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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저지 산속 농성장에 나붙어 있는 현수막
▲ 핵폭탄 보다 무서운 할머니들 밀양 송전탑 저지 산속 농성장에 나붙어 있는 현수막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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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녹색평론 울산모임 회장님이 밀양에 볼일보러 간다고 했습니다. 저도 녹색평론 울산모임 회원이어서 녹색평론 울산모임 카페를 자주 들어가 봅니다.

"회장님 가시는 데 저도 같이 따라가보면 안 되나요?"

회장님은 혼자 심심한데 잘 되었다며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회장님은 5월 녹평모임을 울산과 함께 가져보자고 해서 협의차 간다고 했습니다. 오후 5시경 출발해서 밀양 녹평모임에 참석하고 온다고 했습니다. 밀양 녹평모임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도 볼 겸 해서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녹색평론 모임은 전국에 걸쳐 있습니다. 녹색평론이란 책이 이미 오래전부터 2개월에 한 번씩 발행되고 있습니다. 녹평모임은 그 책을 보고 토론도 하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별 환경문제에 대해 함께 공유하고 작으나마 지구환경을 위해 실천합니다.

울산을 출발한 우리는 한시간 남짓 걸려 밀양에 도착했습니다. 밀양 녹색평론모임은 그날 알뜰장터 행사를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도착하니 행사를 마무리하는 싯점이었습니다. 행사 짐보따리를 차에 싣고 같이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그 건물에는 밀양두레생협도 있고, 전교조 밀양지부도 있었습니다. 밀양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모임장소로 쓰이는 건물 같았습니다. 우리가 들어간 허름한 건물 앞에는 커다란 교회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저녁 시켜 놨으니 같이 먹고 회의합시다."

잠시 있자니 분식점에서 시킨 여러가지 음식이 도착했습니다. 모임에서 준비한 주먹밥도 있고, 김밥, 육계장과 밥이 차려졌습니다. 배고프던 차에 허겁지겁 음식을 챙겨 먹었습니다. 저는 그냥 들러리로 간 것이라 참관만 했습니다. 회의는 길지 않게 끝났습니다. 5월 모임 날과 시간을 잡는 일정이라 간단하게 끝난 것이었습니다.

"회장님, 우리 밀양 온 김에 밀양 철탑농성장이나 한 번 들러고 가시죠?"

예정 시간보다 일찍 일정이 끝나서 회장님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습니다. 밀양에서 활동하는 분들에게 알아보니 한전이 밀양에 세우려고 하는 송전탑이 무려 69개나 되었고 지금 밀양 송전탑 건립을 반대하는 마을만도 8곳이나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곳을 알려 주었습니다. 회장님은 네비에 알려준 주소를 쳐 넣고 출발했습니다. 가다가 가게에 들러 라면과 커피를 샀습니다. 농성장에서 필요할거 같았습니다. 15분쯤 도로를 달린후 네비 지도는 산속으로 안내했습니다. 차량은 산위로 올라 갔습니다. 산 하나를 넘으니 그곳에 마을이 있었습니다. 네비는 마을 끝머리에서 알림을 중단했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대항리 19번지였습니다.

따뜻한 방안, 다 이유가 있었다

밀양 녹색평론 모임터 벽면에 붙어 있는 벽보.
▲ 765Kv 절대안돼! 밀양 녹색평론 모임터 벽면에 붙어 있는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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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오다 천막이 있던 그곳인가 보네."

산길로 접어들어 올라오다보니 입구와 산 윗 길에 농성장인듯한 천막이 있었습니다. 두 곳 중 산 위에 있는 천막을 찾았습니다. 검은색 천막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고 할머니 세 분이 앉아 계셨습니다. 우리가 문을 두드리니 나오면서 누구냐고 했습니다. 긴장과 경계심이 묻어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환경모임을 하고 있으며 울산에서 왔노라고 이야기해드렸습니다. 그제서야 할머니들은 우리를 반갑게 대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 세상이 몰라요. 선생님들이 사는 곳에 가시면 우리가 왜 싸우고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좀 알려 주시오."

