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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창립한 싱크탱크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으로 최장집 교수가 취임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곧바로 기간 진로를 고심하던 안 의원이 어느 정도 방향을 잡은 게 아니냐는 예측도 뒤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최장집 교수는 국내 정치학계에서 대표적인 '정당정치' 신봉자이자 이론적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화제는 신당이 출현할 경우 현행 굳건한 양당 체제 하에서의 기존 정당들이 가지게 될 이해득실 계산으로 흘러갔다. 지긋지긋하게도 말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최장집 교수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정당과 정당 정치가 과연 무엇일까'가 아닐까. 그간 최 교수는 꾸준히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에 대한 생각을 밝혀왔다. 다양한 세부 분야에 대해 자신의 '정당정치론'을 접목해 폭넓은 고민을 보여줬다. 그리고 꾸준히 해답으로 정당정치를 제시했다.

가장 최근에는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문제에 관하여'라는 부제가 달린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세상에 내놨다. 물론 책 몇 권으로 그가 일생에 걸쳐 성취한 학문적 성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최장집 교수의 발자국을 살짝 엿볼 수는 있지 않겠는가. 그가 꾸준히 쌓아왔던 학문적 족적을 통해 나는 작은 기대감을 품을 수 있었다. 정당정치라는 대전제는 차치하고라도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이 정치라는 도구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리라는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그에 대한 잘못된 이해

꾸준히 정당정치를 주장해온 최장집 교수의 신간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겉표지
 꾸준히 정당정치를 주장해온 최장집 교수의 신간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겉표지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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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민주주의가 무엇이냐'를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과 혼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특정의 고정된 교범에 따라 작동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민 주권과 정치 참여를 핵심 내용으로,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을 가지는 게 민주주의다. 이런 성격 탓에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가 생겨나고,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을 혼동하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시급히 시정돼야 할 문제는 양분된 정치 세력화다. 마치 이념과 생각이 딱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 같다. 우리가 아니면 너희가 돼버린다. 이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다. 저자는 '진영 내부에서 자기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것만큼 위험하고 비민주적인 것은 없다'고 지적한다.

"진영 간 대립의 논리가 파생시키는 문제점은 많다. 그것은 아와 피아, 적과 우군과 같이 양극화한 상황 설정을 동반하고 적과 상대하기 위한 힘의 최대 결집을 요구한다. 때문에 진영 내부의 통합과 통일성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동안 견해 차이와 내부 비판을 억압하는 효과를 가져오기 쉽다. 이견과 반대의 목소리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가운데에서도 소수 세력의 의사표현이 심대하게 제약된다."(본문 98쪽)

민주주의의 본질은 누군가가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의해버리기 이전에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것들 속에서 발견되고 진화되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이를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인민을 위해 민주주의가 만들어졌지, 민주주의를 위해 인민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결국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투표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투영하고 이익과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당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정치적 리더십과 조직, 대중과 전문가의 협력, 정치적 이슈의 올바른 정의, 지지자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의제의 상정 등 민주정치의 대부분은 정당의 기능과 관련된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잘 실천하는 것의 책임은 도덕적 책무를 부과받는 시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의사와 요구를 잘 대표해야 할 정당에 있다.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유념해야 할 문제는, 민주주의에서는 그 누구도 시민들을 도덕적으로 압박할 특권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본문 108쪽)

