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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들이 모래갯벌에 앉아 쉬고 있다.
▲ 유부도의 도요새들 도요새들이 모래갯벌에 앉아 쉬고 있다.
ⓒ 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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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새들이 한국을 지나가는 봄과 가을이 되면 충남 서천군 유부도에는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찾아온다. 지금은 방조제에 막혀있는 새만금 갯벌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유부도는 그 면적은 상당히 작지만 썰물 때가 되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난다. 갯벌에는 수많은 생명과 갖가지 먹을 것들로 풍족하기 때문에 새들에게나 사람들에게나 갯벌은 잔치상이나 다름없다.

10월 14일, 평소 뵙고 싶었던 '천수만 지킴이'이자 수의사이신 김신환 원장님과 <문화일보> 사진부장이자 생태사진작가인 김연수 기자님 등과 유부도에 새를 보러 가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한 고등학교의 지리선생님, 천체관측을 하시는 분, 사진기자, 그리고 나 고등학생. 모두들 서로 각기 다른 직업을 가졌지만 새를 좋아한다는 공통된 마음을 가지고 유부도로 새를 보러 떠났다.

유부도의 모습이다. 저 바위산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평평한 땅이다
▲ 유부도 유부도의 모습이다. 저 바위산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평평한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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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도에는 정기항로가 없기 때문에 어민들의 배를 타고 가야 한다
▲ 유부도 가는 길 유부도에는 정기항로가 없기 때문에 어민들의 배를 타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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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도에는 정기항로가 없어서 유부도의 한 선장님께 배삯을 드리고 유부도에 간다. 유부도에 여러 번 오신 분들은 선장님과 안면이 있는지 반갑게 인사하셨다. 배를 타고 3분 만에 유부도에 도착한 우리는 우선 꺼진 배를 채우기 위해 선장님 댁에 들어갔다. 미리 다 차려놓으신 밥상 위에는 육지에서는 맛볼 수 없는 온갖 해산물들이 가득한 진수성찬들이 차려져 있었다. 직접 갯벌에서 잡아올리신 새우로 만든 새우젓, 간장게장, 꽃게탕, 그 외 맛있는 생선과 반찬들.

"이 모든 게 한 사람당 7000원이라고요?"

맛에 놀랐고 가격에 놀랐다. 이렇게나 맛있는 것들이 모두 갯벌에서 나오는 거라니 갯벌의 소중함을 모른 체할 수가 없다. 아 정말 배부르게 먹었다. 부른 배를 쓰다듬고 있을 때 TV위에 올려져 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액자 속에는 새 한 마리가 큼지막하게 찍혀 있었다. 넓적부리도요다. 오늘 우리의 목표 1순위는 바로 이 새를 보는 것이었다.

넓적부리도요는 현재 지구상에 200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은 너무나 귀한 새이다. 지금은 갯벌이 방조제에 막힌 바로 옆 새만금에 200마리가 관찰되기도 했었는데(당시에는 개체수가 1000마리였다고 한다), 새만금이 방조제에 막히고 나서 현저히 숫자가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26%가 사라지고 있고 8년 후면 멸종될 거라고 하는 이 새를 과연 오늘 볼 수 있을까? 그런 의구심을 가지고 새를 보러 유부도 갯벌로 나갔다.

갯벌에서 잡아올린 천연음식들로 가득하다
▲ 유부도 밥상 갯벌에서 잡아올린 천연음식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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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이 들어오기 전에 빨리 나가야 한다
▲ 빨리 나와야... 썰물이 들어오기 전에 빨리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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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쭉 걸어가자 저 멀리 수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에어쇼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와! 여기는 도요새가 정말 많다!"

빨리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여기 어디에 새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말고 한 곳을 집중해서 보니 모래갯벌 위에 가만히 앉아 쉬는 도요새들이 보였다. 몸집이 무척이나 작고 가만히만 있어서 쉽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거였다. 왕눈물떼새, 흰물떼새, 좀도요, 민물도요, 세가락도요, 붉은어깨도요, 마도요, 검은가슴물떼새 등 아주 다양한 새들이 갯벌에 있었다.

이런 갯벌에서 도요새들을 보려면 물때 시간을 아주 잘 맞춰서 가야 한다. 썰물 때 가면 도요새들이 넓은 갯벌에 있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쉽지 않지만 오늘처럼 밀물 때 맞춰서 가면 도요새들이 모두 물가로 나와 있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무척이나 쉽다.

들어오는 물따라 도요새들도 점점 육지 쪽으로 왔고 우리도 서둘러 육지 쪽으로 가야 했다. 밀물은 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올라왔다. 바닷물들이 우리 뒷쪽으로 들어와서 나갈 길을 막는 걸 일찍 보지 못했더라면 큰일 날 뻔했다. 빨리 나오라는 말에도 도요새 사진 찍는 데 너무나 열중한 나머지 썰물이 들어오는지 몰랐던 한 분은 바닷물에 신발을 적셔야 했다.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 도요새의 군무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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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도요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 도요들의 군무 민물도요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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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 도요들의 군무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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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도의 갯벌에서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휴식을 취하는 도요새들 유부도의 갯벌에서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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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이 육지 가까이까지 올라오고 도요새들은 좁은 장소에 집중되었다. 우리들과 도요새들과의 거리는 불과 10m 정도였지만 도요새들은 꿈쩍 않고 가만히 앉아 휴식만을 취했다. 러시아, 알래스카 같은 북쪽에서 남쪽인 동남아와 호주로 날아가는 이 나그네새들에게 휴식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다.

