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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2008년 5월 9일 발병한 희소난치병, 데빅씨병, 좀 더 폭넓게 알려진 이름으로는 '다발성경화증'으로 목 아래가 마비되어 투병 중입니다. 평지도 드물고 대개는 내리막인 난치병의 코스. 제 아내도 예외 없이 가정도 무너진 채로 각종 합병증과 마비된 장기들을 안고 병상투병 6년째입니다. 모든 비슷한 분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투병을 응원하면서 이 글들을 올립니다. - 기자 말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 김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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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아내에게 들이 닥친 희소 난치병. 사지마비라는 극한 상태까지 몰려 목을 빼고는 손가락 끝도 꿈틀대지 못하며, 폐 한쪽, 눈 한쪽을 잃었다. 아내는 대소변 신경이 모두 마비된 채로 남자인 내게 온 몸을 맡기고, 부끄러움만 상실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병원을 전전하며 살고 있다.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천만다행으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좋은 방송국, 좋은 이웃들을 만난 덕분에 가까스로 사경을 향해 질주하던 숨 가쁜 진행을 멈추고 숟가락을 들만큼 한쪽 팔이 회복돼 간다.

오랜 전신마비 침상 생활의 후유증으로 발병한 기립성저혈압은 아내를 30분도 등받이 없이는 생활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고 있고 종착지는 가까이 다가온다. 이것이 진짜 바라는 소망이라니.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기다림이라니 언뜻 들으면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전혀 반대다. 그 마지막 사는 날까지 웃으며 감사하며 지내고, 남겨질 아이들 이웃들에게 사람은 얼마나 귀하고 만만치 않은 하나님의 형상인지를 증인으로 살다가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 땅을 거쳐 가는 의무요, 바른 삶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그래야 우리를 보면서 함께 이 언덕을 넘어 가고 있는 아이들이, 앞으로 살다가 자기들에게 닥치는 고비에 좌절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후벼 파거나 괴롭히지 않고 살아낼 것이 아닌가.

긴 병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경제적 형편은 더욱 힘들어지고, 몸도 마음도 많이 바닥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영혼은 담담해져가는 것을 느꼈다. 아이들도 잘 버텨주며 자기 몫을 감당해주고 있고,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순간마다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고 힘을 보태주는 고마운 분들이 많이 늘어난 덕분에 고마움이 든든하게 우리 부부를 버티게 해주고 있다.

힘들 때마다 주문을 외우듯,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 오늘 하루만 버티자!' 그렇게 스스로 다짐하며 살다보니 내가 '하루살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새겨졌다. 되레 그게 편하기도 하다.

하루살이에게도 사랑 그리고 꿈이 있다

하지만 하루살이도 꿈이 있다. 하루살이도 사랑을 한다. 어쩌면 하루뿐이기 때문에 더욱 절실하게, 군더더기 없이 알맹이를 원하게 된다. 말도, 행동도, 그리고 사랑도 희망도 말이다.

내가 아내에게 느끼는 사랑, 아내가 나를 믿고 맡기는 사랑, 남들이 어려움을 나누는 사랑, 하나님이 우리 가족의 생명을 예정대로 끌어 주는 사랑. 이 모든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것은 계약도 아니고, 생색도 아니고 진심으로 그만 둘 수 없는 샘솟는 본능이라고 느껴진다. 누가 무슨 상이라도 받을 욕심으로 사는 것이라면 과연 아무도 몰라줄 때도 계속할 수 있을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떻게 할 것이며, 마냥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되풀이 될 때는 어떻게 견딜까.

나는 오늘도 하루만 사는 하루살이다. 내일이면 못 만질지도 모르는 아내의 뺨을 만져보고, 등짝도 두드려보고, 아픈 다리를 무 같다고 놀리면서도 주무르고 두드리며 논다. 어차피 하루에는 하루만큼밖에 감당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니까. 그것이 행복이든 고통이든 혹은 생명이든….

그만 둘 수 있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건 계약이고 투자고, 취미생활이다. 그만 둘 수 없으니 사랑이다. 힘들고 미워서 돌아섰다가도 등 뒤로 아픈 비수가 날아와 다시 돌아서 가볼 수밖에 없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마음, 그래서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고 부부 중 하나의 반쪽 생물이 가지는 숙명인 것이다. 그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묶인 우리 두 사람과 우리 두 사람을 알게 됐다는 이유 하나로 또 우리에게 사랑을 줄 수밖에 없었던 여러 사람들,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고맙다는 말 열 번도 더 했지만 차마 쑥스러워 못한 "사랑합니다, 사랑해주셔서!" 이 한 마디 더 하고 싶어서….


태그:#희귀난치병, #투병,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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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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