진보세력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카페에서 싱크탱크 성격의 정책네트워크 '내일' 출범을 공식 발표했다. 안 의원이 '내일'의 이사장을 맡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소장을 맡은 장하성 전 안철수 대선캠프 국민정책본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창비카페에서 싱크탱크 성격의 정책네트워크 '내일' 출범을 공식 발표했다. 안 의원이 '내일'의 이사장을 맡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소장을 맡은 장하성 전 안철수 대선캠프 국민정책본부장과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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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런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정치가들이 일종의 '지위재'(Positional goods·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를 위한 연기 내지 퍼포먼스를 기계적으로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저 말하기로 돼 있는 것을 말하고, 보여주기로 돼 있는 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이는 각자의 진영 논리를 익히고 말하는 게 생산적인 공적 토론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진보든 보수든 지식인으로서의 위신과 지위를 갖게 만드는 그들만의 담론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정치 세력이 현실 문제에 대한 고민보다, '지위재'를 위한 의도적 충돌에 집중하는 동안 사회에서 시급히 풀어가야 할 문제들은 쌓여만 간다. 건전한 공적 논의와 정책 경쟁이 없이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취약 근로 계층의 고용 불안과 소득 감소, 영세 자영업자들의 어려움, 노사 관계가 실종된 상황 그리고 그에 따른 빈부 경차의 증대 등과 같은 사회 통합을 위협하는 조건을 어떻게 완화해 갈 수 있겠는가.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즉, 보수와 진보는 실제의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차이를 만들어 가는 새로운 경쟁의 틀을 발전시켜야 한다. 정치의 언어와 그 충돌 양상만 달라질 뿐 내용은 하나도 변하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실제로 새롭게 개척할 수 있는 경쟁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진보파가 집권하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개척해 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보수파 정부와 비교해 자신들도 마찬가지로, 혹은 그보다 우월하게 정부를 운영할 수 있다는 통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세계경제의 조건과 제약 속에서 성장과 분배, 복지, 환경이 병행 발전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비전과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정치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갖는 최고의 매력은 다수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현실적인 대안을 조직하는 세력이 된다면 언제든 통치의 기회와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데 있다."(본문 127쪽)

그에 따라 진보적 지식인들의 이념과 태도도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선거에서 무조건 승리해 어떻게든 통치권을 되찾아오는가'보다 '어떻게 정부를 잘 운영하고 좋은 정책을 생산해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책임 윤리는 바로 이것이다. 진정으로 진보적인 인사라면 권력을 잡는 것 자체가 최고의 목표일 수는 없는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여기에 지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현실 변화에 대응하고 진보가 근대화하기 위해 자유주의를 비롯한 여러 다양한 보편적 이념과 가치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이를 진보적 지식인 사회의 ('변화'가 아닌) '변형'으로까지 표현했다.

"진보적 지식인은 무엇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새롭게 제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 하지 않는 한 상황은 나아질 수 없을 것이라고 할 때, 그 출발은 과거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돼야 할 것이다."(본문 167쪽)

해답은 '책임 있는 정당 정부'

결국 지금까지 논의된 것들은, 국가 전체의 이익은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의 부분 이익들의 총합이고 각 집단들은 정치 과정에서 소외됨이나 배제됨 없이 자신의 이익과 가치, 열정과 비전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공적으로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귀결된다. 또한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한 해법으로 저자는 '책임 있는 정당 정부'를 제시했다. 민주정치는 대표의 선출과 함께 선출된 대표가 그를 선출한 이들을 책임지는 두 가지 과정으로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통령의 책임성 부재'는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다. 선거 때만 민주주의가 있고 평상시에 없다면, 그것은 왕을 선출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선출된 대표자는 지지자들을 명확하게 대표하고, 대표자는 정당을 통해 지지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이를 정부 구성까지 이어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내각은 특정 정책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면서 선거 공약을 이행할 정책 수행의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문제의 근본으로 돌아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당을 바로 세우는 것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이다. 대통령 개인의 사인화된 정부가 아니라 정당의 정부를 만드는 일은, 오늘의 한국 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이기 때문이다."(본문 358쪽)

이와 더불어 '대표' 개념의 변화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 그간 정당들은 여성·노동·청년·시민운동 대표를 개별적으로 배려하는, 일종의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대표'의 수준에만 머물렀다. 앞서 저자가 지적했던 '지위재'를 공고히 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그런 대표를 뽑았다는 것과 그들을 대표하는 정당이 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바로 이 '대표'의 개념을 특정 사회계층이나 집단·직업·기능적 분야에 속한 사회집단과 실제로 연계해 하나의 정당 안에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와 과업에 충실할 수 있는 것으로 바꿔야 한다.

최장집 교수가 지금껏 논의한 이 모든 것들은 정당 간의 경쟁이 상대를 모욕하고 상처를 주는 데서 벗어나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을 중심으로 전개할 수 있게 하리라는 희망을 보여준다. 나 또한 다음과 같은 글귀에 밑줄을 그으면서, 저자가 말한 '책임 있는 정당정치'에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만들어 내는 불평등과 사회 해체 효과를 제어하고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인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가 길을 열어 준 정치의 방법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현대 민주정치에서 그 핵심은 좋은 정당을 만드는 데 달려있다."(책 서문에서)

덧붙이는 글 |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최장집 외 4인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2013.04, 1만8천원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문제에 관하여

최장집.박찬표.박상훈 외 지음, 후마니타스(2013)


태그:#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최장집,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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