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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신년 운세 보러 서울 미아리 돈암동을 찾았다. 한국에서 제일 규모가 큰 점성촌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만큼 '용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6일 찾아가 보니 최대 규모의 점성촌답게 골목 대부분이 점집이었다. 한 집 건너 점집이 있을 정도였다. 

미아리 점성촌은 현관문마다 초인종이 있거나 사람 움직임을 감지해 알리는 벨이 있다. 어느 점집에 가야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제일 가운데 있는 집에 들어갔다. 초인종을 누르니 잠시 후 한 아주머니가 나와 길을 안내한다. 미아리 점성촌 역술인 대부분은 맹인이라고 했다. 

역술인이 내게 한 말은...

미아리 점성촌의 한 점집. 손님 맞이에 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슬리퍼 한 짝이 전부 였다.
 미아리 점성촌의 한 점집. 손님 맞이에 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슬리퍼 한 짝이 전부 였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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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집 내부는 일반 가정집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선글라스를 낀 할아버지가 방에 앉아 있다. 그는 복채를 먼저 달라고 요구했다. 가격은 개인 사주는 3만 원, 인원이 늘어나면 금액이 올라간다.

그는 내게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물었다. 보통 점집에 가면 책을 보고 풀이를 하는데 이 역술인은 입으로만 중얼거렸다. 기자가 "왜 사주책을 보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40년 동안 점을 봤기 때문에 안 봐도 외운다"고 말했다.

"기생 사주네. 기생 사주야! 옛날 같으면 사주단자 넣자마자 쫓겨났어!"

입이 떡 벌어졌다. 기가 세서 풍파가 많다는 둥, 남자를 조심하라는 둥, 일찍 결혼하면 시집을 2~3번 간다는 둥 무서운 말들이 마구 쏟아졌다. 역술인은 "그래도 시대가 바뀌었으니 기생 사주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며 나를 달랬다.

기본적인 사주 총평이 끝나자 신년운세를 봤다. 올해 졸업을 앞둔 나로서는 취업이 제일 걱정이기에 진로에 대한 질문을 먼저 물었다.

"제가 취업을 해야 하는데, 올해는 잘 풀릴까요?"
"시험 쳤다 하면 떨어진다고 보면 돼. 26살까지는 취업, 꿈도 꾸지마!"

나는 잠시 정신이 멍했다. 그러자 역술인은 재빠르게 부적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15만 원에 부적 10장 써줄 테니 집안 곳곳에 붙이라"며 "이만한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30분간 상담이 끝나자 그는 명함을 주면서 "살풀이 할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고 덧붙였다. 기분이 묘했다. 

"국민 수준이 높아지면서 발길 끊겨…"

사주를 보고 나오자 "속았다" "하마터면 상술에 말릴 뻔 했다" 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에 인적은 드물었지만 나처럼 막연한 고민을 안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웃음소리를 따라 들어간 점집에는 홍자영(50.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씨와 박미애(53. 서울 노원구 공릉동)씨가 있었다. 박씨를 따라 이곳을 처음 찾은 홍씨는 "천주교 신자지만 신년이니까 이렇게 점보는 일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에 박씨는 점성촌 '단골손님'이었다. 박씨는 "대부분의 사람은 무슨 일이 생기거나 큰일을 앞뒀을 때 점을 많이 보는데 나는 생각날 때 마다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점성촌의 일반적인 복채 가격은 3~5만 원인데 박씨는 단골집인 B철학관에서 2만 원에 점을 본다.

B철학관의 C역술인은 박씨가 온 것을 알고 마당까지 마중을 나왔다. C역술인은 "아저씨(박씨의 남편)가 올해부터 몸이 괜찮아 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가 찾는 B철학관은 그녀의 가족 사주부터 집안 대소사까지 모두 꿰고 있었다.

