도급 수수방관 어용노조 배후조종"
"동화주택 김O생 사장 노동자, 서민 피빨아서 아파트 짓나!"

현장 조합원들의 발언에 이어 배상진 옥포·현풍지구장은 "두 달 여 동안 동지들이 이렇게 지치지 않고 싸우니 우리 미래를 위한 이 투쟁은 꼭 이길 수밖에 없다"고 격려하고 "날씨가 추워지는데 현장에 가시면 안전하게 작업하시고, 우리도 추운데 타워크레인 위의 세 동지들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여기 모인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올라갔으니 우리가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경북건설지부 옥포․현풍지구 조합원들은 공사대금을 줄이고 노동자 임금을 착취해 배를 불리는 자본 동화주택을 꺾고 불법하도급을 뿌리 뽑아 건설노동자들이 바라는 건설현장을 만들자고 결의하며 촛불집회를 마쳤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건설노조 대구경북거건설지부 조합원들로부터 수차례 들은 말이 자꾸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어요. 이길 때까지 싸우는데 어찌 안 이깁니까? 시다오께 그냥 놔두면 절대 안돼요. 핵심은 불법다단계하도급이에요."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 3인이 건설현장의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퇴출하고 올바른 건설현장을 만들자며 타워크레인에 올라 40여 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건설노조 대구경북건설지부 조합원 3인이 건설현장의 불법다단계 하도급을 퇴출하고 올바른 건설현장을 만들자며 타워크레인에 올라 40여 일 넘게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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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총 신문 <노동과세계> 온라인에도 게재됐습니다.



태그:#건설노조, #불법다단계하도급, #타워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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