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 날아오르는 개리들
▲ . 날아오르는 개리들
ⓒ 김어진

관련사진보기


경기도 파주의 한 습지, 올해도 어김없이 귀한 손님들이 방문했다. 바로 개리다. 여기에 나오는 개리는 인기 가수 강개리가 아니라 거위의 조상이자 희귀겨울철새 천연기념물 325호 개리를 말한다.

겨울철새로 한국에서 겨울을 지내다가 겨울이 끝나면 번식하려고 다시 러시아와 중국 같은 북쪽으로 이동한다. 바로 그때 우리가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 들르듯이 개리들도 북상하는 도중에 파주의 이 습지를 들른다.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다.

원래는 예부터 주 먹이인 새섬매자기를 먹으려고 한강 유역에서 월동하는 겨울 손님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은 환경 변화로 한강 유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개체수가 줄어든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겨울이 거의 다 끝나가는 3월 말이 돼서야 10마리 이내의 이동 중인 개리들을 관찰할 수 있게 됐다. 못 보고 지나가면 섭섭한 손님들이다.

. 기린 놀이
▲ . 기린 놀이
ⓒ 김어진

관련사진보기


. 자리 다툼을 하는 개리
▲ . 자리 다툼을 하는 개리
ⓒ 김어진

관련사진보기


올해는 희한하게도 2월 중순부터 10여 마리가 관찰되더니 3월 28일에는 갑작스레 무려 45마리가, 그 다음 날인 29일에는 여태까지 기록된 적 없는 84마리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무리가 관찰됐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마리 정도가 전부였는데 이 정도 규모의 개체 수가 관찰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최근 4대강 사업이 흑두루미 이동경로에 영향을 끼쳐 5천 마리가 넘는 개체가 서산 천수만에 집중적으로 모여들었는데, 혹시 이 개리들도 같은 이유에서 이곳으로 집중된 건 아닐지 염려됐다. 이들이 갈 수 있는 마땅한 습지 서식지가 남아나질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에도 개리들은 4월 중순까지 계속 관찰됐는데 13일에는 30여 마리, 14일에는 47마리, 15일에는 51마리까지 보였다가, 17일부터 8마리로 줄었고 20일에 21마리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관찰되지 않고 있다. 모두 여름 동안 새끼를 기르기 위해 번식지인 중국과 러시아로 떠난 것이다.

. 뻘 속에서 먹이활동 중인 개리들
▲ . 뻘 속에서 먹이활동 중인 개리들
ⓒ 김어진

관련사진보기


개리 발견 '단독보도', 구체적 서식위치 공개한 건 잘못

. KBS 단독
▲ . KBS 단독
ⓒ KBS 기사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그런데 4월 25일, KBS에서 개리를 포착했다며 단독으로 보도했다. KBS는 <뉴스 9>에서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개리가 포착됐다고 보도하면서, 개리의 서식위치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서식위치와 관련된 새들의 생태정보는, 특히 희귀 조류인 경우에는 '단독'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일회성 기사로 써선 안 된다. 더군다나 개리는 천연기념물 325-1호로 법적으로도 보호받아야 할 희귀 조류인데 새의 위치를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새들에겐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습지 보존의 중요성을 말하고자 한 보도 취지는 좋았지만 좀 더 신중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희귀 동물이나 조류는 예부터 언론사에서 유용한 비뉴스 피처 기사거리로 많이 활용돼왔다. 언론사 입장에선 가벼운 소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들의 보도기사가 끼칠 수 있는 영향들에 대해서는 잠시 잊은 듯했다.

이러한 언론사의 안타까운 실수는 옛날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1971년 4월 1일 <동아일보>는 충북 음성의 마지막 남은 황새 부부가 둥지를 틀었다고 1면 특집 보도로 실은 적이 있다. 황새에 대해 널리 알리고자 한 기획 의도는 좋았지만 기사는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한 밀렵꾼에게 마지막 남은 황새 수컷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고 만 것이다. 황새의 주 멸종 원인은 서식지 파괴와 무분별한 농약 사용이었지만 우리나라 마지막 황새는 그렇게 사라졌다. 과거의 실수에서 우리는 배워 나가야 한다.

