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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좀 끌게요."
"예! 괜찮아요!"

다른 침대를 사용하는 환자의 간병아주머니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나?' 하며 시계를 보니 오후 9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병실 취침이 보통 10시인데 오늘은 좀 일찍 주무시려나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짐작하고 등도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휠체어를 타신 분이 무릎에 촛불이 꽂힌 케이크를 들고 들어오셨다. 그 뒤로 다른 휠체어를 타신 분들이 줄을 이었다. 한 분, 두 분, 세 분,네 분, 다섯 분... 그리고 보호자와 간병인들, 그렇게 열 명에 가까운 분들이 뒤를 따라 들어왔다.

"생일 축하합니다!"

어리둥절한 아내와 내게 축하의 함성 한 줄과 함께 생일축하의 노래가 불러졌다.

"생일 축하 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사랑하는 안정숙님 생일 축하 합니다."

 ? 모두 자기들의 처지도 만만치 않은 나날이었지만 그렇게 틈만 나면, 명분만 생기면 서로 축하해주고 박수를 보내는 일을 즐겨 만들곤 했다. 작은 기쁨도 크게 되는 건 가난하고 건강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주는 하늘의 보상이었다.
▲ 휠체어를 타고 몰려온 천사들 ? 모두 자기들의 처지도 만만치 않은 나날이었지만 그렇게 틈만 나면, 명분만 생기면 서로 축하해주고 박수를 보내는 일을 즐겨 만들곤 했다. 작은 기쁨도 크게 되는 건 가난하고 건강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주는 하늘의 보상이었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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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내의 생일이었다. 병원 안에서 해를 넘기며 사는 우리가 무엇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벌써 두세 번을 그냥 말로만 계획하고, 또 다음해로 미루며 그렇게 넘어갔었다.

올해도 다를 것은 없었다. 아침에 우연히 병원 식단에 미역국이 나왔다. 둘이서 '야! 미역국이다! 병원에서 어째 알았을까?' 하면서 그냥 웃었다.

그 이야기를 같은 병실에 있는 공주과인 하늘이 엄마가 들었다. 대안학교 교사로 있다가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어버린 하늘이 엄마는 우리 병실만 아니라 온 병원의 꽃이었다. 이쁜 얼굴과 웃음 띤 유머로 많은 환자들을 밝게 하는 분위기 메이커인 하늘이 엄마는 그래서 늘 인기 만점이었다. 빗길에 미끄러지는 자동차 안에서 딸인 하늘이를 가슴에 안고 보호한 그녀는 울기도 참 잘했다. 딸인 하늘이만 생각하면 미안하다면서...

재활병원 특성상 주말이면 외박으로 집에 가는 분들도 계시고, 사람이 줄어든 썰렁해진 빈 방에서 꼼짝 못하는 우리는 하늘이 엄마가 갖고 다니는 키보드를 반주로 김광석의 노래들을 같이 부르곤 했다. 낮추어서 조용히! 그런 그녀가 여러 사람을 동원해서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고맙고 감격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의 축하를 받는 생일축하를 받아본 적이 까마득하던 참에.

'모든 풍경은 일생에 한 번 뿐'... 힘들어도 모두가 귀중한 순간

 ? 상황은 불 꺼진 캄캄한 방과 같았지만 동병상린 같이 투병하며 살던 병원사람들의 온정은 촛불처럼 밝고 기운을 주는 희망이었다.
▲ 어둠속에서 받은 생일 케익 ? 상황은 불 꺼진 캄캄한 방과 같았지만 동병상린 같이 투병하며 살던 병원사람들의 온정은 촛불처럼 밝고 기운을 주는 희망이었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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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보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환자복을 입은 겉모습은 똑같고, 같은 솥 밥을 먹고, 같은 의사에게 같은 치료를 받는데도. 가끔 그 분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언쟁을 넘어 주먹질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심한 표현도 오가고 그러다 어느 쪽에서는 제풀에 못 견뎌 통곡도 한다. 그런데 한 병동 사람들은 전후 사정을 듣지 않고도 대충 안다. 누가 말썽이고 누가 경우 바른 소리를 했을지를! 오랜 시간을 한 건물 안에서 보낸 결과다.

싸운 좀 뒤에 한사람이 구석에 가서 웅크리고 엉엉! 눈물 콧물 흘리며 울어댄다. 남 속을 종종 뒤집던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당할 짓을 해서 당했다고 알면서도 딱해진다. '그래도 저 사람도 누군가의 하나밖에 없는 아내였고, 어느 자식들에게 비 쏟아지는 날 우산 같았을 고마운 엄마였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마음이 짠해지곤 했다.

또 어느 날은 같은 병원에서 치료받던 분이 옮겨간 병원에서 괴로운 일을 당해서 못 참고 근처 학교 빈 운동장에서 음독자살한 이야기를 들었다. 교통사고로 바뀌어버린 인생을 그나마 보상금과 재활치료 희망으로 살던 가장이었는데 조금 더 혜택을 받으려고 욕심을 낸 게 화근이 되었다. 법적으로 이혼하고 수급자가 되어 병원비를 좀 줄이려고 했는데 맡긴 보상금을 들고 아내가 도망을 가버린 것이다. 그걸 못 견딘 가장은 세상을 끝내버렸다.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과 앞날의 불안을 가진 우리 병원 동료들은 그날 종일 우울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병원생활이 계속 되고 있었다. 우리가 같은 장소에, 같은 사람과 다시 앉아보아도 결코 같은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그건 또 다른 어느 순간일 뿐이다.

