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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숙농성 9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숙농성 9일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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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폭력 규탄 집회가 오늘 저녁 7시에 있으니, 조합원 모두 참석 바랍니다."

지난 16일 오후 7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는 현대차 폭력에 대한 규탄 집회가 열린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오후 7시에 일을 마치고 가니, 이미 30분 후였습니다. 집회는 마무리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략 150여 명 모인 것 같았습니다. 집회 후 노동자들이 흩어지고, 10여 명은 여전히 정문 앞에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현대차는 철 구조물에 둥근 타원형으로 만든 대형 문을 닫고 노무 직원을 시켜 비정규직 노동자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사복형사도 보였습니다.

16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에서 현대차 폭력에 대한 규탄 집회 열려

정문 경비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회사 안에는 대형 버스가 있고, 승합차도 있었습니다. 단단한 철 구조물 문 뒤에는 젊은 사람들이 하얀 마스크를 하고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사복형사들은 집회가 끝나자, 출입증도 없이 회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못 들어가는 그곳에 형사들은 마음껏 들어갔습니다.

저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숙 농성하는 장소에 앉아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바빠서 만나기 어려운 비정규직 노조 위원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잠시 시간 낼 수 있느냐고 물어보니 그럴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많이 다쳤다더니, 괜찮으냐?" 물었더니 "참을 만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먼저 왜, 노숙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했습니다. 박현제 비정규직 노조위원장이 말했습니다.

"오늘로 정문 앞 노숙 농성 8일째입니다. 제가 비정규직 노조 임원 후보로 나오고, 당선된 후 그러니까 지난 4월 9일(월) 오전 9시경이었습니다. 선거로 뽑힌 임원과 선임된 상집위원이 모여 노조 업무를 보려고 정문 출입을 하려 하는데, 경비들이 막고서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4공장 문으로 가서 들어가려 했으나, 거기도 가로막고 들여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문자로 해고자 동지들 모이라고 하니 30여 명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함께 노조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으나,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정문과 4공장 문을 오가며 승강이를 벌이다가 오후 5시경 정문 앞에 앉아 농성을 시작한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 후 정규직 될 줄 알았던 최병승씨... 17일 중노위에서 심문회의 

스치로폴 깔판깔고 노숙농성
 스치로폴 깔판깔고 노숙농성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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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제 위원장이 다쳐 병원에 실려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지난 13일 금요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침 출두를 마치고, 조합원을 만나려 현장을 찾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날 30여 명이 모여 정문을 들어가려 했는데, 정문 경비들이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갑자기 젊은 경비들로 바뀌면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밀치고 밟히고 깔렸습니다. 쇠문을 닫으면서 안에서 밖으로 밀고 하니, 쇠 구조물 안에 발이 끼이기도 하고 넘어져 다치기도 한데, 알 수 없는 발길질과 주먹이 순식간에 왔다갔다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119가 와서 병원에 실려 가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이 다친 동지도 많았습니다."

대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을 이끌어 낸 최병승씨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최병승 동지는 현자노조 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 사무실에 있습니다. 본래는 대법원 판결 후 곧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복직시켜야 마땅하지만, 현대차는 '시간끌기작전'을 쓰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불법파견에 대한 판결만 했기 때문에 현대차가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최병승 동지의 해고가 정당하냐 부당하냐를 판결해 달라고 주문해 놓은 상태입니다.

17일(화) 오후 2시에 중노위에서 심문 회의를 합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서울 중노위에 가서 1시 30분에 기자회견을 하고, 2시에 중노위 재판에 참관하려고 조합원과 함께 올라갑니다.

어느 정규직 활동가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경찰 차량이 자주 드나든다 합니다. 현자노조에서 사람이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며 최병승 동지가 식당을 맘 놓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으나, 현대차 쪽에선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예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이번에도 짐작해 보면 아마도 공장 안에서 잡아가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규직 아버지였다면 "근사하게 백일잔치 해 주었을 텐데..."

