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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목요일, 처서를 하루 앞두고 무더위가 마지막까지 극성을 부리던 날 구이장(전직 '친절한 리장')은 둘째 딸에게 욕하며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아니, 걔는 왜 꼭 여름에 졸업한다고 난리야? 남들 다 안 더울 때하는데 어디가 모자란가... 더운데 그 시커먼 옷 입고 사진 찍는다고 돌아다니고... 아이구 생각만해도 나 죽겠네"

구이장, 이렇게 아침부터 '썽'이 나셨습니다.

마당앞 덧밭에는 빨간 고추를 주렁주렁 매달고 가지를 있는대로 늘어뜨리고 서 있는 고추도  따야하고 잎마다 찐득하게 달라붙은 진딘물들 떼어내려면 약도 쳐야 해서 바쁜데... 하필이면 이때 졸업한다며 상경하라는 기별을 한 둘째 딸 때문입니다. 시간에 맞춰 갈 생각에 몸과 마음이 모두 분주해지고 해 뜨기 전부터 열이 오르더니만, 이제는 약통을 맨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도 모두 그 딸 때문인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약통메고 궁시렁대는 구이장
▲ 구이장 약통메고 궁시렁대는 구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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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순간  근처에서 고추따던 구이장 아내, 한 마디하십니다.

"여보~, 아침부터 정신없고 힘든데 그렇게 계속 떠들꺼예여? 그럴 힘 있음, 여기 와서 이 고추를 따던가... 나! 참 쭈그리기도 힘든데 옆에서 죙일 떠드니까 더 힘드네."

구이장의 목소리를 단숨에 누르는 사람, 구이장 아내 바로 우리 엄마뿐입니다. 두 양반 이렇게 새벽부터 서두르시고는 둘째 딸의 졸업식에 일찌감치 참석하셨습니다.  졸업식장에서 구이장님이 사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아니, 얘는 대학 때에도 한 학기 휴학해서 여름에 졸업한다고 땡볕에 사람을 고생시키더니, 대학원이라고 다니더니만 또 8월에 졸업하네... 자네만 알어. 이건 이 년 승질이 별라서 그런거야"

헉, 그러고는 뭐가 그리 좋으신지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시더랍니다. 그날, 밭일하다 오신 구이장 사모님은 더우시다며 긴 바지에 스포츠 샌달을 신으시고, 구이장님은 딸의 졸업 가운과 모자를 죽어도 안 입고, 안 쓴다고 우기시더니 "내 너희들이 부탁하니 어쩔 수없이 한다"며 사진도 찍으셨습니다.

(그러시고는 매일 전화하셔서는 '왜 내 졸업사진 액자로 안 보내냐?'하십니다.) 

구이장 사모님 스포츠센달 보이시나요?
▲ 구이장의 졸업사진 구이장 사모님 스포츠센달 보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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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입도 삐뚤어진다는 처서 바로 전날, 무더위가 막판 열오르기를 하던 그날. 땡볕에 졸업한다고 욕바가지로 먹었던 그날, 다행히도 강당에서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두분이 지켜봐주셨습니다.
▲ 별난 딸년 졸업식 두분이 지켜봐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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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퇴직 무렵 무더운 여름의 대학교 졸업식 그리고 또다시 오랜시간이 흘러 맞이한 여름 졸업식. 이 자리에 서기까지 더위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신 두 분 많이 늙으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두 분 덕분에 꿋꿋하게 이 더위를 이겨내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빠,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늘 감사드려요!"

덧붙이는 글 | '폭염이야기' 공모글입니다.



태그:#무더위, #고추밭,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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