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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문에서 팔달문까지 가는 4차선은 차가 주인이다
 장안문에서 팔달문까지 가는 4차선은 차가 주인이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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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수원시 행궁동은 사람이 주인이 된다

수원시는 2013년 5월, 세계최초로 생태교통 시범사업인 '생태교통 페스티벌'을 진행한다.
이를 위해 시는 지난달 팔달구 행궁동 (수원화성이 있는 장소)을 시범지역으로 정했으며 주민들은 오는 2013년 5월, 한 달간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택시, 무동력스쿠터 등 친환경 이동방식을 이용하게 된다.

좀 생소하지만 생태교통이란 걷기, 달리기, 자전거와 인라인 같이 바퀴와 수레 등을 이용하는 무동력 이동수단과 함께 전기차, 버스, 기차,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결합한 친환경 도시 교통을 말한다. 우스갯소리로 자가용만 왕따(?)다.

자가용이 없는 도시, 승용차가 사라진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그려본다.

'주차전쟁이 없어질 것이며 기름 값과 보험료, 수리비의 부담에서 해방되겠지요. 자동차 소음과 매연도 사라지겠고 교통사고 위험도 줄어들어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을 겁니다. 마을이 조용해지고 깨끗해지며 더욱 안전해질 겁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기후변화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참 좋은 상상이다. 하지만 '몸 따로, 마음 따로'라는 표현대로 진짜 실행단계까지는 아직 멀고도 험하다. 또한, 비록 한 달간 벌이는 시범사업이라도 시민이나 행정 모두가 마음을 함께 해야 가능하다. 

수원시는 이번 행사에 대해 "석유 고갈시대를 대비해 차 없는 친환경도시를 재현해 전 세계에 생태교통이 가능성하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취지며, 차 없는 친환경 도시의 실제 모습을 재현해 도시 내 생태교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세계 각국에 보여줄 필요가 있는 시범 프로젝트"라 설명한다.

뜻있는 사람들은 수원시의 생태교통 시범사업에 많은 박수를 보낸다.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한 지역을 선정해 한 달간 생태교통을 시연해 보겠다"고 나선 것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시사 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행궁동 공방거리길은 차와 사람이 공생한다
 행궁동 공방거리길은 차와 사람이 공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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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기다리며 자전거로 미리 돌아 본 행궁동

6일, 기자는 1년 후 생태교통시범을 보여 줄 마을인 팔달구 행궁동을 자전거로 돌아봤다. 생태교통 시범지역으로 지정됐기에 궁금하기도 했지만 행궁동이 마을만들기에 열의가 가득하기에 그 모습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팔달산을 품고 수원화성과 행궁 등 향토유적이 자리 잡고 있는 행궁동은 1만4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문화재보호구역이기 때문에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마을이 파헤쳐지지 않아 집과 골목들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반면, 낙후됐다는 표현대로 주민들의 생활불편은 늘 함께 따라다니던 곳이다.

마을을 보기 위해 가장 높은 곳인 팔달산에 올랐다. 팔달산은 높이가 143미터로 높지는 않지만 수원지역을 내려다보기에 충분했다. 특히 행궁을 비롯해서 행궁동을 살펴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인근 어느 산과도 연결되지 않고 홀로 우뚝 솟아있기에 사방이 확 트여 전망이 좋은 산이다.

산 위에서 본 행궁동은 가장 먼저 행궁광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으로 장안문에서 팔달문까지 길게 뻗은 4차선 도로. 그리고 큰 도로를 따라 작은 도로들이 가지처럼 뻗어 마을 구석구석으로 들어와 있다. 그 너머로는 도로와 같은 방향으로 화홍문에서 남수문까지 흐르는 수원천의 모습도 어렴풋하게 보였다.

도로의 큰 축은 북문(장안문)에서 남문(팔달문)을 관통하는 길과 서문(화서문)에서 들어오고 동문(창룡문)에서 들어오는 길이다. 이 도로는 대중교통과 일반 차량이 섞여 흐르는 곳이며 가지처럼 뻗어있는 마을 안쪽 길은 승용차등 개인차량들의 차지가 된다.

"먼저 대중교통의 주도로인 북문에서 남문까지, 서문에서 수원천까지 내려와서 행궁앞에서 동문으로 빠져나가는 도로를 달려볼거야. 이 길은 자동차가 주인이라면서? 그 다음에는 차와 사람이 공생하는 공방거리를 가 볼 것이고 마지막으로 사람이 주인인 행궁동 벽화마을길을 돌아봐야지."

행궁동 벽화골목길은 사람이 주인인 길이다
 행궁동 벽화골목길은 사람이 주인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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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주인, 북문에서 남문까지 그리고 서문에서 동문까지

1950년 한국전쟁 전까지 북문(장안문)의 성문길은 사람과 우마차, 차량 등이 함께 다니던 도로로 사용됐다. 전쟁 중에 폭격으로 건물이 날아가고 성벽이 허물어지면서 옆으로 다니기 시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장안문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성문 길은 전쟁으로 인해 생태교통 지역이 되고 차량은 우회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차량의 대형화로 자연스럽게 우회가 이뤄지게 됐겠지만 전쟁이 어느 지역을 한 순간에 생태교통지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재미난 일이다.

