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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병연 목조각가의 '혼불(참죽나무/육송)'
 라병연 목조각가의 '혼불(참죽나무/육송)'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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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본관 민주광장에서 '목조각가 라병연과 제자 6인전'이 열리고 있다(6월 23일까지). 목재가 가지고 있는 피톤치드 효능을 느끼며 현대인들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예술치료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목조각이 신선하게 느껴져 지난 21일 전시회장을 찾았다.

나무의 생명 에너지가 유난히 강하게 느껴지는 6월, 전시장에는 나무들이 품어내는 피톤치드 향이 짙게 풍기고 있었다. 전시장 입구 중앙에는 원형의 둥근 목판 위에 유성이 흘러가는 듯한 '혼불'(1200×900×500mm/참죽/육송)이라는 거대한 목조각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그 조삭상 앞에서 목조각가 라병연씨를 만났다.

"굳이 설명을 붙이자면... 둥근 원형의 참죽나무는 무의식의 세계인 바다를 의미하고, 그 위에는 의식의 세계인 혼불이 떠있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나무와 대화... 사람 감동시킨다"

24년째 나무를 깎고 있는 라병연 목조각가.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 맑아 보인다.
 24년째 나무를 깎고 있는 라병연 목조각가.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 맑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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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게 작품을 설명하는 그의 눈빛이 유난히 맑아 보였다. 공업디자인을 전공하다가 나무 조각에 눈을 뜨기 시작한 그는 서울종합직업전문학교에서 최무안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은 후 목공예기능사 2급 자격을 취득하게 됐다.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후부터, 나무의 결에 기록된 역사와 나무에 담겨 있는 철학에 매료된 그는 24년째 나무를 깎고 있다. 국립서울산업대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대학 공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최근에  문화재수리기능사, 전문예술심리치료사 자격까지 취득하며 일상의 대부분을 나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목조각은 나무의 이치, 곧 나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을 깊이 공감하고, 작가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나무의 내면에 숨겨진 깊은 이미지를 깎아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나무와 대화를 하면서 자신과의 대화가 무르익었을 때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진정한 작품으로 거듭 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와 대화하면서 나와 대화하기'라는 부제를 달았다고 한다. 제9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조각부문 우수상 등 공모전에 다수 입상을 한 그는 2003년부터 강서구 방화동에 '우드빌리지 아카데미' 목조각 교실을 열고 제자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인의 욕망을 표현한 '자기십자가(버드나무)'
 현대인의 욕망을 표현한 '자기십자가(버드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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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고목에 새긴 '자기십자가(800×400×950mm/버드나무)'라는 작품도 특이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가면서도 힘에 버거운 욕망의 자기십자가를 어깨에 지고 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버드나무는 트럭 터미널에 버려진 것을 누군가가 알려줘 주워다가 조각한 것입니다. 나무들과 만나는 인연도 참 묘하고 각별하지요."

전시장에는 라병연 작가의 작품 17점 외에도 그의 제자 6명의 작품 20여 이 전시돼 있었다. 그의 제자 중 '겸손(400×300×300mm/은행나무)'이라는 작품을 출품한 김정광(64)씨를 만났다.

그는 방송국에 30여 년 동안 근무하다가 5년 전에 정년퇴직했다고 한다. 퇴직한 후 그는 오래전에 매입했던 경기도 화성에 있는 농장에서 '들꽃사랑'이라는 간판까지 내걸고 야심 차게 야생화와 소나무 묘목을 키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무를 깎으며 겸손을 배웠다

김정광씨의 '겸손(은행나무)'. 목조각을 배운지 1년째인 그는 이 작품을 새기며 겸손의 미덕을 배웠다고...
 김정광씨의 '겸손(은행나무)'. 목조각을 배운지 1년째인 그는 이 작품을 새기며 겸손의 미덕을 배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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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처음 접해보는 농장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단다. 그는 농업대학까지 다니며 매일 농장에 나가 야생화와 나무들과 씨름을 하며 보냈으나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함뿐이었다고. 사랑하는 딸까지 미국으로 시집을 가버리자 그는 정신적으로 더욱 외로워지고 삶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농장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아내는 자기 생활이 따로 있으니 힘든 농장에 자주 올 수 있는 처지도 못 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 보니 괜히 외로워지고 약간의 우울증까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것이 우드빌리지 아카데미였습니다."

김정광씨의 '봄'. 그는 뽕나무에 이 작품을 새기며 희망의 메시지를 얻었다고 한다.
 김정광씨의 '봄'. 그는 뽕나무에 이 작품을 새기며 희망의 메시지를 얻었다고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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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빌리지 아카데미를 우연히 들른 그는 목조각에 매료돼 시간만 나면 손에 나무를 들고 깎기 시작했단다. 서투른 솜씨로 나무를 깎다가 검지를 베어 다섯 바늘을 꿰매는 고통도 감수하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에서 풍겨나는 특유한 향과 나무가 빚어내는 생동감에 매료된 그는 1년 동안 쉬지 않고 나무와 대화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다고.

"나무는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고 외로움을 치유해줬으며, 어떤 알 수 없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줬습니다. 나무를 깎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말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나무를 계속 깎아 볼 생각입니다."

목공예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은행나무에 예수가 베드로의 발을 씻어주는 작품을 새기며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미덕을 배웠다. 또한, 목련 나무에 '꽃향기'를, 뽕나무에 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봄'(Spring)이란 작품을 새기면서 다시 삶의 희망을 찾았다고 했다.

"끌질 하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

주난숙씨의 '질그릇 속에 보배(육송, 금, 잣나무)'. 수천 번의 끌질을 한 작품이다.
 주난숙씨의 '질그릇 속에 보배(육송, 금, 잣나무)'. 수천 번의 끌질을 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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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난숙씨의 작품 '질그릇 속에 보배'는 육송과 잣나무에 수천 번의 끌질을 해 금을 입힌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8회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 입선작이기도 하다.

"나무를 깎고 있으면 도대체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끌질 삼매경에 빠지게 되요."

목조각을 배우기 시작한 지 7년이 됐다는 그녀는 "나무를 깎으며 끌질 삼매경에 들어가다 보니 '인형공모대전 금상'을 비롯해, 대한민국 기독교미술공모대전 입선 등 수상도 여러 차례 했다"고 말했다.

목조각은 조각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어도 몇 개의 끌과 칼만 준비하면 쉽게 접할 수 있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에게 진한 나무 향과 아름다운 나뭇결을 느끼며 나무를 깎는 작업은 경직된 정신을 환기시켜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줄여 줄 수 있다.


태그:#목조각, #라병연목조각가, #목조각가 라병연과 제자 6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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