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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대선의 핵심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다. 특히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 침체도 현실화되고 있다. 경제 민주화뿐만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은 없을까. 협동조합이 새로운 대안 경제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10년 협동조합 모델의 상징인 이탈리아 애밀리아로마냐의 볼로냐에 이어, 캐나다 퀘벡의 모습을 짚어본다. 퀘벡 모델은 1960년대 이후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경제를 이끌어 오고 있다. 경제는 견고한 성장과 함께 일자리도 늘면서,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학계에선 이를 '조용한 혁명'이라 부른다. 글로벌 경제위기도 비껴간 이들의 혁명을 찬찬히 따라가본다.<편집자 말>

데자르댕 금융그룹은 북미 최대의 신용협동조합이다. 자산규모만 218조 원. 퀘벡주민의 70%에 해당하는 560만명이 조합원이다. 사진은 퀘벡주 몬트리올시에 있는 데자르댕 금융그룹 본사.1979년에 완공된 대형복합빌딩이다.
 데자르댕 금융그룹은 북미 최대의 신용협동조합이다. 자산규모만 218조 원. 퀘벡주민의 70%에 해당하는 560만명이 조합원이다. 사진은 퀘벡주 몬트리올시에 있는 데자르댕 금융그룹 본사.1979년에 완공된 대형복합빌딩이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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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아워 필로소피!(It's our philosophy, 우리의 철학이에요)"

그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당연하다는 듯했다. 피에르 풀랭 박사. 투명한 안경테 너머로 파란 눈동자가 더 커 보였다. 그에게 '은행이 그렇게 돈 안 되는 사업이나 기금에 투자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오전 내내 데자르댕(Desjardins) 금융그룹의 역사를 그에게서 들었던 터다. 점심 식사자리에서도 그와의 대화가 이어졌다. 풀랭박사의 말이다.

"사회적 약자나 단체, 문화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데자르댕의 주인인 조합원의 뜻이에요. 이는 100년 넘게 이어온 우리의 철학이죠."

'철학'이라는 말 한마디에 솔직히 더 이상 질문을 잇기 어려웠다. 지난 6일 오전 캐나다 퀘벡시의 레비(Levis)에 위치한 데자르댕 기념관. 풀랭 박사는 이곳에서 수십 년째 역사를 연구해온 학자다. 말끔히 단장된 2층 목조 건물이었다. 내부에는 100년 넘은 세월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 지난 1900년 알롱스와 도리멘 데자르댕 부부가 처음으로 '민중금고(people's bank)'를 만들었던 곳이다. 불어로 '카이세 파퓰라리레(caisse popularire)'로 불린다. 이는 캐나다 협동조합의 시작이기도 하다.

3000% 폭리에 허덕이는 시민을 구하기 위해 생긴 '민중금고'

캐나다 퀘벡시의 레비스에 위치한 데자르댕 기념관. 알롱스와 도리멘 데자르댕 부부가 처음으로 '민중금고(people's bank)'를 만들었던 곳이다.
 캐나다 퀘벡시의 레비스에 위치한 데자르댕 기념관. 알롱스와 도리멘 데자르댕 부부가 처음으로 '민중금고(people's bank)'를 만들었던 곳이다.
ⓒ 김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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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금고'가 만들어진 이유는 간단했다. 경제적 약자인 가난한 지역 주민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1900년 당시 퀘벡의 인구는 160만 명이었다. 주민 2/3가 농촌에 거주했다. 대부분 프랑스계 사람들이었다. 농촌이나 도시 모두 경제여건이 좋지 않았다. 주민들은 낮은 임금과 실업으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풀랭 박사의 말이다.

"당시 노동자의 주당 급여가 3~5달러에 불과했어요. 그렇다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도 어려웠지요. 퀘벡에 4개의 은행이 있었지만, 대부분 영국계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었지요. 이들은 주로 부자들만 상대를 했지요."

알퐁스 데자르댕은 이같은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1854년 퀘벡시 레비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그는 지역언론 기자 생활을 했고, 신문을 발행하기도 했다. 자연스레 당시 사회·경제적 상황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오타와주 하원 속기사로 근무하던 그는 1900년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사건을 접하게 된다. 몬트리올에 사는 한 주민이 150달러 빌렸다가, 이후 이자를 포함해 5000달러를 갚아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3000%에 달하는 고리사채를 두고, 정치인들끼리 논쟁이 일었다.

금융 소외자들에게 쏜 희망... 대공황 때 금고 더 늘어

데자르댕은 경제적 약자를 돕기 위한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회 도서관에서 유럽의 신용협동조합 모델인 <민중 금고>라는 책을 발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주민들이 직접 은행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 사람당 5달러의 출자금을 내서 금고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가난한 농민들에겐 매주 10센트씩 나눠내도록 했다.

주로 농촌 등 기존 은행들이 취급하지 않은 곳이 이들의 무대였다. 주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퀘벡주 가톨릭 성직자들도 적극 나섰다. 1907년부터 8년 만에 132개의 민중금고가 세워졌다. 이는 인근 온타리오주와 미국으로까지 번져갔다. 학계에선 이를 두고 '데자르댕 운동'이라고 부른다.