이 점성촌 골목에는 약 20곳의 점집이 있었다.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불과 8명의 손님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 점성촌 골목에는 약 20곳의 점집이 있었다.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불과 8명의 손님이 이곳을 다녀갔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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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골목으로 나가보니 한동안 사람이 없었다. 점집은 손님을 맞으려 문을 활짝 열어 뒀지만 입구에는 대개 슬리퍼 한 짝이 전부였다. 반대편 점성촌 골목으로 건너갔다. 웬 아주머니가 아저씨와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경북 영주시 가흥동에서 온 이금옥씨(69)씨는 "경기도에 있는 둘째 아들 집에 갈 때마다 남편이랑 여기(점성촌)에 들린다"며 "설이나 추석에는 꼭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남편은 "남부끄럽다"며 이씨의 손을 끌어 당겼다. 이씨는 "옛날에는 점 보러 다니는 게 창피한 일이라 손가락질을 받았다"고 밝혔다.

설을 앞두고 가족이나 친지의 사주를 들고 점성촌을 찾은 사람도 있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사는 안선경(58)씨는 대학 졸업하고 몇 년째 백수로 지내는 딸 취업 문제로 들렀다. 안씨는 "우리 딸이 작년까지 부정살(사람이나 물건 등을 해치고 파괴하는 악한 기운)이 끼여 있었는데 올해부터는 (부정살이) 풀린다 해서 어떻게 될지 들으러 왔다"고 말했다.

"입춘과 설 사이에 하루 5~6명이 다녀가지만..."

'○○철학관, 사주 봐드립니다.'
'영으로 점을 봅니다'
'◯◯◯ 여성 작명 역학사'

미아리 돈암동 점성촌은 1966년 맹인 역술인 이도병씨가 정착한 이래 많은 역술인들이 찾았다. 미아리 점성촌은 역학을 보는 맹인이 많다는 게 특징이다. 점술이 호황기를 맞이했던 1980년대에는 약 100곳의 점집이 있었다. A역술인은 "지금은 약 40여 곳만 남아 점성촌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6일 미아리 돈암동 점성촌 거리는 생각보다 한적했다.

"보다시피 손님이 없는 편이에요. 갈수록 더 심해질 거예요. 경기가 안 좋아서라기보단 국민 수준이 높아지면서 발길이 끊긴 거죠."

A역술인은 점성촌 쇠락의 원인으로 국민 수준 향상을 꼽았다. 옛날에는 애가 아프거나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점을 보러왔기에 손님이 많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는 거다. 그는 "젊은 사람들 80%가 대학을 나왔다고 하지 않느냐"며 "경제가 문제가 아니라 국민 수준이 높아지면서 점을 믿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A역술인은 "요즘 하루 2~3명이 다녀가는 게 일반적"이라며 "가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나마 장사가 되는 때는 지금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이 즈음이 사람들은 점집을 찾을까. 사주명리학에서는 입춘을 기준으로 새해 운세가 들어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입춘과 설날 사이의 '대목'에는 돈암동 점집마다 하루 약 5~6명의 손님들이 찾아온다. 

미아리 점성촌의 벽화에는 '점'에 대한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다. 서울시에서 전통 거리로 지정하려 했으나 기독교의 반발로 무산됐다.
 미아리 점성촌의 벽화에는 '점'에 대한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다. 서울시에서 전통 거리로 지정하려 했으나 기독교의 반발로 무산됐다.
ⓒ 김다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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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철학관은 6일 하루 총 손님 7명을 받았다. 평소보다 많은 사람이 찾은 거다. C역술인은 "2013년 계사년을 맞이하니 뱀띠 생들이 많이 온다"며 "손님들이 많이 오는 시기지만 옛날에 비해 적은 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가이드들이 외국인들을 데리고 관광지 삼아 찾아오는 경우가 있긴 한데, 머지 않아 점성촌은 사라질 거라 보면 된다"고 씁쓸하게 말했다. 

미아리 점성촌 인근 부동산을 찾았다. 부동산 관계자는 "점집은 매물이 나오지도 않고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점집에서 '신년운세'를 점쳐보는 행위는 이제 옛날 이야기로 남는 걸까?

돈암동의 많은 점집에는 "미래를 보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점집의 미래는 잘 보이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김다솜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설날, #점성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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