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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시, 독서, 커피, 결혼, 숙박. 이 모두를 한꺼번에 해결할 순 없을까? 있다. 꿈이자라는땅(센터장 이재준·태안읍 동문리 453-2·이하 꿈땅)이 태안의 복합문화교육공간을 표방, 태안중학교 후문에 자리를 잡았다.

"5~6개월? 반년도 채 안 됐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랬다. 꿈땅은 시공에서 인테리어, 소품제작까지 필요한 것들을 모두 갖추고도 트렌디한 문화공간을 창출해낸 물리적 시간은 두 계절을 넘지 않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는 태안의 황토가 온벽에 발려 고유의 은은한 노란빛을 내고, 옛 한옥집 기둥은 화장실 입구로 변신, 우릴 반긴다. 새마을운동 당시 씽씽 거리를 누볐을 자전거는 소품이 돼 입구를 장식하고 그 옆 커다란 절구통은 화분으로서 역할에 충실하다.

"처음 이 창고를 사서 문화공간을 짓는다고 했을 때 다들 만류했죠. 학교 인근 우범지인데다 건물이 워낙 오래돼 가치가 없어 보였던 것도 사실이고요."

이 센터장이 창고의 비포-에프터 사진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양 건물과 소품들을 순서대로 가리킨다. 북카페 형태를 띠고 있는데, 나무 책장 사이로 겨울의 따사로운 햇빛이 시야를 자극한다. 천장에는 두 개의 뫼비우스의 띠가 신비스럽고 모던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안쪽 벽은 칠이 벗겨진 옛 창고느낌을 그대로 살려 익숙하지만 결코 고루하지 않게 꾸며졌다. 이른 오후 진한 커피 향기 속 서있는 이 두 남자들처럼 말이다.

왼쪽이 이재준 센터장, 오른쪽이 이민로 총괄실장.
▲ 꿈땅의 두 남자 왼쪽이 이재준 센터장, 오른쪽이 이민로 총괄실장.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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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47·왼쪽)센터장과 이민로(27·오른쪽) 총괄실장.  꿈땅은 스무살 나이차를 극복한 이 두 남자의 낭만프로젝트라 하면 무방할 듯. 2주 전부터 본격적으로 손님을 맞고 있는 꿈땅은 지난 8일 서산태안기타연합회 송년발표회를 가진 것을 기해 개관 초대전으로 유숙자 작가의 <부활>전을 갤러리에 열었다.

또 카이로대학 교수를 초빙한 이집트 전시회를 열어 1시간의 미니 강의도 마친 바 있다. 갤러리 '100인 초대작가전'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일단 두 명의 작가와는 내년 6월까지 작품전시 일정도 확정돼 있다.

더불어 서산태안지역 작가들의 동양화와 서양화, 도예 작품전시전을 수시로 기획해 관객들에게 선보일 준비에도 한창이다. 꿈땅 가운데 올곧이 뻗어 무대로 향해있는 나무색은 다문화가정을 위한 결혼식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학교가 싫은 아이들에게는 영어와 바리스타교육 등을 준비해 미래 꿈을 지니고 살도록 하겠다는 확고한 목표도 섰다.

초대작가로 이곳은 12월 현재 유숙자 작가의 개인전이 이뤄지고 있다. 유 작가는 모래와 흙으로 그림을 창조해 내는 인물로 바위가 모래로 만들어지기까지의 인고의 시간 뒤, 끝인 줄 알았던 모래와 흙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작품 활동으로 한국을 넘어 일본에서도 각광받는 작가다.

이런 유 작가의 작품은 꿈이 있고, 희망이 있는 꿈땅의 설립취지와도 많이 닮아있다고 이 센터장은 소개했다. 이 센터장은 사실 태안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치과의사다. 벌써 16대째 태안토박이로 살았고, 그의 자녀들도 함께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태안읍내에서 치과를 운영하고 있으니까.

그런 이 센터장이 꿈땅을 열게 된 건, 오래 전 꿈을 실현하는 일처럼 아주 까마득하고도, 선뜻 가깝고 쉽고, 또 우연한 기회에 다가왔다. 사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다.

