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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방에 사는 '우울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한 장면.
 반지하 방에 사는 '우울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내 깡패 같은 애인>의 한 장면.
ⓒ JK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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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은 가급적 학교에서 멀리 떨어졌으면 했다. 아니 사실은 학교 인근의 자취방 전세보증금이 너무 비싸 내가 가진 돈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더 싼 곳을 찾아 기꺼이 다리품을 팔았다. 그러다 내 눈에 들어온 동네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서울 변두리인 수유리 지역이었다.

정보지 벼룩시장에 따르면 지하철 수유역에서 도보로 10분 남짓밖에 안 걸린다니 교통 사정은 괜찮겠다 싶었다. 4·19묘역도 가깝고 좀 더 나가면 조용한 화계사도 있으니 더더욱 맘이 끌렸다. 무엇보다 한 번 꼭 가봐야겠다고 결심한 건 가격이 맞춤했기 때문이다.

공허하게 울린 "첨벙" 하는 소리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다. 비싸고 싼 배경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일 터. 물어 물어 내가 찾은 곳은 수유역 인근 다가구주택 반지하방이었다. 당시는 갓 제대한 이후였기에 나의 심신은 팔팔했다. 두려울 건 없었다. 더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고 해서 나는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후 계약금을 지불했다.

이제 나만의 낭만적 자취생활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하숙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자취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알뜰히 생활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름이 되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나의 생각은 단순했으며 결과적으로 뼈아픈 실수를 했다는 것을.

여느날처럼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수도권의 집중 호우를 예고하던 어젯밤 기상 캐스터의 우려 섞인 목소리을 귓등으로 들었으나 왠지 마음이 초조해져서 나는 집으로 가는 발길을 재촉했다. 빗줄기가 굵고 도로가 젖어서였는지 발걸음도 무거웠다.

하지만 자취방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 나는 어떤 일이 벌어져 있을지 감히 상상도 못했다. 반지하 현관문의 자물쇠를 열고 어무컴컴한 공간에 한 발 들여놓자 "첨벙"하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퍼졌다. 황당한 상황에 나는 당황했다. 나는 장님처럼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어두침침한 공간이 일순간 환해졌다. 수유리 재래시장에서 구입한 '짝퉁' 아이다스 슬리퍼가 종이배처럼 둥둥 방 안을 부유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 인생 최초의 침수 기억이다.

충남 태안 소원면의 한 가정집이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됐다. 사진은 침수된 주택의 가구를 정리하는 모습. (자료사진)
 충남 태안 소원면의 한 가정집이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됐다. 사진은 침수된 주택의 가구를 정리하는 모습. (자료사진)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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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수된 반지하방 문제가 일단락된 다음날부터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새 집을 보러 다녔다. 전세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그 사이 전세값이 올랐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전세 보증금으로는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지상에서 살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은 그렇게 무참히 깨졌다.

당시 난 가진 돈이 너무 없었다.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몰라도, 부자 동네 쪽으로 가보고 싶었다. 돈암동, 평창동, 북아현동의 고급주택가를 구경하고 나서 연희동에 이르렀다. 연희동 주민들에게는 유감스런 말이지만, 연희동 하면 당시 나는 전두환, 노태우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최루탄 연기 속에서 전두환, 노태우 체포하러 가자던 뜨거운 외침소리가 가슴 한 구석에서 메아리쳤다. 물론 그날 그들을 체포하러 간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연희동 고급 주택가 초입에 있는 전셋집을 구했다. 낡은 단독주택에 딸린, 역시 '반지하'였다.

"혹시 여름에 비오면 습기 차나요? 반지하에 물이 들어온 적은 없었나요?
"그런 일은 없었어요. 아.직.까.지.는."

