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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에어컨 한 대 놔 드리자."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던 큰누나의 말은 그야말로 느닷없었다. 왜 미처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부모님은 팔순을 넘긴 노인 양반들 아닌가. 더위를 타도 우리보다 몇 배는 더 심하게 타시겠지. 그런데도 그전에 나는 고향집에 에어컨을 놔 드릴 생각은 꿈에도 떠올리지 못했다. 뭐랄까. 나에게 에어컨은 허름한 시골집에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도회의 물건 중 하나였다.

"그러게. 에어컨 한 대 있으면 좋긴 하겠다. 큰 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무람한 마음에 남일 말하듯 몇 마디를 뱉어냈다.

애초에는 큰누나의 둘째 딸, 그러니까 내 조카의 입에서 나온 얘기였다. 조카는 20대 중반의 사회 초년생이었다. 그 몇 년 새 조카는 직장을 두어 군데 옮겨 다녔다. 일하는 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연히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조카는 그 모든 상황을 느긋하고 낙천적인 태도로 이겨냈다. 그러다 맘에 맞는 직장을 얻고, 휴가 겸 해서 제 엄마와 시골집에 다녀간 게 2008년 초여름 무렵이었다.

시골집은 단층 슬레이트 주택이다. 알음알음으로 기술 있는 사람을 사고, 동네 사람들 힘을 모아 지은 지 20여 년이 다 되어가는 허름한 농가다. 처음 집을 지을 때, 창문이며 문짝, 마루 등은 작은아버지께서 직접 해 넣으셨다. 지금도 고향에 살고 계시는 작은아버지께서는 손재주가 꽤 좋으신 분이다. 그래도 어디 기술자의 솜씨에 비하랴.

그런 집이라 초여름인데도 무더위에 시달릴 때가 많았다. 거꾸로 겨울에는 칼바람이 창문과 문틈 사이를 헤집고 무시로 찾아들었다. 간만에 외조부모를 뵈러 내려온 조카에게는 그런 외가집이 더욱 힘들었을 터.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제 엄마 아빠가 삼십여 년도 전에 이바지로 사온 오래된 선풍기 한 대로 무더위를 쫓는 모습도 편치만은 않았으리라. 에어컨 이야기는 그래서 나왔다. 큰누나를 통해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부끄러움에 몸둘 바를 몰랐다. 어쨌거나 나는 아들이 아니었던가.

허름한 시골집 벽에 달린 에어컨, 그러나...

잠 잘 시간이 되면,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마저도 '전기세' 아낀다고 헛간방에 고이 모셔두시던 아버지의 그 '도저한' 절약 정신도 새삼스러워진다.
 잠 잘 시간이 되면,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마저도 '전기세' 아낀다고 헛간방에 고이 모셔두시던 아버지의 그 '도저한' 절약 정신도 새삼스러워진다.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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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서둘러 에어컨을 주문했다. 너댓 평 정도 되는 시골 방 크기에 맞춘 조그만 벽걸이 에어컨이었다. 비용도 5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그걸 나와 조카가 절반씩 냈다. 조카는, 부끄러운 마음에 내가 전부 내겠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금이지만 직접 번 돈으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꼭 챙겨드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조카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렇게 해서 허름한 시골집 벽에 에어컨이 달리게 되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에어컨을 거의 쓰지 않으셨다. 주말을 맞아 시골에 내려가 보면, 한창 더운 날씨에도 예의 낡은 선풍기와 '○○ 고추'가 큼지막하게 박힌 종묘상 부채로 더운 기운을 쫓고 계시기가 일쑤였다. 내가 정색한 표정으로 어머니께,

"김 여사님(내가 어머니를 우스갯소리로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더울 때 쓰라고 에어컨 놨는데 왜 안 쓰신데?"

하고 여쭈면,

"더울 때마동 이걸 틀먼 전기세(부모님들께 전기나 수도 요금은 반드시 내야 하는 '세금'이다)는 어치케 헌다냐?"