1억여원이 넘는 많은 돈을 투자했으면 했지 딱히 지역에서 꿈땅으로 돈을 벌 작정은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지금 하고 있는 치과와 의료기기사업을 통해 태안을 의료관광의 요충지로 만들 공산은 꿈꾸고 있다고 귀띔했다.

"여기에서 벌어들인 수익금은 이곳 꿈땅에 전부 투자할 생각이에요."

아주 우연한 계기로 태안중 후문에서 토스트집을 운영하고 있는 천경호(여·49)씨와 지역 문화산업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중 천씨의 아들 이민로 실장을 알게 됐고, 그로부터 2년이 넘은 시간 동안 두 남자는 같은 생각, 같은 꿈을 꾸며 가까워졌다.

"처음에 센터장님의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전혀 관심이 없었어요. 어머니가 센터장님과 먼저 뜻이 맞아 저를 소개하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공연문화사업가로 사회 생활에 기반을 잡던 시기였거든요. 탄탄대로가 눈앞인데 센터장님의 얘기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죠. 마치 현실성 없는 꿈같았다고나 할까요?"

실로 본격적으로 이 실장이 이 센터장과 한 배를 타길 원해 내려온 건 올해 여름이다.

"그러니까 저는 처음에 제가 이 사업 설명을 듣고 느낀 '보이지 않는 시작점'의 틀을 깨고 어느 순간 홀린 듯 그렇게 태안행 버스에 몸을 실은 것 같아요."

두 남자의 의기투합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진행은 무척이나 순탄했다고. 멀티형영화관 메가박스의 인테리어 설계자가 이들을 돕기 위해 태안에 직접 내려와 여름 내내 작업을 마쳤다.

"이 건물 완성하면서 작업자가 한 말이 '꼭 딸을 시집보내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다'고 해요."

이 센터장이 공간을 어슬렁거리는 취재진에게 친절한 팁을 선사했다. 40여년간 버려졌던 옛 새마을창고가 이 시간도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니 가히 격세지감을 피부로 체험하는 기분이다.

"궁극적인 꿈땅의 설립취지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센터장이 조심스레 말을 이어간다. 꿈땅에 과연 무얼 담을까? 또 무얼 담아야 가치가 있을까? 그의 첫 번째 고민의 중심엔 '가족'이 있었다. 건물 뒤편에 자그만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그 앞 작은 연못과 고즈넉한 벤치, 태안의 갈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꿈땅에 꼭 들어맞는 건 소통이고, 대화고, 화해다. 그래서 꿈땅의 모토는 가족이다.

"꿈땅이 좀 더 자리를 잡게 되면 우리 학생들이 직접 만든 잡지도 발행할 계획이죠. 거기엔 가족을 담을 건데, 왜냐면 사람들은 항상 나를 주제로, 나의 가족을 주제로 할 때 좀 더 진실 되고, 엄숙해지며 깨닫게 되죠. 바로 우리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 됐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창고도 제법 의미 있지 않나요? 70년대 잘 살아 보세의 새마을운동은 단순히 잘 먹고 잘살자는 의미인 반면, 새마을창고에 터를 잡은 꿈땅은 태안의 문화새마을운동으로 문화를 만들고 지키며 잘 살아 보자는 의미니 얼핏 구색이 맞잖아요"라는 이 실장의 너스레가 어쩐지 밉지 않다.

앞으로 꿈땅이 짊어질 공간엔 많은 지역 청소년과 가족과의 소통을 원하는 가정들이 찾았으면 좋겠다는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의식이 살아있는 한 꿈땅은 계속 진화할 것이고, 변신할 것이며 현대에 맞는 이색문화교육의 장으로 커나갈 것이라 믿는다.

구태의연한 학교교육에 싫증난 아이들이여 꿈땅에 오라 이곳이 너희를 쉬게할 것이다. 꿈땅은 월~토요일 오전 10시 문열어 저녁 9시 닫으며, 매주 일요일에는 카페와 갤러리 대신 예배를 드리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한 가지 더. 꿈땅 관외 예배당은 추후 집이 없는 아이들이 머무는 곳으로 철저히 격리 조치될 예정이다. 꿈땅 북카페와 갤러리에 대한 문의는 전화 675-1112.


태그:#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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