장안문에 섰다. 정확히 표현하면 장안문 성문길. 생태교통 지역이다. 그대로 멈춰서 있어도, 맨 바닥에 주저앉아 노닥거려도 마음이 편한 장소. 생태교통이란게 이런 건가? 이런 편안함인가? 하는 간접경험을 하게 되는 곳. 예고편 처럼 생태교통을 잠시 체험하고 자전거 페달을 돌렸다.

성문길을 뒤로 차가 주인인 4차선 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면서 마음은 갑자기 급해졌다. 꼬리 내리고 눈치 보느라 편치 않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주인이라고 저리 가라고 경적을 울리면 저리가고, 비키라고 윽박지르면 보도블록으로 쫓겨 올라가야만했다. 무엇보다 문제는 달리는 차량 바닥에서 올라오는 먼지와 매연이었고 이는 숨을 멎게 만들 정도였다.

그렇게 쫓겨 올라와 사람들과 뒤섞여 보도블록을 달리다 보니 '생태교통을 실천한다는 것이 마음은 앞에 가 있는데 현실은 따라와 주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도블록 위까지 올라와 길을 가로막고 있는 차량들이 그것을 더욱 부추겼다.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주인행세하면서 횡포부리는 차량들 속에 더 이상 억눌려 지내고 싶지 않았다. 한없이 작아짐을 느끼며 장안문 성문길에서 느꼈던 사람 사는 세상으로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 싶었다. 행궁광장에서 핸들을 급히 꺾어 공방거리로 도망치듯 들어섰다.

좌, 뭉크의 절규 우, 수원천 다리밑 풍경
 좌, 뭉크의 절규 우, 수원천 다리밑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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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사람이 공생하는 공방거리 그리고 사람이 주인인 벽화골목길

공방거리길은 행궁동 광장에서 시작해 향교로(로데오거리)를 거쳐 수원역까지 가는 길 중에서 초입에 있는 길이다. 좀 숨 쉴 만 했다. 자동차와 사람이 더불어 산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했다. 차도인 듯 보이기도 하고 인도인 듯 보이기도 한 길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 길은 주민 스스로 차 없는 거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 차 우선인 길이 아닌 사람 우선인 길이 돼 차량들이 조심, 조심 사람을 피해서 다니는 모습은 이채로웠다. 차와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예를 갖추는 곳, 그곳이 바로 행궁동 공방거리였다.

공방거리를 경험한 후 이제는 사람이 주인인 길, 행궁동 벽화골목길을 향해 달렸다, 말 그대로 이곳은 골목길이기에 애초부터 사람 사는 세상이었고 차량의 진입은 불가능하기에 생태교통이라는 말 자체가 필요 없지만 행궁동에는 이런 종류의 길들이 많기에 한번쯤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도로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니 조용했다. 큰 길에서 한 발짝 들어섰을 뿐인데 차량의 소음이 사라졌다. 그들이 내 뿜는 매연과 아스팔트 먼지도 먼 세상의 얘기처럼 자유로웠다. 시간이 멈춘 듯... 그래서 자전거에서 나는 소리조차 크게 들리는 곳. 누군가 저편에서 걸어오면 반갑게 인사를 건넬 것 같은 분위기속에 자동차가 없는 세상은 사람이 사람다워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행궁동에는 세 종류의 길이 있었다. 차가 주인인 도로와 차와 사람이 공생하는 도로, 그리고 사람이 주인인 도로. 모두를 돌아봤다. 생태교통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조언하기에는 전문가적 식견이 부족하고, 도로를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기엔 기술적인 능력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차량 중심의 도로와 사람 중심의 도로'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느낌은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충분한 여정이었다.

그 느낌은 뭉크의 절규라는 작품과 오버랩 됐다. 지금 수원시와 시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시도하고 있는 '생태교통 시범지역 한 달 체험'과 전면 시행이 다소 무모한 것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런 노력들이 없다면 가깝거나 혹은 먼 미래에 팔달산 정상에서 공해와 소음으로 가득 찬 도심을 바라보면서 시민들은 공포에 절규하게 될지도 모른다. 흡사 뭉크의 절규처럼...

한편, 수원시가 국제기구인 ICLEI, UN-HABITAT(유엔인간정주계획)와 함께 세계 최초로 추진하는 '생태교통 시범사업(EcoMobility Festival)'은 이렇게 진행된다.

2012년 5월-7월: 실태조사 (행궁동)
2013년 4월: 생태교통 수단 제공
2013년 5월: 생태교통 페스티벌 개최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수원시 인터넷신문 e수원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원시, #행궁동, #생태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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