반지하에 살고 있는 신혼부부의 망설이는 말꼬리를 읽었어야 했다. 그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왜 나를 그토록 환대하는지 눈치 챘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수유리를 벗어나고 싶단 간절한 생각밖에 없었다. 다가구주택가의 비좁은 골목길을 벗어나고 싶었다. 축축한 침수의 기억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폭우만 오면 가슴이 덜컥

연희동 반지하 전셋집에 깃들어 살던 1997년 늦가을, 나는 대학 4학년이라 취업 준비에 바빴고 청춘이 가는 것이 아쉬워 학사주점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반지하방에 귀뚜라미가 출몰했다. 귀뚜라미를 징그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릴적 고향집 조그만 방에서 익히 보던 미물인지라 나는 오히려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던 그해 겨울, 우울하고 비참하고 잔혹한 그해 겨울을 나는 잊지 못한다. IMF가 터졌기 때문이다. 기적처럼 취업은 되었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항상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조심스러웠고 세상은 차갑고 매서운 바람으로 가득했다.

역대 최강이라던 한국 국가대표팀이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프랑스 월드컵을 마감한 1998년 여름. 주말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피곤한 몸을 실었다. 차창에 빗방울이 토닥토닥 부딪혔다. 그런데 갑자기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더니 이윽고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건 결코 과장법이 아니다. 정말 양동이로 쏟아붓는 것 같았다.

2010년 추석 연휴에 쏟아진 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서울 화곡동 지역의 수재민들이 9월 24일 물에 젖은 장판과 가재도구 등을 꺼내 옮기고 있다. (자료사진)
 2010년 추석 연휴에 쏟아진 폭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서울 화곡동 지역의 수재민들이 9월 24일 물에 젖은 장판과 가재도구 등을 꺼내 옮기고 있다. (자료사진)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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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빗줄기에 도로까지 물이 차올라 버스도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스며들더니 어느새 큰 걱정이 되어 해일처럼 몰려왔다. 그렇다. 침수의 기억이다. 침수를 당해 본 사람에게 '시원한 빗줄기'라는 말은 당치도 않은 말이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버스에 갇힌 채 한숨만 푹푹 쉬고 있었다. 평소보다 1시간이 더 걸리고서야 드디어 집에 이르렀다.

"어, 어떻해요? 정말 맘이 아프시죠?"

집주인의 딸은 안타까운 듯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시 내 심정을 요즘 유행어로 표현한다면 완벽한 '멘붕'이었다. 집주인 아줌마와 딸, 그리고 나는 주말 오후 내내 반지하방의 물을 퍼냈다. 물은 퍼도 퍼도 끝이 없었다. 학창 시절 6개월 동안 아르바이트해 청계천 중고 상가를 뒤지고 뒤져 어렵게 산 중고 오디오의 스피커도 절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방바닥에 쌓아 놓은 낡은 책들도 차가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마음이 답답하고 울적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물만 퍼냈다.  

그해 여름의 장맛비를 신문과 방송에서는 집중호우라 하지 않고 '게릴라성 폭우'라 명명했다. 기습적으로 반지하방에 침투하여 내 생활을 송두리째 교란시키는 전과를 올리고 발빠르게 사라진 그 이름 게릴라성 폭우.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 보니 중랑천 근처 어디에 산다던 김 대리님은 폭우 때문에 아예 출근 자체를 못했다. 걱정도 됐지만 내심 부럽기도 했다. 그는 지상에 살았으니까.

갑자기 내 가슴에 강렬한 욕구 하나가 솟구쳤다. 축축하고 누추한 일상의 끈적거림에서 벗어나 포근하고 화사한 공기를 들이마시고픈 욕망이, LP판에 새겨진 낡은 추억의 생채기에서 벗어나고픈 열망이 꿈틀거렸다. 현기증 나는 회사 꼭대기에 올라가 나는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외치고 싶었다.

"살자구나. 살자구나. 다시 한 번 지상에서 살자구나."

길음뉴타운 3단지 아파트 모습. (자료사진)
 길음뉴타운 3단지 아파트 모습.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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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응모글입니다.



태그:#세입자, #전세, #반지하, #침수, #폭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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