새들이 단체로 날아오르는 모습은 확실히 감탄이 나오게 할 정도로 황홀하고 멋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겠다고 일부러 날리면 새들은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게 된다. 우리나라 갯벌은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에 이동을 하는 새들에게 다시 날아갈 힘을 얻을 장소로 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다. 나그네새인 도요새들은 목적지로 날아가기 위해 에너지를 충분히 비축해야만 하기 때문에 중간기착지인 우리나라 갯벌 같은 서식지가 파괴되면 안 되는 것이다.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 도요새들의 군무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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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들이 날아오른다
▲ 도요들의 비행 도요들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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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 도요들의 군무 수십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날아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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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들은 사람인 우리를 신경 쓰는듯 안 쓰는듯 하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몇 마리는 부산스럽게 돌아다녔다. 덩치도 작은 것들이 이렇게 밀집해서 모여 있으면서 생김새마저 비슷비슷하게 생겼으니 이 속에서 우리들의 목표 넓적부리도요를 찾는 것은 정말 '눈 빠지는' 일이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열심히 도요새들을 찍고 있을 때 김신환 원장님께서 외치셨다.

"넓적부리 찾았다아~!"

모두들 후다닥 김신환 원장님의 카메라가 가리키고 있는 방향을 쳐다보면서 넓적부리도요를 찾아보았다.

"어디? 어디? 어디 있다고요?"

찾는 동안 넓적부리도요가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원장님께선 "제 카메라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슈. 가에, 가쪽에 있슈"라고 설명하셨다. 하긴 이 많은 도요새들 속에 섞여 있는 녀석을 딱히 어디 있다고 정확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마음은 타들어가는데 넓적부리도요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으니 냅따 넓적부리도요가 있다고 하는 방향을 찍었다. '나중에 사진 속에서 찾으면 되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래도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어떤 새가 넓적부리도요인지 보고 싶은데 보이질 않으니 답답해 죽을 것 알았다. 이 넓적부리도요는 주변에 있는 도요들이랑 생김새가 딱 한 군데, 그 넓적한 부리만 다르니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안타깝게도 내가 넓적부리도요를 찾아내기도 전에 도요새 무리들이 날아오르는 바람에 찾지 못했다.

그러나 허탈함도 잠시, 김신환 원장님께서 또 다시 "넓적부리 찾았다아~!"라고 외치셨다. '햐, 어쩜 저렇게 잘 찾아내시냐' 하고 감탄하면서 또 원장님 옆에 후다닥 붙어서 넓적부리도요가 어디 있나 찾아봤다. 이번엔 반드시 찾아낸다! 눈에 불을 켜고 도요새 무리를 쳐다보니 어, 어라? 저기 부리가 남들이랑 다른 녀석이 보인다. 넓적부리도요다! 만세~! '푸하하하' 새들이 놀라면 안 되니 속으로만 실컷 웃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저 넓적한 부리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소중한 새가 된 넓적부리도요. 이 새들이 사라지기 전에 보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 새가 사라지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이 나처럼 이 새를 봐도 '아, 사라지기 전에 봐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안 들게끔.

이 많은 도요새들 속에서 넓적부리도요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 넓적부리도요 이 많은 도요새들 속에서 넓적부리도요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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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우측에 있는 것이 넓적부리도요다. 다른 도요들과 생김새가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 도요들과 넓적부리도요 맨 우측에 있는 것이 넓적부리도요다. 다른 도요들과 생김새가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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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적부리도요가 사라지고 있는 제일 큰 원인은 서식지 파괴라고 알고 있다. 넓적부리도요가 멸종되지 않으려면 단지 돈과 개발에 눈에 멀어 새만금 간척사업과 같은 비극이 또 일어나선 안 된다.

넓적부리도요의 멸종을 막기 위해 영국에서는 우리 돈 300억 원을 들여 번식지인 러시아에서 이 새를 데려와 올해 인공증식에 성공했다. 나그네새들의 중간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단지 갯벌을 잘 보존하면 된다. 내가 개인적으로 좀 더 바라는 것은 독일 같은 선진국처럼 자연과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사람들이 보다 더 자연과 친숙하게 가까워지게 하고 더불어 자연도 보존했으면 하는 바다.

넓적부리도요와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썰물 때가 되어 물이 빠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도 도요새들이 멀어짐과 동시에 서둘러 유부도를 떠났다. 물이 다 빠지기 전에 유부도를 나가야만 배가 육지에 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란한 도요새 날갯짓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앞으로 동물, 새, 곤충, 식물, 흙, 물 모든 자연이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빈다.

새만금 간척지 공사 이후로 개체수가 크게 감소하였다.
▲ 넓적부리도요 새만금 간척지 공사 이후로 개체수가 크게 감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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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유부도, #갯벌, #도요새, #환경,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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