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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대선의 핵심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다. 특히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도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 민주화뿐만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없을까.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 경제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 협동조합 모델의 상징인 이탈리아 애밀리아로마냐의 볼로냐에 이어, 캐나다 퀘벡의 모습을 짚어본다. 퀘벡 모델은 1960년대 이후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를 이끌어 오고 있다. 경제는 견고한 성장과 함께 일자리도 늘면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학계에선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 부른다. 글로벌 경제위기도 비껴간 이들의 혁명을 찬찬히 따라가본다. [편집자말]
엠이시(MEC)는 캐나다 최대 등산장비협동조합기업이다. 1971년에 6명의 산악인이 5달러의 조합비를 출자해 세웠다. 40년 만에 캐나다 전체인구의 10%를 넘는 370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거대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엠이시(MEC)는 캐나다 최대 등산장비협동조합기업이다. 1971년에 6명의 산악인이 5달러의 조합비를 출자해 세웠다. 40년 만에 캐나다 전체인구의 10%를 넘는 370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거대 소비자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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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오후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북부 외곽. 화창한 날씨다. 멀리서 산(山)모양이 그려진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엠이시(MOUNTAIN EQUIPMENT CO-OP) 매장이다. 우리말로 따지면 등산장비협동조합이다. 다소 생소하다. 일종의 소비자협동조합이다. 대신 파는 물건이 다르다. 말 그대로 등산레저용품만을 전문적으로 판다. 그렇다고 조그만 구멍가게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곳 몬트리올 지점은 우리나라의 웬만한 대형마트 이상이다.

이런 지점이 캐나다 전국에 걸쳐 15개나 된다. 밴쿠버에 본사가 있고, 작년에 올린 매출만 2억7000만 캐나다달러다. 우리 돈으로 바꾸면 약 3100억 원에 달한다. 조합원 수만 370만명이다. 캐나다 전체 인구 10명중 1명은 엠이시 조합원인 셈이다. 단순히 매장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다. '엠이시(MEC)' 자체 브랜드로 등산 의류, 장비 등 각종 용품도 직접 만든다.

매장에 들어섰다. 거대한 2층 건물에 온갖 아웃도어 제품들이 널려있다. 1층에는 자전거를 비롯해 관련 용품과 의류가 있다. 바로 옆에 자전거 수리센터도 있다. 그 옆으로 다양한 등산용 가방과 소품들이 촘촘히 쌓여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아예 실내용 암벽등반코스도 만들어져 있다.

엠이시 매장 곳곳에는 각종 레저활동을 위한 장소도 마련돼 있다. 사진은 매장 입구.
 엠이시 매장 곳곳에는 각종 레저활동을 위한 장소도 마련돼 있다. 사진은 매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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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C의 실험, "최소한의 이익만, 질좋은 제품을 가장 싼 값에 제공"

2층으로 올라섰다. 계단 위로 호수 등에서 쓸 만한 카누가 걸려있다. 물론 1인승부터 2인승이상까지 다양하다. 벽 한켠에는 수백여 켤레의 신발들이 놓여있다. 가벼운 달리기용부터 산악용까지...2층 한켠에는 아웃도어 관련 책들을 볼 수 있는 서점도 있다. 레저활동만 따지면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이곳을 이용하려면 조합원이 돼야 한다. 매장 입구에서 가입용지와 함께 5달러를 내면된다. 이곳 매니저인 프랑수아 사비에 델레보테씨는 "조합원들에게 질좋은 제품을 가장 싸게 공급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캐나다에서 등산관련 용품에선 엠이시가 가장 싸다고 한다. 일반 주식회사처럼 이윤만 남기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엠이시 스스로 "최소한의 이익만을 남긴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엠이시의 성공요인은 질좋은 제품을 값싸게 제공하는 것이다. 국내서도 인기가 있는 고어텍스 기능이 들어간 등산용 재킷은 245달러(약28만원)부터 가장 비싼 것이 350달러(약 40만원)였다.
 엠이시의 성공요인은 질좋은 제품을 값싸게 제공하는 것이다. 국내서도 인기가 있는 고어텍스 기능이 들어간 등산용 재킷은 245달러(약28만원)부터 가장 비싼 것이 350달러(약 40만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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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기자가 아웃도어 제품 값을 살펴봤다. 방풍, 방습 등의 고기능을 갖춘 고어텍스 등산용 재킷의 경우 가장 비싼 것이 350달러(40만 원선)였다. 이보다 저렴한 것은 245달러(28만 원선)짜리였다. 국내선 브랜드마다 약간 차이가 있지만, 대개 30만 원에서 70만 원선에서 팔리는 제품들이다.