할머니는 우리가 앉자마자 그렇게 신신당부부터 했습니다. 저는 밀양 송전탑 이야기를 울산에서 듣기는 들었으나 심각성을 잘 몰랐습니다. 밀양의 여러 마을 주민들이 왜 그렇게 9년이 다 되도록 대한민국 공기업인 한국전력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지 할머니에게 들은 후에야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성장 안에 들어가 앉으니 온기가 있었습니다. "방이 따뜻하네요?" 하니까 할머니가 말합니다.

"처음엔 컨테이너 놔두고 돌아가며 철야농성을 했어요. 할매들이 추워서 견딜수가 있어야지. 하다보니 하루 아침에 끝날 싸움이 아니겠다 싶었어요. 긴 시간 농성을 이어 가려면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구들을 놓았지요."

산속 농성장 안은 전기도 들어오고 냉장고도 있었습니다. 반찬 가져다 밥도 해먹으며 돌아가며 농성장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흙을 퍼올려 구들을 만들다보니 바닥이 울퉁불퉁 했습니다. 8년 넘게 한전 송전탑 건립반대 농성을 이어와서 그런지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도 농성을 멈출수 없음을 한 할머니가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송전탑 생긴 마을, 거긴 폐허더라"

송전탑 건설 저지 농성장 주변에 여러개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 대항리 가는 길 옆 송전탑 건설 저지 농성장 주변에 여러개의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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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대부분 사람들이 대대로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인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여기서 병자호란 때부터 14대를 이어온 분들도 계세요. 그런 우리마을을 한전은 보상 몇 푼으로 모두 내 쫓으려 하고 있어요. 우린 이곳에 살다가 이곳에 묻힐 겁니다. 전문가에게 의뢰해 서로 좋은 방도를 알려 주었는데도 한전은 한사코 우리 마을에다 수십 개의 송전탑을 세워 쑥대밭을 만들겠다 합니다. 우린 우리의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한전은 도시인의 전기공급을 위해서 시골을 망가 뜨리고 있습니다. 도시인만 사람이고 시골사람은 사람도 아니랍니까?"

우리가 방문한 밀양 철탑반대 농성장은 650고지 높은곳에 사는 주민들이었습니다. 지대가 높다보니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전기부터 끄는게 일이라고 합니다. 안그러면 전류에 벼락이 쳐서 집안에 있는 전기제품이 모두 고장이 나버린다고 합니다.

"송전탑 없는 지금도 벼락 칠 때면 겁나는데 765Kv 초고압이 집 위로 흐른다 생각해봐요. 잠이나 제대로 오겠어요? 잠자려면 머리 위에서 지지징 하면서 전기 흐르는 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운데요. 당진·아산·충남 가보셨어요? 우리 마을 사람들은 한전에서 송전탑 세운다 해서 먼저 세워진 마을을 찾아가 보았어요. 송전탑 총총이 박혀 있는 마을은 완전 폐허가 되다시피 한 걸 우린 직접 눈으로 목격 했어요. 소나 돼지도 못길러요. 교배를 해도 새끼를 못가져요. 송전탑 아래 사는 사람들은 멀미 난거 처럼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암도 발생 되었다는 분도 계셨어요. 땅과 집을 헐값에 내놔도 사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그것을 보고 송전탑 피해가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하는 걸 보아서 알게 되었어요."

저는 작년 초에 일어났던 분신사태에 대해 조심히 물어보았습니다.

