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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연극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포스터
▲ 연극 <선녀씨 이야기> 포스터
ⓒ PS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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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는 일이 이럴까, 도대체 한 사람 생이 뭐 이렇단 말인가. 위로 언니 여섯에 아래로 남동생을 둔 일곱째 딸 '선녀'. 먹고 살기 어려운 시절에 딸에게 학교 공부가 가당키나 했을까. 그래도 장사해서 돈 벌고 신여성이 되고 싶은 꿈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고된 농사일에 허리가 휘어진다. 

그러다 만난 남편. 군대 사고로 다리 한 쪽이 불편한 남편은 허구한 날 술 주정에 매질이다. 사남매 낳아 기르면서 억척스레 일해 손바닥만한 가게를 내지만 그것도 잠깐, 남편이 저지른 사고의 합의금으로 거덜나고 만다.

고단한 생활에 남편의 매질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아무리 옛날이라 해도 이혼할 생각인들 없었을까. 도망갈 생각은 안 해 봤을까. 아이들이 눈에 밟혀 수도 없이 발길을 돌리는 선녀씨. 객석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훌쩍임 소리는 비록 배 곯지 않아도, 비록 매 맞지 않아도 누구의 어머니라고 별다르지 않았을 삶을 우리가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찌 어찌 겨우 마련한 집 한 칸은 다단계로 빚을 진 큰딸에게로, 의사한테 시집가느라 혼수며 예단을 마련해야 하는 작은딸에게로 흔적도 없이 흘러가버린다. 거기다 큰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작은 아들은 집이 지긋지긋하다며 뛰쳐나가 무려 15년 동안 소식이 없다.

그래도 엄마는 자식들에게 늘 '괜찮다'고 한다. '됐다'고 한다. 고된 노동에 허리고 무릎이고 성한 데 없고 가슴 속마저 시퍼렇게 멍들었을 엄마 선녀씨는 무엇이 그리도 괜찮은 것일까.

병들어 자리에 누운 엄마는 혹시라도 잘못돼 자식들한테 짐이 될까봐 요즘 흔히들 알고 있는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 것을 녹음으로 남긴다. 그래놓고 1년 정도 버티다가 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는 연락조차 닿지 않았던 아들. 용케도 이번에는 엄마 빈소를 찾아든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단다.

연극은 엄마의 빈소 앞에서 현재와 과거가 수시로 바뀌면서 엄마의 한 생애가 고스란히 살아나고, 엄마 떠난 빈 자리에 모여 앉은 자식들의 눈물과 원망과 후회가 메마른 듯하면서도 촉촉하게 흘러다닌다.

엄마 살아온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하도 많이 들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식들. 그러나 정말 언제 한 번 제대로 엄마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본 적 있을까. 70년 세월 동안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한 번만, 정말 한 번만이라도 진지하게 들어준다면 엄마의 살아온 세월이 조금은 위로 받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 영정 사진 앞에서야 비로소 아들은 엄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마음으로 새겨 듣는다. 그래서 연극의 부제는 "이제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내 어머니 이야기"이다. 

눈물이 흘러내린다고 슬프고 무거운 연극이라 생각할 것은 없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극의 전개를 따라 웃음과 눈물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눈물이 나는가 하면 어느 새 웃음이 터지고, 마음 놓고 웃을까 싶으면 또 어느 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한 사람의 인생사와 가족사가 한 공간 안에서 탄탄하게 기둥을 이루고, 여기에 배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가 더해져 몰입하지 않을 수 없다. 연극 속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어머니가 아닌, 그런 세월을 실제로 살아오신 혹은 여전히 살아가고 계신 어머니들을 위한 연극. 또한 더 늦기 전에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려야 할 자식들을 위한 연극이다.

고단하고 힘든 생에 너희들이 있어서 좋았다고, 행복했다고, 괜찮았다고. 나 세상 떠난 다음이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왔으니 됐다고. 엄마는 늘 이렇다.

연극이 끝난 후 울어 퉁퉁 부은 눈을 하고도 서로 부끄러워하지 않은 까닭은 단 한 가지. 어느 한 사람 빼놓지 않고 누구에게나 다 이런 엄마가 있(었)으니까.

덧붙이는 글 | 연극 <선녀씨 이야기> (이삼우 작, 연출 / 출연 : 고수희, 이재은, 임 호, 진선규, 한갑수, 이혜리 등)
~ 9/15까지, 대학로 아트센터K 네모극장



태그:#선녀씨 이야기, #가족, #노인, #여성, #식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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