유명 브랜드의 달리기 전용 신발도 100달러를 넘지 않았다. 기자도 간단한 자전거 용품을 구입했다. 야간 운행 때 쓰이는 전구세트였다. 값은 20달러(22,000원정도). 국내에선 손잡이용 전구 하나만 2만 원이 넘는다. 전체적으로 국내 판매 제품과 단순 직접 비교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로 20~30%정도 싸다는 느낌을 받았다.

엠이시 매장 한켠에 마련돼 있는 조그마한 서점. 등산을 비롯해 각종 아웃도어관련 책들을 살 수 있다.
 엠이시 매장 한켠에 마련돼 있는 조그마한 서점. 등산을 비롯해 각종 아웃도어관련 책들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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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산악인의 '탈세등반', "차라리 우리가 협동조합으로 만들어 팔자"

엠이시 성공의 뿌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만 해도 등산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마땅한 등산장비전문점도 없었다. 간단한 장비 하나 사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야 했다. 돌아오는 길에 미국쪽 등산을 하면서 장비에 일부러 흠집을 내기도 했다. 국경을 넘을 때 관세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이런 사실이 입소문을 타서 미국 경찰에 알려졌고, 결국 '탈세등반'도 막을 내렸다.

밴쿠버의 유비시(UBC) 대학 산악부의 짐 바이어스는 동료들에게 "협동조합으로 우리가 등산장비를 팔아보자"고 제안했다. 이어 1971년 산악부 출신 6명은 협동조합기업을 세웠다. 당시 1인당 출자금도 5달러였다.

물론 처음부터 사업이 잘된 것은 아니었다. 초기 3년동안은 전적으로 자원봉사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자금도 처음엔 부족했다. 정찰 가격보다 싼값에 팔다보니, 일부 업체는 아예 물건 공급을 끊기도 했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라는 다른 기업 방식에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져갔다. 조합원 수가 늘면서, 자본도 확충됐다.

1977년에 캐나다 산악협동조합을 인수했고, 80년 들어서 조합원 수가 5만 명을 넘어섰다. 이후 엠이시에 대한 신뢰와 조합원의 충성도가 커지면서 사업은 더 커져갔다. 결국 지난 2009년에 300만 명이 넘는 조합원이 모였다. 텔레보테씨는 "작년말까지 370만 명의 조합원이 MEC의 주인"이라며 "이익의 상당부분은 재투자되며, 조합원들에게도 배당이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바겐세일은 조합원에 대한 차별"...참여와 투명성,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가 강점

엠이시는 캐나다에서 등산장비를 취급하는 최대소매기업으로 성장했다. 이곳 의류나 장비 등은 내구성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 흔한 바겐세일도 없다. 제품 생산과정에선 조합원의 목소리를 전적으로 반영한다.

텔레보테씨는 "바겐세일은 그때 제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조합원에 대한 (가격)차별"이라고 했다. 이어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기에 앞서 조합원들에게 의견을 직접 묻는다"면서 "자발적으로 자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의견을 보내오면 이를 제품 개발에 적극 반영한다"고 덧붙였다.

1973년 엠이시가 조합원들에게 보낸 첫번째 뉴스레터.
 1973년 엠이시가 조합원들에게 보낸 첫번째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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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이시는 또 지역사회발전이나 환경보호에도 앞장선다. 1년 매출의 1%를 사용한다. 자신들의 헌장에서 "사업을 유지할 정도의 최소한 이익을 남길 뿐,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엠이시 역시 다른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1인=1표'의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텔레보테씨는 "엠이시에선 어떤 조합원도 다른 조합원과 같은 영향력을 갖고 있다"면서 "매년 열리는 조합원 총회에 300명이 넘는 일반 조합원들도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물론 조합원을 대표하는 10명 정도의 이사회 임원이 있다"면서 "최근에는 인터넷 등을 접목시켜 지역적으로 총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조합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사무실 한켠에는 A4크기의 낡은 종이 한장이 액자에 담겨져 있었다. 1973년 엠이시가 조합원들에게 보냈던 첫번째 뉴스레터였다. 거기엔 당시까지의 매출과 이익 등이 상세하게 써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담겨 있다. 뉴스레터는 조합원들과의 소통 창구였던 셈이다. 4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조합원 고객과의 상호 신뢰와 믿음이 엠이시의 가장 큰 무기다.

덧붙이는 글 | 취재지원: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태그:#퀘벡, #엠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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