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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사장이 물러났다. 170일간의 파업과 230명이 넘는 대량 징계는 그가 남긴 상처다. 이제는 그 후가 중요하다. 상처를 씻기 위해, MBC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오마이뉴스>는 MBC 내부 인사와 언론 전문가 릴레이 기고를 통해 그 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말]
김재철 MBC 사장이 지난 3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회에 출석해 자신의 해임안에 대한 소명을 한 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회의실을 나오고 있다.
 김재철 MBC 사장이 지난 3월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회에 출석해 자신의 해임안에 대한 소명을 한 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회의실을 나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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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사장은 물러났지만 MBC가 정상화되려면 아직도 길고 먼 숱한 고비를 넘어야 한다.내부의 긴장감이 풀리거나 안도감이 확산되는 것은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일이다. 오랜 싸움에 지치다 보니 이제 피로증이 쌓였을 수도 있고, 김 사장을 해임시켰으니 어느 정도되지 않으냐는 심리가 슬그머니 일어날 수도 있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해 국회안에 설치하기로 한 방송공정성 특위의 활동을 지켜보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을 법하다.

그러나 방송 공공성을 구현해야 할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데 공영방송을 위한 제도와 환경이 저절로 주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순진하기 그지없거나 책임회피로 보인다.

또 해고자를  복직키고 징계와 소송을 철회하는데만 지나친 관심을 기울일까봐 우려스럽기도 하다. 자칫하면 무엇을 위해 그 어려운 싸움을 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미 법원도 "방송제작을 맡은 기자와 아나운서, PD를 관계없는 부서에 발령낸 것은 권리남용"이라고 밝혔으므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을 되새기고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면서 구체적 방안을 요구해야 할 때다.

MBC 정상화, 새 사장 선임 위한 논의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첫 관건

이진숙 MBC기획조정본부장이 지난 3월 26일 오전 김재철 MBC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결정되는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이진숙 MBC기획조정본부장이 지난 3월 26일 오전 김재철 MBC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결정되는 서울 여의도 방송문회진흥회(방문진) 사무실에 도착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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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장을 선임하기 위한 논의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첫 관건이다. 상처받은 구성원들과 조직을 추스르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인물이 새로운 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 공영방송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기본이다. 어떻게 그러한 인물을 가려서 선임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MBC 정상화의 핵심은 공정성 회복이다. 추락한 시청률을 높이고 프로그램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공정성과 신뢰를 되찾지 않고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의미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은 내부 구성원들의 지지와 신망없이는 불가능하다.

방송은 일반 제조업과는 직무의 성격과 수행과정이 다르다. 일사분란한 지시나 간섭과는 애초에 잘 맞지 않는다. 억지로 쥐어짜거나 달달 볶는다고만 되는 것도 아니다.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열정없이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방송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가 열정의 원천이다. 조직 구성원들을 통제와 장악의 대상으로 여기는 인물로는 공영방송이 제자리를 찾아 갈 수 없다.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수렴하고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내부에서 공영방송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와 제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방안과 의지가 중요하다. 공영방송의 경영권이나 편성권은 국민이 방송사에 위임한 권리이다. 내부의 적절한 견제와 감시없이 경영진에게만 맡겨놓으면 권력과 자본의 힘에 휘둘려서 그 위임을 충실히 하지 않을 위험이 언제나 도사린다.

모든 신뢰와 사랑은 잃기는 쉽지만 회복은 어렵고 더디다. 땡전뉴스로 기억되는 지난날의 수난과 치욕의 역사를 딛고 수십 년간을 쌓아온 MBC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 그 주범을 내보내고 이제 겨우 회복을 향한 첫 걸음을 하려는 순간이다. 정치적 논란이 일어나면 회복기에는 더 할 수 없는 치명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이미 조직의 체질은 허약해졌고 기운은 탈진했다. 스스로 이겨낼 면역력과 저항력이 소진되어 있는 상태다. 면역력은 이물질이나 병균에 대한 방어시스템이다. 또 세균이 들어오더라도 큰 병으로 이어지지 않게 막는 구실을 한다.

물론 병균이 내몸 근처에 얼씬 거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청결하고 소독해도 세균은 곳곳에 득실거린다. 우리는 무균사회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권력과 자본이 방송 통제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틈만 나면 방송통제의 유혹에 빠질 우려가 높다. 아무리 방송 독립과 공정성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만들어도 한계는 명백하다.

내부적인 견제 장치와 자율성은 부당한 간섭과 개입에 저항하는 공영방송의 면역력이다. 외부 침입을 막아내는 바리케이트다. MBC는 수십 년에 걸쳐 내부적인 자율성의 장치와 문화를 장착시켜왔다. 경영진을 통해 들어오는 부당한 압박과 개입에 대한 비판과 견제 역할을 해왔다. 그것이 권력과 자본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성역없는 비판과 감시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었다. 그 때문에 일부 언론과 정치세력들은 MBC를 노조에 의해 움직이는 노영방송이라고 부르면서 폄훼했다. 그러나 이것은 오히려 자율성이 살아 있어서 정치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방송의 공영성을 지킬 수 있는 방패막이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다.

방송 공정성 위한 싸움으로 입은 상처 치유하는 일 시급
지난해 8월 21일, 170일간 진행된 MBC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업무 효율성'을 이유로 보도 영상 부문 조직개편을 단행해 논란을 빚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조직개편에 항의의 의미로 삭발한 카메라 기자들과 조합원들이 보복인사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지난해 8월 21일, 170일간 진행된 MBC노조 파업이 끝난 뒤 사측이 '업무 효율성'을 이유로 보도 영상 부문 조직개편을 단행해 논란을 빚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MBC 사옥 '민주의 터'에서 조직개편에 항의의 의미로 삭발한 카메라 기자들과 조합원들이 보복인사 중단을 요구하며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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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정방송을 위한 싸움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파업하면서 급여를 더 올려 달라거나 복지를 늘려달라는 잇속을 요구하지 않았다. 권력과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도 아니었다. 급여도 지급되지 않아 생활인으로서의 어려움을 견디면서 방송인들의 상식과 양심에 따라 공영방송을 권력의 품에서 국민의 품으로 돌려 달라고 외쳤을 뿐이다.

공영방송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해고와 징계, 인사보복 등의 수난을 기꺼이 감수한 것이었다. 권력에 굴종하거나 부역한 사람은 득세하는 반면 권력의 부당한 개입에 온몸으로 맞선 사람은 불이익을 받는 조직은 건강해질 수 없다.

방송 공정성을 위한 싸움을 하다가 입은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시급하다. 공영방송에 대한 신념이 옳았고 그들의 용기 행동이 의미있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내부적인 저항정신이 살아 있게 있어서 공영방송의 지켜내는 보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 사장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와 방법을 거쳐 국민과 내부 구성원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화려한 말잔치로 된 약속은 믿기 어렵고 공허하다. 서류 심사와 면접 심사를 거치는 공모 과정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계획을 명문화하여 제시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방송문화 진흥회 이사들은 MBC에 대한 관리 감독 역할을 제대로 못해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의 노력으로 만들어온 사회적 자산인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무거운 책임이 있다. 이번 사장 선임 과정은 그 책임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기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연우 교수는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로 한국언론정보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습니다.



태그:#김재철 사장,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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