수십년째 데자르댕의 역사를 연구해온 피에르 풀랭 박사. 그는 데자르댕이 협동조합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거대 금융그룹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수십년째 데자르댕의 역사를 연구해온 피에르 풀랭 박사. 그는 데자르댕이 협동조합의 원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거대 금융그룹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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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랭 박사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에 퀘벡 경제도 극심한 침체를 겪었다"며 "오히려 주민들 사이에서 민중금고에 대한 기대와 역할이 커지면서 그 숫자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 산업 발전과 함께 가계 수입 등이 늘었다. 주민들의 금융 수요 역시 다양해 졌다. 데자르댕 기념관쪽에 따르면 1936년부터 1960년까지 1059개의 새로운 민중금고가 세워졌다. 자산 규모도 1000만 달러에서 6억8700만 달러로 급성장했다.

데자르댕의 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60년대 이후 현대적인 은행의 모습을 갖추고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 단순한 예금과 적금, 대출 뿐 아니라 보험과 벤처캐피탈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데자르댕의 주인인 조합원도 꾸준히 늘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조합원 수만 560만 명에 달한다. 퀘벡주 인구가 790만 명인 것을 감안하면, 70% 넘는 주민이 조합원인 셈이다.

퀘벡주민 70%가 조합원...글로벌 경제위기에도 급성장

지난 8일 오전 퀘벡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몬트리올시를 찾았다. 이곳 시내 중심부에는 데자르댕 본사 건물이 있다. '데자르댕 콤플렉스'로 불리는 거대한 복합 빌딩은 몬트리올의 랜드마크로 꼽힐 정도다. 사실상 퀘벡 주민이 주인인 데자르댕은 금융회사로서 세계 여느 회사에도 뒤지지 않는다.

데자르댕이 내놓은 2011년 연차 보고서를 보면, 자산 규모가 1901억달러(캐나다 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218조 원에 이른다. 지난 2010년 1789억 달러보다 6.3% 늘었다. 올해 1분기 자산은 더 늘어 1964억 달러(약 220조 원)를 기록하고 있다. 또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순이익도 15억8200만 달러(1조8000억 원)를 기록했다. 2010년보다 14.1%나 증가했다.

데자르댕은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에도 순이익이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말 순이익규모만 15억82만달러(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
 데자르댕은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에도 순이익이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말 순이익규모만 15억82만달러(약 1조8000억원)에 이른다.
ⓒ 데자르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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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을 쳤지만, 데자르댕은 끄떡없었다. 오히려 최근 3년 동안 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더욱 튼실해졌다. 이 회사 미디어 담당인 장 미셸 라베르주 국장은 "오히려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큰 타격을 입지 않고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며 "은행의 건전성이나 안전성 면에서도 북미 대륙에서 최상위권에 속해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은행 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비율 역시 데자르댕은 17.3%(2011년 말 기준)에 이른다. 올 1분기는 16.0%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 통틀어 북미 대륙 금융회사들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 또 부실채권 비율 역시 0.43%에 불과하다. 캐나다의 다른 일반 은행이 0.79%, 미국계 은행들은 1.87%를 기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무디스 등 세계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최우수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 50개 가운데 18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데자르댕의 금융건전성을 보여주는 표다. 부실채권 비율이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미국계 은행보다 4분의1수준이다.다른 캐나다 은행보다도 2분의 1 수준.
 데자르댕의 금융건전성을 보여주는 표다. 부실채권 비율이 미국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미국계 은행보다 4분의1수준이다.다른 캐나다 은행보다도 2분의 1 수준.
ⓒ 데자르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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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지배구조 속에서 지역 사회와 공생하는 혁신적 모델

프란시네 블랙번 미디어 부장은 "데자르댕이 건전하고 안정적인 경영전략을 취해올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에는 민주적인 지배구조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데자르댕 역시 다른 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1인=1표' 주의에 입각한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를 갖고 있다.

17곳으로 나누어진 지역에서 255명의 대의원을 포함해 5366명의 선출직 대표자들이 주민들의 의사를 대변하고 있다. 매년 열리는 데자르댕 연차총회는 1300명에 달하는 조합원 대표자들이 직접 참석해 주요 경영 사항을 결정한다. 블랙번 부장은 "주민들의 의사가 그룹의 의사결정에 직접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위험성이 높은 금융상품 개발이나 사업에는 참여하지 않는 대신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고 말했다.

데자르댕 금융그룹의 연차총회 모습. 매년 1300명에 달하는 조합원 대표자들이 직접 참석해 데자르댕의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데자르댕 금융그룹의 연차총회 모습. 매년 1300명에 달하는 조합원 대표자들이 직접 참석해 데자르댕의 주요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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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시중은행이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점포 개설을 꺼리는 농촌 지역에 지점을 유지하는 것이나, 영세상인이나 신용도가 낮은 주민들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사업도 많다. 그는 "이들에게 작게는 500달러에서 1000달러씩 연 수백만 달러 규모의 빌려주는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돈을 떼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이밖에 다른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 등을 지원하기 위해 별도의 연대기금을 조성해 놓고 있다.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는 "퀘벡에서 사회적 경제가 뿌리를 내리는데 데자르댕이 사회적 금융으로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풀랭 박사 역시 "데자르댕이 협동조합으로서 원칙을 충실히 유지하면서 거대 금융회사로 성장해 가고 있다"며 "세계 여느 신용협동조합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혁신적인 금융 모델"이라고 평가했다.

몬트리올의 데자르댕 본사에 만난 임직원들. 미디어 담당인 장 미셸 라베르주 국장(맨왼쪽)은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데자르댕은 매출이나 이익면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몬트리올의 데자르댕 본사에 만난 임직원들. 미디어 담당인 장 미셸 라베르주 국장(맨왼쪽)은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데자르댕은 매출이나 이익면에서 크게 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 김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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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취재지원: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태그:#퀘벡의 실험, #데자르댕,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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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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