하며 버럭 화를 내듯 대답하시는 이는 아버지이시다. 그렇게 걱정하시는 '전기세'가 달달이 내 통장에서 이체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늘상 그러셨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가끔 쥐어드리는 코딱지만한 용돈에도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신다. 어디 맛난 것 좀 먹으러 가자고 말씀드리면 그렇게 써서 언제 돈 모아 사냐며 말리고 나무라신다. 어찌해서 식당에라도 가게 되면 밥값은 당신들이 내신다느니, 제일 싼 거 시키라느니 일일이 참견하신다. 음식을 먹고 식당 문을 나설 때에는 밥값이 얼마나 나왔냐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어보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소용 없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가끔 외식으로 먹는 음식이, 당신들께는 애틋해마지 않은 자식의 '피와 살'로 다가왔으리라.

그래서 시골에 가면 에어컨을 일부러 더 '빵빵' 틀었다. 틈만 나면 읍내 나가서 외식하고 오자고도 했다. 그때마다 나와 부모님 사이에는 늘 조그만 실랑이가 벌어졌다. 항상 모든 걸 아껴 써야 한다는 아버지와는 특히 더했다.

아버지께서는 조그만 물건 하나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으셨다. 동네방네 골목길과 논틀밭틀에 있는 소똥이며 개똥은 모두 아버지 차지였다. 등굣길 동네 어귀에서 본 짤막한 노끈도 하교해서 집에 와보면 헛간 입구 가로걸린 대나무에 단정하게 매달려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모은 노끈을 이어붙여 어엿한 새끼줄을 만드셨다. 아침 세숫물도 아이들 소꿉장난 할 정도의 양이면 충분했다. 그마저도 버리지 않고 숫돌 갈 때 쓰는 물로 따로 모으셨다.

그렇게 평생을 지독할 정도로 아끼며 살아오신 아버지께서 재작년 여름에 돌아가셨다. 에어컨 놔드린 지 고작 3년째 되는 해였다. 2009년엔가, 먼지 앉지 말라고 덮개로 에어컨을 싸고 계시는 아버지를 심하게 타박한 적이 있다. 코딱지만 한 에어컨이어서 자주 써도 '전기세' 많이 안 나오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큰소리로 말한 게 아직도 마음에 걸린다. 아마도 여름 더위가 채 가시기도 전인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전기세' 아낀다고 선풍기도 틀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 영향 때문인지 나에게는 에어컨을 켜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눈치를 본다. 에어컨을 켜기 전에는 아내를 향해 "에어컨 좀 켜면 안 돼?" 하고 조심스레(?) 묻는다. 아내는 대개 "맘대로 하세요" 하고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런데 가끔 더위에 강하고 찬 기운에 약한 아내가 "뭐가 덥다고?" 할 때가 있다. 사실은 그 말도 그냥 으레 하는 소리다. 그런데도 나는 괜히 주눅이 들어 '동작' 버튼을 쉽게 누르지 못한다.

아마도 죄스러운 마음 때문인 것 같다.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바람 아래 있으면, 웃통을 벗고 부채질로 더위를 쫓으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잠 잘 시간이 되면,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마저도 '전기세' 아낀다고 헛간방에 고이 모셔두시던 아버지의 그 '도저한' 절약 정신도 새삼스러워진다.

날씨 때문에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이 많다. 살기 힘든 세상에 오죽 하면 그러랴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많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는 자명한 이치를 무시하는 듯해서다. "더워도 너무 더워 그렇지"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너무 더운 무더위'에도 인간의 욕심이 개입해 있지는 않은가. 더우면 덥다 하고 그냥 넘어갈 일이다. 그것이 무슨 큰 자연 재해나 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 말자는 얘기다.

더운 여름, 평상에 누워 무더위를 쫓으시던 아버지께서는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을 흥얼거리시곤 하셨다. 오늘 나도 문득 그 노래를 읊조려 본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하늘이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태평스러운 표정으로 활활 부채질을 하시던 아버지가 보고 싶다.


태그:#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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