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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적대정책과는 다를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취임 5개월동안 현재까지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왔고 어떤 정치적 파고에도 끄떡없던 개성공단은 사실상 폐쇄상태다. '남북 간 신뢰를 만들겠다'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정책효용성이 있는 건지, 오히려 불신의 골을 깊게 하는 건 아닌지 짚어볼 때가 됐다. 박근혜 정부가, 또 김정은 정권이 서로에게 취한 조치들을 짚어보면서 '한반도 불신 프로세스'의 원인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예비후보 시절인 지난해 7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DMZ(비무장지대)를 방문해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예비후보 시절인 지난해 7월 18일 강원도 철원군 DMZ(비무장지대)를 방문해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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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고, 정전협정을 맺은 당사국들이 함께 국제적인 규범과 절차, 그리고 합의에 따라 평화공원을 만든다면 그곳이 바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유엔군 참전 및 정전 60주년 기념식 연설에서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 의지를 밝혔다. 지난 5월 8일 미국 방문 중 의회 상·하원합동회의 연설에서 밝힌 구상을 재확인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DMZ 세계평화공원과 비슷한 개념을 이미 제시했다. 경기도 지역 유세, 특히 의정부 등 경기 북부 지역 유세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는 DMZ 일대에 '한반도 생태평화벨트 조성'을 약속했다. 지금과의 차이라면, 당시는 경기도 지역공약 차원으로 나왔고, 외교·통일 분야 공약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비슷한 구상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의 대표를 맡고 있던 2004년 17대 총선 때도 나왔다. 새누리당은 총선 공약으로 "남북접경지대에 평화구역을 설치해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평화공원 등을 조성하겠다"며 "비무장지대의 자유무역화, 개성공단 개발을 적극 지원하여 남북한 공동발전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200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 박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합의했던 내용도 눈에 띈다.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이산가족 상설 면회소 설치'를 제안했고 이에 대한 동의를 얻어냈다.

박 대통령의 2002년 방북 합의와 2004년 한나라당 총선 공약을 종합해보면, 당초 박 대통령의 구상은 DMZ에 이산가족 면회소를 설치해 이산가족 상봉을 상시화하고 평화공원도 조성하는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2008년 7월 금강산에 이산가족 면회소가 이미 완공, 대통령에 취임한 현재는 평화공원 구상만 남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평화공원 구상이 순전히 박 대통령의 아이디어인 것은 아니다. 지난 1991년 8월 제네바에 본부를 둔 민간환경보호단체인 국제자연보존기구(IUCN)가 지난 8월 유엔환경계획(UNEP)을 통해 DMZ에 '평화자연공원'을 조성할 것을 남북한에 제안한 바 있다. 이후 비슷한 내용이 여기저기 차용돼 간간이 제안되기도 했다. 

"세계인 자유왕래 지역으로... 북한 협조 반드시 필요"

개성공단 출입차단 119일째인 7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개성공단 입주기업 긴급 비상대책회의에서 문창섭 공동위원장이 최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이 결렬되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 속 타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개성공단 출입차단 119일째인 7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열린 개성공단 입주기업 긴급 비상대책회의에서 문창섭 공동위원장이 최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이 결렬되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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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박 대통령이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을 밝힌 직후 정부는 통일부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를 꾸리고 구체화 작업에 들어갔다. 서쪽 DMZ에 맞닿은 경기도와 동쪽 DMZ에 맞닿은 강원도는 서로 세계평화공원을 자기 지역으로 유치하기 위한 여론전에 들어갔다.

그러나 입지는 물론, 평화공원에 담을 테마 등 주요내용은 검토 중이다. 다만 세계평화공원은 DMZ 내 군사분계선에 걸쳐서 조성되고, 남북 모두 평화공원 주변 일정 범위의 군사력을 철수하는 방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당국자는 "단순히 건물을 짓고 개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남북의 주민들뿐 아니라 세계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게 기본구상"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DMZ 안에 만드는 것이라 북한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어떤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미국·중국·UN 등 국제사회가 적극 협조하고 나선다 해도 북한이 거부하면 현실화할 수 없는 구상인 셈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결렬된 뒤, 정부가 '중대조치'를 예고하며 회담 복귀를 종용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전혀 없이 남북 간 불신만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일 정부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인하기보단 "우리 국민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압박했다. 현재 상황에서 남북의 상호 신뢰를 전제하는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현실화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

남북간 세계평화공원 논의를 시작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스스로 발을 묶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북한은 지난 10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당국 간 실무회담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금강산관광과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위한 회담을 제안했지만, 정부는 '개성공단 문제에 집중하자'는 입장을 밝히며 거부했다. 개성공단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세계평화공원에 대한 남북 논의도 시작될 수 없는 것이다.

"개성공단·금강산만 한 평화공원이 어디 있나?"... "남북 정상 합의 필요"

6월 27일 의원총회에 참석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2007년 11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측이 정상회담 내용을 근거로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6월 27일 의원총회에 참석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2007년 11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에서 북측이 정상회담 내용을 근거로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 포기'를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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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 평화공원이 왜 필요한지를 대통령이나 정부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접경지에서 서로 군사력을 뒤로 물리고 상호 이익이 되는 활동을 통해 화해와 교류·협력을 넓혀나가기 위해 평화공원을 만드는데, 이런 목적에서 본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만큼 평화공원의 개념에 잘 맞는 게 어디 있느냐"고 했다. 김 교수는 "시급한 건 새로 평화공원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개성공단 폐쇄를 막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미국 방문 중에 DMZ 세계평화공원 구상이 제시되는 과정을 봐도 면밀한 검토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게 아닌가 한다"며 "정상적이었다면 관련 부처의 검토가 선행되고 대통령의 구상제안에 이어 세부적인 계획들이 발표됐을 텐데, 이번엔 대통령이 제안한 뒤 정부가 관련 검토에 들어갔다"고 지적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도 "현재 DMZ의 법적 지위로 보면, 단순히 출입하는 것도 UN군사령관(주한미군사령관이 겸직)의 허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안에 공원을 조성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이건 남북이 장관급 정도의 합의로 추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남북 정상간 합의를 이루고 그를 토대로 미국 등 관련국의 긴밀한 협조를 얻어내야 현실화할 수 있는 계획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리적 모순과 현실적인 어려움 외에도 DMZ 세계평화공원을 현실화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당면한 어려움은 많아 보인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과 국방부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록을 공개하면서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을 폈다.

박근혜 대통령이 DMZ 내 군사분계선 위에 세계평화공원을 조성하는 것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위에서 남북공동어로구역을 설치하는 문제가 어떻게 다른지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세계평화공원에 대한 여론의 뒷받침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태그:#DMZ 평화공원, #박근혜, #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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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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