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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동 쪽방촌의 한 골목
 동자동 쪽방촌의 한 골목
ⓒ 고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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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연세빌딩 주변 회색 건물들 사이 언덕을 오르면 좁은 골목길이 나온다. '여관' 간판이 빼곡하게 들어선 이곳이 바로 '동자동 쪽방촌'이다.

이옥경(63) 할머니는 이 골목 어디선가 점심을 먹고 자신의 쪽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느냐"며 기자가 다가갔다. 이 할머니는 "오래 하는 거면 안 한다"며 다소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짧은 이야기 끝에 경계를 푼 할머니는 기자를 자신의 쪽방으로 안내했다. 

쪽방촌 내부.
 쪽방촌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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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 복도. 대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는다.
 쪽방 복도. 대낮인데도 햇빛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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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 독거노인의 유일한 안주 '쌈장'

할머니를 따라 올라간 쪽방촌. 지은 지 60년이 되었다는 건물 내부에는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사방이 캄캄해 할머니를 따라 가기도 어려웠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방문 틈 사이에서 TV 불빛만이 새어 나왔다.

이 할머니는 안부를 묻기 위해 옆방 할아버지 방문부터 두드렸다. 할아버지는 방 한 켠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방 바닥의 '쌈장'과 젓가락이 눈에 들어왔다. "반찬이냐"고 묻자 이 할머니는 "술안주"라고 했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인 할아버지에 대해 "후원으로 들어오는 쌀을 받는 족족 팔아 술을 사 마시는 폭주가"라고 설명했다. 쌈장은 쓴 소주의 유일한 안주였다. "알콜 중독으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할머니는 귀띔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리며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배고파"라고 말하면 없는 살림에 반찬을 나눠주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기자의 인사에 눈만 깜박일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에 따르면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방에 죽은 듯이 누워만 있다. 1평도 안 되는 할아버지의 방에서는 TV 소리만이 적막을 깨고 있었다.

옆방 할아버지의 쪽방 내부 모습. 방안에 있는 '쌈장'이 할아버지의 유일한 안주이다. 종이컵에는 소주가 들어있었다.
 옆방 할아버지의 쪽방 내부 모습. 방안에 있는 '쌈장'이 할아버지의 유일한 안주이다. 종이컵에는 소주가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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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가라며 연신 혀를 내두르면서도 할머니는 옆방 할아버지를 부러워했다. 할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이기 때문이다. '부양의무자제도'에 따라 할머니는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가 아니다. 동사무소를 10번이나 뛰어다녀도 안 된다는 이야기 뿐이었다. 함께 살지 않는 아들과 사위의 소득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현재 월 22만 원짜리 쪽방에서 남편과 둘이 살고 있다. 생활비는 할아버지가 하루하루 '노가다' 해서 벌어오는 돈으로 겨우 충당한다.

"돈 벌려고 안 해본 일이 없어. 청소에 식당일에... 그래도 좋을 때는 내 식당도 운영했었어. 이제는 몸이 불편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그러니까 우리 아저씨는 돈만 떨어지면 나를 들들 볶아. '노숙자 쉼터'에 보내버린다고 하면서 말이야. 나는 돈하고 인연이 없어. 모이는 대로 없어져 버려. 지지리 운도 없어."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할머니가 의지할 사람은 결국 할아버지 뿐이다.

이번에는 이 할머니와 함께 마을 골목에 있는 '사랑방 식도락'으로 향했다. 이곳은 쪽방촌 공동 취사 공간이다. 쪽방촌의 구조상 부엌이 없어 대안으로 만들어졌다. 식사시간 외에도 마을 주민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역에서 10년간 노숙을 하다 지금은 교회에서 생활하는 김지운(41)씨가 독특한 차림새로 기자를 반겼다. 얼마 전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이기연(49)씨는 정신지체장애 3급이다. 좁은 공간을 잘 견디지 못해 사랑방에서도 오래 머무르지 못했다. "낮에는 거리를 배회하다가 밤에 쪽방에 들어가 잠만 잔다"고 했다. 그는 "거리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막힌 공간에 적응 못하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이기연 씨가 살고 있는 쪽방 내부 모습. 건물에 취사시설이 없어 휴대용 버너를 이용해 밥을 해먹는다. 이러한 상황 탓에 쪽방촌은 늘 화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기연 씨가 살고 있는 쪽방 내부 모습. 건물에 취사시설이 없어 휴대용 버너를 이용해 밥을 해먹는다. 이러한 상황 탓에 쪽방촌은 늘 화재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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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사랑방 식도락'이 동자동 사람들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황순애 사랑방 운영위원장은 자신을 쪽방촌 주민의 "누나이자 언니"라고 했다. 실제로 길에서는 항상 견제의 눈초리를 보내는 주민들이 그녀에게만은 스스럼없이 말을 건넨다.

그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을 더 이상 떨어뜨리지 말아 달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는 "없는 사람이 최소한 숨을 쉬고 살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 너무 갖춰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이어 그는 이옥경 할머니의 사례를 예로 들며 "쪽방촌 주민들을 사각지대로 몰아넣는 의무부양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 외에도 쪽방촌 독거노인들 중에는 자식의 소득 때문에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주민이 많다.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싶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화제는 자연스레 대선 후보 이야기로 넘어갔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느냐"는 황순애 운영위원장의 질문에 이옥경 할머니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높은 데 가면 다 똑같아. 대통령 월급이 1000만 원인가 그거보다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돌아오는 게 아무 것도 없어. 투표도 안 할 거야."

이 할머니를 비롯한 쪽방촌의 여러 주민은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좋아질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기자에게 "언제 다시 올 거냐"고 물었다. "연말에 꼭 오겠다"고 말하니 할머니는 "그때까지 살아 있을 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할머니는 종종 "달리는 차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괜한 사람 인생 망칠까봐" 실행은 하지 못하고, 대신 밤마다 기도를 한단다. 

"자는 동안 가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해. 나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일도 없어."

황순애 운영위원장은 "쪽방촌 사람들은 죽음에 무감각하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도 38살의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몸이 약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고통을 잊으려 술을 마시다 그렇게 됐다고 한다.

이 할머니와 같은 쪽방촌 주민들에게 차가워지는 날씨보다 혹독한 것은 희망의 부재였다. 날은 계속 차가워지지만 딱히 준비할 건 없었다. 더 나아질 게 없기에, 삶의 목표도 제대로 갖지 못한다. 동자동 쪽방촌에는 약 1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고재연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3기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합니다.



태그:#동자동, #쪽방촌, #쪽방, #부양의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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