"말도 마세요. 그날 얼마나 살벌했다구요. 2012년 1월 16일이었어요. 한전에서 깡패를 투입했어요. 마을 주민 한분이 자신의 농사지을 논 한복판에다 철탑을 세운다 하니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작년에 74살 된 영감이었는데 업체 사람들이 와서 공사를 하려해서 논에다 물을 가득 퍼넣었어요. 1월이면 얼마나 춥습니까? 그런데도 부애가 나니까 밤새 물을 퍼넣은 거죠. 그날 낮 깡패들이 와서 한바탕 싸움이 일어 났어요. 분에 못이겨 세 번이나 분신을 시도하다 결국 그날 오후 8시께 또 갑자기 몸에 휘발유를 잔뜩 붓고는 불을 붙히고 말았어요. 휘발유를 너무 많이 부었는지 불도 잘 꺼지지 않았어요. 안타깝게도 그분은 돌아가시고 말았어요."

할머니들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이아무개 할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고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던 한전에서 다시 공사를 진행시키려고 한다는 것 입니다.

"한전엔 그런 부서가 따로 있나 봐요. 한전 사람들이 왔다가면 마을 사람들이 분열했어요. 들리기로 그들은 100가지가 넘는 설득 방법을 학습받고 투입된다고 합디다. 그래서 우리도 유서를 써놓고 싸우겠다고 다짐을 했어요. 우리의 소박한 바램이 안 먹히니 어쩌겠어요."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하러 한전에서 올까봐 길옆에서 농성중이었다.
▲ 대항리 주민 농성장 막사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하러 한전에서 올까봐 길옆에서 농성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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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전탑 세우려 산에 나무를 베어 낼때 할머니들은 온 몸으로 막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젊은 구사대를 막아 내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나무는 잘려 나가고 막은 할머니는 업무방해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구사대에게 맞아 몸져 눕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9년째 대한민국 공기업인 한국전력과 '맞짱'뜨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마을 주민들은 밀양 송전탑에 대한 다른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해법 토론회도 열고 공청회도 열었습니다. 한전과 수차례 간담회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전은 다른 방안에 대해선 검토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할머니는 우리가 일어서니 못내 아쉬워 했습니다. 밀양에 송전탑 반대 농성장이 있다는 사실을 많이 알려 달라는 할머니들. 등 뒤에다 어느 할머니가 한마디 했는데 가슴이 뜨끔한 말이었습니다.

"전기 만들려고 핵발전소 자꾸 만들면... 그거 전쟁 터지면 큰일 아이가. 핵발전소에다 폭탄 터트리면 그게 뭐되겠나. 바로 핵폭탄이 터지는기제."

그 말 속에 밀양 대항리 주민들이 9년간 한전과 싸우고 있는 이유를 함축하고 있는거 같았습니다. 한전과 송전탑이 세워질 예정 지역 밀양 주민과 마찰은 계속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1시간 남짓 농성장을 지키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밖으로 나오니 칠흑같은 어둠이 산속을 휘감고 있었습니다. 울산으로 오면서 농성장 벽에 쓰여 있던 글귀가 머리속을 뱅뱅 돌았습니다.

'핵발전소를 더 짓지 않으면 만들지 않아도 될 초고압 송전탑. 미친듯이 펑펑 써대는 전기를 조금이라도 아껴 쓴다면 만들지 않아도 될 이 죽음의 철탑. 새까맣게 타들어간 일흔네살 이아무개 할아버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는 힘을 모아 싸워야 합니다.'

9년이나 한전을 상대로 농성을 이어가다보니 농성장을 구들방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울산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밀양 송전탑에 농성에 대해 알려 달라 신신당부 하시는 할머니. 9년간 한전과 싸워온 이야기를 한숨쉬며 해주셨다.
▲ 울퉁불퉁한 바닥 9년이나 한전을 상대로 농성을 이어가다보니 농성장을 구들방으로 개조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울산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밀양 송전탑에 농성에 대해 알려 달라 신신당부 하시는 할머니. 9년간 한전과 싸워온 이야기를 한숨쉬며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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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녹색평론, #밀양 송전탑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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