딸 백일 선물 받았다며 자랑하는 아빠 박현제 비정규직 위원장.
 딸 백일 선물 받았다며 자랑하는 아빠 박현제 비정규직 위원장.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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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문제 어떻게 풀렸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현대차가 불법파견을 저지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8대 요구안을 정했습니다. 그 핵심은 불법파견 사용 중인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것과 아울러 체불임금에 대해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고자 전원을 정규직으로 복직 시키라는 내용도 있고, 류기혁 열사에 대해 명예회복과 현대차 최고 책임자인 정몽구 회장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현대차는 지금 계속 시간 끌기와 여론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대법원에서는 정규직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해고가 정당하냐 부당하냐를 묻는 중노위 판결을 요구하고 있으니, 참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이미 정규직으로 보아야 한다고 대법원에서 판결한 이상 불법파견업체로부터 해고된 사안은 성립될 수 없음에도 억지주장을 한 것입니다."

박현제 비정규직 위원장은 8대 요구안에 대해서는 울산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전주, 아산 3 지회와 현자노조가 머리를 맞대고, 8대 요구안 원안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문구를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선물을 하나 받았다며 보여주었습니다. 이번에 딸아이가 100일인데, 정규직 활동가 한 분이 딸아이의 백일 선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딸이 세상에 태어난 지 100일 되는 날, 아버지는 차가운 길바닥에서 밤을 지새웁니다. 정규직 아버지였다면 "근사하게 백일잔치를 해 주었을 텐데..."라고 말합니다. 저도 아버지가 되어 보아, 그 심정이 헤아려집니다. 비정규직 아버지라 백일잔치도 못하는 그 심정을 말입니다. 저도 두 자식이 있지만 둘 다 백일잔치도 돌잔치도 못 해 주었으니까요.

딸아이의 선물을 들고 사진을 찍는데, 박현제 위원장 뒤편에 풍경이 보였습니다. 철 구조물 문 안에는 하얀 마스크를 한 채, 줄을 서서 이곳을 지켜보는 젊은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 광경을 보자, 저는 7년도 더 지난 일이 악몽처럼 다시 떠올랐습니다.

2005년 1인 시위때, 경비들의 무차별 폭력은 아직도 두렵다  

2005년경 노동부에서 현대차 101 하청업체가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내린 후 비정규직 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도 정규직 한번 되어보고 싶어서, 1인 시위를 1년여 동안 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여름 어느 날 비정규직 노조는 본관 앞에 모여 항의 집회를 열기로 하고 오후 5시 30분에 모였습니다.

50여 명 모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정규직 조합원은 비디오도 찍고, 사진도 찍으며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경비가 많았습니다. 앞줄에 나이가 든 경비가 본관 앞에 서 있었고, 뒤에는 젊은 경비들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집회하는 옆에 1인 몸 벽보를 걸치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나이가 든 경비가 오더니, 저에게 일부러 시비를 걸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저에게 다가와 멱살을 잡으며,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철 구조물 뒤에 보이는 무서운 현대차 경비들.
 철 구조물 뒤에 보이는 무서운 현대차 경비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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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의도 할 겨를도 없이 그 경비는 저를 멱살을 잡은 채 앞으로 엎어지게 했습니다. 그 순간 젊은 경비들이 달려들어 저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넘어진 저를 마구 밟았습니다. 순식간에 폭력을 행사하고 다시 제자리로 가서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저를 때린 자가 누군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렸으나 말리는 사람도 마구 때렸습니다. 촬영기도 짓밟혀 부서졌습니다. 촬영하던 노동자는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며칠 동안 가슴 쪽이 욱신거리고 아팠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경비만 보면 겁부터 납니다. 박현제 비정규직 위원장 이야기를 들으면서 경비에게 가서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노동조합법에도 노조 활동을 제약 없이 하도록되어 있는데, 왜 경비들이 못 들어가게 막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겁이 나서 접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의 그 악몽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집회하는 날, 주변이 어두워지니 추워졌습니다. 바람도 많이 불었습니다. 집회 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밤새울 그곳에 앉아보았습니다. 이 추운 날 집에도 못 가고, 냉 바닥에 앉아 밤샘할 비정규직 노동자를 생각하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는 많이 미안했지만,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습니다. 다음날 일용직 아르바이트 출근을 해야 하므로.


태그:#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해고자, #정규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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