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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위 사진 2장은 98년도에 집앞 개울이 넘쳐 물난리 난후 공사하는 모습이고 아래 사진 2장은 아이들 어릴적 찍어놓은 슬라이드 필름이 훼손된 모습을 디카로 다시 찍은 것.
▲ 위 사진 2장은 98년도 수해났을때, 아래 2장은 훼손된 슬라이드 필름 위 사진 2장은 98년도에 집앞 개울이 넘쳐 물난리 난후 공사하는 모습이고 아래 사진 2장은 아이들 어릴적 찍어놓은 슬라이드 필름이 훼손된 모습을 디카로 다시 찍은 것.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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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사를 하느라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슬라이드 필름 통을 열어보았다. 아이들 어릴 때 찍어뒀던 슬라이드 필름에 곰팡이가 피었다. 알아볼 수가 없다. '이런! 에고에고.' 이게 다 셋방살이 덕분이야!

이 집에 이사온 지도 벌써 만 3년이 넘어, 4년째로 접어들었다. 내년 봄이면 주인이 또 전셋돈을 올려달라거나 아니면 나가라고 할 것이다. 이미 재계약할 때 안주인이 말했다.

"다음번에 시세대로 올려주든가 아님 이사 갈 준비하셔야 해요."

없는 집 제사 돌아오듯, 2년도 길지가 않다.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는 물론이고, 돈을 마련하든가 더 싼 집을 찾아서 짐을 또 싸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것은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면 이사 갈 때까지 풀지 않은 물건들도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서랍 속에 있던 필름 통을 발견한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진을 찍기 좋아했던 나는 좋은 카메라는 아니었지만 그나마 자동카메라로 무던히도 셔터를 눌러댔었다.

혼자 여행을 가도 카메라는 들고 갔었다. 대학 시절엔 '미놀타' 자동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갔다가 거제도 바닷물에 빠뜨린 적도 있었다. 서비스를 받긴 했지만, 쓸 수가 없었고 직장 초임 시절에는 저렴한 '캐논' 자동카메라를 사서 결혼 후 아이들이 성장할 때까지 열심히 찍어주었다. 밥 먹는 것도, 우는 것도 예쁘다고, 기록해 놔야 한다고 열심히 찍었다. 

손바닥만한 종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환등기로 보는 것이 훨씬 실감이 날 것 같아서 환등기도 장만했다.

환등기를 구입한 이후로는 현상하는 사진이 아닌 슬라이드용 필름을 사서 찍곤했다. 아이들 노는 모습도, 할머니 품에서 곱게 잠자는 모습도 슬라이드 필름에 담았다. 찍어서는 거실 벽을 스크린 삼아서 아이들 키만 하게 비춰주면 두 아이가 좋아했었다. 손바닥만한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었다. 사진 속에서 두 아이는 환하게 웃는 천사였다. 그렇게 무수히 찍어놓고는 작은 집과 잦은 이사로, 정리도 못 하고 박스에 담아서 이집저집으로 옮겨 놓기만 하고는 볼 새가 없었다.

아이들이 다 커 버린 요즘, 문득 슬라이드 사진이 생각났다. 생각난 김에 서랍에 있는 필름 통을 열어서 꺼내 보았다. '아뿔사!' 곰팡이가 잔뜩 끼어 있었다. 좀 더 확인도 해볼 겸 환등기를 꺼내서 보기로 했다. 십수 년을 처박아두었다 꺼냈더니, 필름을 '트레이(천공된 카드를 보존하는 데 이용되는 평평한 서류 상자)'에 끼우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딸아이하고 벽에다 비춰서 보았다. 마치 작은 영화를 상영하는 기분이었다. 그 속에 잊어버렸던 아이의 어린 시절 모습이 있었다. 아이가 물놀이하던 모습도 있고, 수해복구를 하는 남편과 동네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상당수 필름은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예 사람이고, 풍경이고, 사라져 버리고 곰팡이만이 시커멓게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있었다. 가슴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아이들의 20년이 날아갔다. 도대체 이게 뭐람?

이사를 다니는 통에 보관을 잘못한 탓도 있었다. 때로는 남의 집 창고같은 곳에, 때론 남편의 습한 지하 사무실에 아무렇게나 넣어두었던 것이 화근이었나 보다.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십수 년 전에 물난리가 났었다. 98년도였다. 남편 사업이 실패해 월세로 이사했던 적이 있었다. 방은 컴컴해서 낮에도 불을 켜야 했고, 밤에는 천정이 쥐들의 놀이터여서 베개를 천정으로 던져 쥐들을 쫓은 뒤에야 잠을 잘 수 있던 집이었다. 그 집은 날이 좀 궂으면 샘이 솟듯 습기가, 아니 물기가 줄줄 흐르던 집이었다.

4월에 이사 갔는데, 8월 초에 수해가 났다. 재수가 없으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속담은 우리에게 해당하는 모양이었다. 하필이면 이사하자마자 수해가 나다니? 집 앞에 있는 개울이 넘쳐서 마당에 항아리가 둥둥 떠다니고 무릎까지 물이 찼다.

수리하느라 한여름을 다 지내고 그 후로도 사는 데 바빠서 사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던 시절이었다. 아마도 그해 여름 장만철 집안이 온통 사우나처럼 습기로 잔뜩 찼던 그  집에서 이사할 때 짐 정리하다 보니 종이로 빼놓은 사진들도 달라붙어서 망가져 있었다.

분명 아이들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곰팡이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곰팡이로 얼룩진 슬라이드 필름 분명 아이들 모습이 있어야 하는데 곰팡이만 남겨놓고 사라졌다.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송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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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시집갈 때 사진들 정리해서 미래의 사윗감한테 우리딸 이렇게 소중하게 키웠으니 잘 해주게"라고 한마디 해주려 했는데...

딸을 얼마나 애지중지 소중하게 키웠는지 100마디 말보다 아이의 그때그때 모습이 담긴 소중한 사진들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복원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곰팡이가 심해 어떤 필름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다. 곰팡이만이 거뭇거뭇하게 보였다.

이게 다 돈 없어 셋방살이했던 탓이다. 짐 하나 제대로 놓을 공간없어 철새처럼 옮겨 다니다 소중한 추억까지 날려 버렸다. 요즘 아이들 말로 '멘붕'이었다. 어디 가서 사진을 되돌린 담?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갈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그 시절 옷을 입혀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안타까움이었다.

아직도 내집 마련은 꿈도 못 꾸고 있는데...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르고 집값은 언감생심 따라잡을 수도 없고, 아이들 크는만큼 지출은 늘어나고 내집 마련은 언제나? 집을 안 사고도 전세 걱정 안 하고 살 수는 없는 걸까? 사라진 사진 생각에 '멘붕'된 난 주저앉아 감상에 빠질 겨를도 없다. 내년에 전셋돈 올려 줄 일이 지금부터 걱정이다.

도대체 왜 전셋값은 매번 올려줘야 할까? 집이 무엇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재료비가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세입자한테 수천만 원씩 올려달라고 하는 것일까? <개그콘서트> 코너의 '여희극배우들'의 절규가 떠오른다.

"2년마다 따박따박 올리는 전셋값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겁니까?"
"납득을 시켜주세요. 납득을!"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에 응모합니다.



태그:#이사, #환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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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과 감동은 늙지 않는다"라는 말을 신조로 삼으며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움이 주는 설레임을 추구하고 무디어지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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