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글을 쓰는 건 번뜩이는 예술적인 영감으로 (작품을) 쏟아내는 일이 아니라 꾸준하고 성실하게 집필 활동을 이어가는 일이에요.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라는 점, 그것이 친구들이 생각하는 작가의 모습과는 다른 점이랄까요."

지난 9일 진행된 '문학 인터뷰 쇼'에서 이현 작가는 소설가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알려달라는 이혜인 친구의 날카로운 질문에 이처럼 답했다. 장마가 끝나고 후텁지근한 8월의 더위가 찾아온 오후, 인천 계수중학교 도서부 친구 11명은 소설가 이현과 함께 작가란 어떤 직업인지를 열심히 찾고 있었다.

대통령이 되고 싶다던 친구부터 사르트르에 관심이 있다던 중학생 철학자까지, 생김새부터 생각까지 모두 다양한 11명의 친구들은 그날의 피면담자였던 작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소설가 이현을 가운데 놓고 아이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소설가 이현을 가운데 놓고 아이들이 질문을 하고 있다.
ⓒ 김민호

관련사진보기


"돈은 얼마나 벌어요?"

글 쓰는 사람은 배고픈 사람이라는 보편적 인식 때문일까, 인터뷰 쇼 초반 친구들은 이현 작가에게 보수는 어느 정도 되느냐고 당돌하게 질문했다. 박명은 친구는 "돈을 못 번다는 이유로 부모님이 소설가는 하지 말라고 했다"며 "부모님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면서 이현 작가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작가가 노력에 비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은 아니지만, 경쟁이 치열한 지금, 작가가 특별히 더 고달픈 직업이라 말할 수 없는 것 같다"면서 "작가가 쪼들리긴 해도 돈과는 다른 차원에서 배부르게 해주는 그런 직업"이라 답했다.

이혜인 친구는 다시 자기 차례가 왔을 때 이현 작가에게 악성 댓글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고 물어봤다. 작가가 주저하지 않고 "뼈에 새겨 둡니다"고 답하자 연희문학창작촌의 자그마한 야외무대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책을 파악하는 독자분들이 있으셔서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이라는 것은 출간 후 저자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라며 "소설의 주인공은 그들대로 자신의 삶 속에서 커나간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을 객관화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돋보이는 답변이었다.

이현 "작가로서 제가 제일 좋아요"


작가는 요즘 유행하는 롤모델과 멘토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멘토나 롤모델과 같은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어떤 면으로는 좋은 사람이고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존경하는 사람이나 롤모델을 가지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봐요. 다른 사람의 장점을 골고루 취하고, 제 안에 있는 여러 모습 중에서 좋은 모습을 롤모델로 삼고 있어요. 저는 작가로서 제가 제일 좋아요. (웃음)"

이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진심으로 아끼는 듯했다. 이동희 친구가 맘에 드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이 있느냐고 물어보자 "더 예쁜 책과 덜 예쁜 책은 있지만 미운 작품은 없다"고 대답했다. 인터뷰 쇼의 주제가 되었던 <오 나의 남자들>이 제일 예쁜 작품이라고도 말했다. 그녀는 "집필 과정이 재미있었던 책이 더욱 눈이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부가 끝나고 씽어쏭라이터 '이씬'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연출을 맡은 김미순 프로슈머는 이번 '인터뷰 쇼'가 "문학과 음악이 조응하는 통합 예술 프로그램으로 기획되었다"면서 "아이들이 직접 가사를 쓰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창조적 소통과 교감의 묘미를 살리는데 초점을 두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29만 원 밖에 없는 그분, 여러분과도 연관 있어"

1부가 끝나고 싱어송라이터 '이씬'의 공연히 한창일 때 기자는 '인터뷰' 강의자에게 다가가 이현 작가를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다. 강의자는 "이현 작가분이 청소년 작가, 동화 작가 중에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아이들 개인이 겪는 문제와 잘 엮어내는 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 나의 남자들>에서 주인공 '나금영'의 첫 번째 남자는 인터뷰 쇼가 펼쳐졌던 야외무대 바로 뒤쪽에 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계수중학교 친구들도 이현 저서의 특징을 눈치챘던지 청소년 소설에 시사적인 내용이 들어가는 것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부담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일국의 대통령 정도 하실 분이면 이름 정도는 예술가가 쓸 수 있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며 "오히려 강동원의 이름을 쓸 때 더 부담스러웠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어 그녀는 "저 나무 목책 넘어 사시는 분도, 지금의 대통령도 모두 우리와 연관이 있다"면서 "청소년이라고 해서, 어린이라고 해서 시사적인 내용과 분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학창시절에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현 작가는 자신이 중학교 때는 순정만화를 굉장히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수업시간에 몰래 '인소(인터넷 소설)'와 비슷한 연애소설을 쓰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저는 사람을 가리는 편이 아니라 다양한 친구들을 사귄 편이에요. 다양한 계층의 친구들,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커지더라고요"라고 말하며 자신처럼 청소년들이 사회는 같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꼭 해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작가님이 꿈꾸는 세상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그녀는 "꿈꾸는 세상이 없다고 하면 혼날 것 같다"고 웃은 뒤 자신이 쓴 <그 여름의 서울>이라는 작품을 인용했다. "제가 그 작품에 '빼앗지 않아도 풍요로울 수 있고 올라서지 않아도 존엄할 수 있는 세상'이란 말을 썼어요. 모두가 서로 존중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라 말했다. 이현 작가가 왜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아이들의 책에 사회문제를 녹여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답이다.

인터뷰 쇼 1부가 시작되기 전에 인터뷰할 친구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인터뷰 쇼 1부가 시작되기 전에 인터뷰할 친구들이 모두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 김민호

관련사진보기


계수중학교 친구들이 인터뷰자로 참가한 쇼가 끝나면서 이현 작가는 "강연보다 이런 방식이 더 좋은 것 같다"면서 "아이들과 소통하는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미순 프로슈머는 행사 후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과정의 소중함, 소통의 소중함, 창조의 기반이 되는 열정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자신만의 창조물을 발표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천 계수중학교 11명의 도서부 친구들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이씬'과 작사한 노래와 함께 그들만의 책으로 엮어질 예정이다. 도서부 이미숙 선생님은 "아직 걸음마 단계고 준비된 건 없지만, 아이들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빈 종이에 친구들이 어떤 꿈의 이야기를 담을지 궁금해진다.


태그:#계수중학교, #이현, #오 나의 남자들, #연희문학창작촌, #전두환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