'모든 풍경은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다!'

어느 여행가가 한 말이다. 이 말이 가슴 깊숙이 공감되었다. 왜 한 사람의 일생만일까. 누구에게나 모든 만남은 딱 한 번밖에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아내가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고 느낄 때 내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세상에서 단 한 명밖에 없는 귀중한 사람과, 지금 단 한 번밖에 없는 순간을 같이 지나고 있는 중이야!"

만약 상대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고, 이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다시는 못 찾는 단 한사람이란 걸 인정한다면 함부로 대할까? 그러니 애환 많은 여행길을 지나는 중 만나는 사람들이 참 소중하다고 느껴진다. 그 소중한 사람들이 만들어준 아내의 생일잔치는 내게 속삭이고 있었다.

'사람들을 겉모습만으로 함부로 여기지 말고 귀하게, 너그럽게 대해라!'

더 떠도는 나그네 인생, 복이 될지 불행이 될지는...

딸아이가 늘 안고 자는 강아지 인형, 엄마와 아빠가 해주던 팔베개를 대신해서 버텨준 고마운 딸아이의 친구. 온통 고양이털로 범벅이 된 침대에 깔았던 요는 세탁기만으로 안 되어 손과 테이프로 일일이 제거해야 했다.
▲ 마지막 여섯 번째 세탁기를 거친 빨래 딸아이가 늘 안고 자는 강아지 인형, 엄마와 아빠가 해주던 팔베개를 대신해서 버텨준 고마운 딸아이의 친구. 온통 고양이털로 범벅이 된 침대에 깔았던 요는 세탁기만으로 안 되어 손과 테이프로 일일이 제거해야 했다.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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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남에게도 그렇고 남도 나와 아내에게 그래주면 좋겠다. 이렇게 망가지고 추락해서 비록 도움 받으며 사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좌절하지 말고, 자학하지 말고 내가 나에게도...

내 곁에 빙빙 도는 '오래 머문 이별',

"저... 이젠 더 입원하기가 좀 힘들겠는데요."
"언제까지 나가야 되나요?"
"한 달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어느 새 일 년하고도 4개월을 넘겨 장기 환자로 분류되어 퇴원권유를 받았다. 짧은 입원 퇴원으로 반복되다가 모처럼 오래 정착(?)해서 안정감을 얻었다. 나도 아내도! 치료도 계획을 세워 꾸준히 해보고, 물론 수시로 예측 없는 재발로 중단되기도 했었지만,

여기까지가 우리가 몸담고 사는 대한민국의 복지정책의 한계였다. 장기환자에게는 건강보험공단의 급여지원이 줄어들고, 병원은 병원대로 침대 한 자리 당 얼마의 매출액이 나와야 유지된다는 선이 있는데 아무래도 우리는 슬슬 그 이하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숱하게 많은 장애인들, 환자들이 재활과정을 그렇게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는 게 모두 알고 모두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이별이 우리 눈앞에 왔다. 같이 울고 웃으며 격려하던 사람들과의 이별이.

다른 병원으로 가기 전, 딸아이도 만나고 오래 비운 자리가 미안해 같이 지내려고 며칠을 아이가 살고 있는 외갓집 충주로 내려왔다. 그런데 각오했는데도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다. 앉아서 버티지 못하는 아내에게 병원 침대가 없다는 것이 이리 힘들지 몰랐다. 밥 먹을 때도, 이야기 나누기도 힘들다. 등짝에 이불 베개 쿠션 몇 개를 탑처럼 쌓았다가 하나빼기 다시 넣기로 버텼다. 화장실과 목욕은 아예 포기했다.

집이 싫어진다. 이렇게 환자가 견딜 수 없는 구조에서 보낸 하루가 벌써 우울해진다. 아이를 볼 수 있다는 것과, 같이 자는 것 빼고는 너무 힘들어 지치고 몸살기운까지 몰려온다. 온도가 추웠다 더웠다 조절이 안 된다. 며칠도 아닌 이 컨테이너 생활이 혹 아내에게 재발을 불러올까봐, 안절부절 하다 보니 나까지 파김치처럼 녹초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며칠을 힘들게 보내고 청주 버스터미널에서 5분 거리에 있다는 재활병원을 예약했다. 이전 일산은 다섯 시간에 4번을 갈아타야 했는데, 청주 재활병원은 집에서 두 번만 갈아타면 되고, 두 시간으로 줄어든다, 그 하나 때문에 기꺼이 결정을 하고 예약을 했다. 부디 너무 실망할 정도만 아니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지난해 추석에도 그랬듯 어제 밤에도 새벽 한시까지 딸 아이의 이불 옷 빨래를 여섯 번 정도 내리 돌렸다. '빨래 끝!' 어디선가 손 탁탁 터는 CF 한자락이 떠오른다. 우울 모드도 끝! 안 좋은 환경도 끝! 속으로 그렇게 말하다 '헤어져 지내는 것도 끝!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은 나그네 길이라고 흔히 말한다. 그 나그네들 중에서도 더 떠도는 나그네들이 있다. 큰 여행속의 또 여행... 이것이 다양한 추억을 가지는 복이 될지, 더 고단하기만 한 불행이 될지는 나그네의 끝 날, 끝 고백에 달렸을 거다"

덧붙이는 글 | 2011년 5월, 새로운 병원을 찾아 다시 정든 사람들을 떠나 옮긴 이야기



태그:#희귀난치병, #재활투병, #가족,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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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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