필자가 처음 이곳에서 개리를 발견했을 때도 기사로 쓸 것인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새들에 관한, 특히 위치가 유포되는 보도인 경우에는 동전에 양면이 있듯이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관심을 끌어모으면 새들이 찾아오는 자연환경을 보호하자는 목소리도 커질 수 있지만, 기사를 읽고 찾아올 사람들이 새들에겐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긍정적 영향은 미약하고 부정적인 영향은 언제나 부지런하게 다가온다. 필자로서도 딜레마였다.

시대가 바뀐 만큼 예전같이 밀렵꾼들이 도심습지를 찾아올 정도로 당당하지는 않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사진가들이다. 밀렵꾼만큼 무섭다. 귀한 새 소식이 들리면 팔도 천지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밀렵꾼 못지 않은 사진가들을 만나는 경우가 적지 않는데 이들은 언제나 막무가내였다. 비행 장면을 찍기 위해 일부러 새들을 날리기도 하고, 원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연출도 마다하지 않았다. 외국처럼 자연감시관리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같은 탐조인인 필자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은 사실상 없다. 뭐라고 한마디를 꺼내면 곧 바로 언쟁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 습지의 새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서 촬영하려고 위장텐트를 펼친 사진가
▲ . 습지의 새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서 촬영하려고 위장텐트를 펼친 사진가
ⓒ 김어진

관련사진보기


. 도로와 습지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서 사람들로부터 휴식을 간섭받기 좋은 환경이다.
▲ . 도로와 습지 사이에 아무것도 없어서 사람들로부터 휴식을 간섭받기 좋은 환경이다.
ⓒ 김어진

관련사진보기


경솔한 언론보도 때문에 멸종한 '마지막 황새' 사건 잊었나

우리나라엔 탐조를 하는 데 강제성을 부여할 수 있는 규칙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지켜야할 탐조 예절 정도는 존재한다. 

첫째, 관찰, 사진촬영, 녹음, 비디오 촬영 시, 새들이 위협을 받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자제해야 한다. 둘째, 희귀종이 출현했을 때는 이를 알리기에 앞서 새를 괴롭히는 이웃이나 지역 사람들의 잠재적인 방해요소를 먼저 고려해, 방해요소가 통제되거나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선조치 해야 한다. 희귀종의 번식지는 권위 있는 종보존 전문가에게만 알려져야 한다.

그러나 모든 사진가들이 이 같은 예절을 따르진 않는다. 피사체인 새보다 자기 사진의 완성도를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새들의 위치 정보를 포함한 기사가 보도되면 새들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몰지각한 사진사들에 대한 사례는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된 바가 있다. 뿔논병아리 둥지에 지나치게 접근하여 촬영한 사람들, 수리부엉이 둥지 훼손 사건, 특히 2012년의 새 학대 사진전은 SNS를 통해 회자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희귀 조류의 존재가 영원히 비밀 속에 묻혀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세상엔 영원히 지켜질 비밀이란 존재하지도 않고, 희귀 조류철새 도래지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으면 개발의 삽질 아래 서식지가 묻히거나 아예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흘러갈 위협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생태적 가치가 높고 보호가 필요한 종들의 경우 구체적인 위치 언급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며, 지자체에서 지속 가능한 서식지 보존대책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데까지가 보도하는 자의 책임이라고 한다고 생각한다.

언론사에서 이러한 새들의 사정까지는 알 리 만무했겠지만, 같은 잘못을 반복하질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새들을 촬영하는 사람들에게, 새들을 보더라도 부디 새들과 사람 사이의 선을 넘지 않기를 부탁하고 싶다. 필자도 사진만 9년간 찍어왔기 때문에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손맛'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만족과 생명들의 생활 안위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 천천히 돌이켜 생각해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