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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간판이 눈에 띈다. 4.11 총선 전쟁이 한창이지만 영등포 유권자의 표심은 냉랭하다.
 '전쟁' 간판이 눈에 띈다. 4.11 총선 전쟁이 한창이지만 영등포 유권자의 표심은 냉랭하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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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 못 받으니까 '박근혜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된다'고 욕을 하더니 전여옥 지 그릇은? 무소속으로 출마 안 한다고 한 게 다른 당(국민생각)으로 가는 거였어?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 신장개업할 모양인데, 염치가 있으면 최소한 업종을 바꾸라고 해."

서울 영등포역 맞은편 유흥가 골목에 자리한 노인회관 건물 앞에서 만난 한 노인은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그는 "전여옥이고 뭐고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이 하는 짓이, 어째 요 앞 포장마차 주인보다 못 하다"며 "가게만 옮겨서 똑같은 주인에 똑같은 음식으로 신장개업할 모양인데, 그게 말이 되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전여옥 의원이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에서 국민생각으로 당적을 바꿔 또다시 국회의원에 도전하려는 행태를 비판한 것이다.

전여옥 의원 인지도는 최고, 정치 불신은 심각

전여옥 의원의 유명세 탓일까. 지난 11일과 12일, 이틀에 걸쳐 만나 본 서울 '영등포갑' 선거구 주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집에 왔던 손님도 갈 때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간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그냥 가면 그만인 줄 안다. 그래놓곤 뻔뻔하게 다른 데 가서 또 굽실거리고…. 이번에는 투표 안 할 거다."

지하철 2호선 당산역 부근 모아파트단지 앞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아예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전여옥 의원이 다른 당으로 가는 건 자유라지만, 뽑아준 유권자에게 정중하게 사과라도 하고 가는 게 도리 아니냐"고 되물었다.

당산역은 지하철 2호선이 강남에서 강북으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에 있다. 한강을 바라보며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모여 있고, 학원가와 아웃렛매장 등도 있어 주말과 평일 상관없이 사람들로 붐빈다.

당산역 부근의 한 미용실. 조심스레 총선 이야기를 꺼내자 40~50대로 보이는 여성 3명이 머뭇거리면서 말문을 열었다.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국민생각 박세일 대표가 전여옥 의원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12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국민생각 박세일 대표가 전여옥 의원을 대변인으로 임명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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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무슨 선거예요. 누가 나오는지도 모르는데. 그나마 전여옥이 나오면 찍어주려고 했는데…. (옆을 보며) 누가 나오는지 알아?"
"몰라요. 그래도 전여옥이 딴 데로 간 걸 보니까 한나라당(새누리당)은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이번에는 야당 찍어야 해."
"그래, 누군지는 몰라도 민주당 찍을 거야. 전여옥이 한 게 뭐 있어. 만날 욕먹을 짓만 하고 다니잖아. 괜히 우리 동네 망신만 시키고."

전여옥 의원의 인지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후보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대부분이 모른다고 대답했다. 대신 전여옥 의원에 대해서는 좋든 싫든 모두 한마디씩 덧붙였다.

때마침, 전여옥 의원은 12일 자로 국민생각 최고위원과 대변인을 맡으며 또다시 전국적인 유명세를 떨쳤다. 비례대표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야권연대 후보로 단일화하면 꼭 찍어줄 거예요. 이명박 정부도 마음에 안 들고, 박근혜 위원장도 과거 인물이라서 싫어요. 전여옥 의원도 유권자 우습게 보는 건 똑같고."

당산역 앞, 추운 날씨에 중무장하고 어디론가 바삐 가던 대학생 김선영(24)씨의 말이다. 그녀는 "정치가 왜 이 모양인지, 전여옥 의원이 당을 옮기자마자 대변인 맡는 걸 보니 알겠다"며 "취업과 등록금 문제 등 20대를 위한 정치는 그나마 민주당이 나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은 시장 가서 '쇼' 하지만..."

영등포역에는 롯데백화점이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빈다.
 영등포역에는 롯데백화점이 있어 늘 사람들로 붐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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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등포갑 선거구는 KBS 기자와 문화관광부 차관을 역임한 새누리당의 박선규(52) 후보만 출마가 확정된 상태다. 야권에서는 17대 국회의원이었던 민주통합당 김영주(58) 후보와 박원순 서울시장 선거대책본부 뉴미디어본부장 출신의 통합진보당 박무(54) 후보가 각각 공천을 받았다. 이 둘은 오는 17~18일 여론조사 경선을 통해 야권연대 후보를 확정 지을 계획이다.

'영등포갑' 선거구는 영등포본동과 영등포동, 당산동, 문래동, 도림동, 양평동, 신길3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거 형태를 보면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낙후된 주택으로 구분되는 곳이다.

이곳에는 영등포의 쪽방촌을 비롯해 문래동과 도림동 등의 조그만 설비 제조업체가 다닥다닥 붙은 서민들의 터전도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영등포전통시장과 영등포청과물시장이 서민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반면, 영등포역을 중심으로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서로 마주 보고 있고, 최근에 새롭게 들어선 타임스퀘어도 자리하고 있다.

"장사가 예전만 못해. 나랏일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같은 상인들 생각을 해 줘야지. (타임스퀘어 같은) 큰 건물이 올라가서 차는 더 막히는데,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 기자 양반, 누구 찍어야 돼?"
"누구 찍긴. 대통령은 만날 시장가서 '쇼' 하잖아.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절대로 찍으면 안 돼."

영등포전통시장에서 만난 상인들의 대화다. 이들 역시 총선 후보가 누구인지 몰랐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바뀐 것도 알지 못했다. 총선까지는 앞으로 한 달. 영등포갑 선거구는 전여옥 의원이 남긴 흔적을 지우기에도 바빠 보였다.

"선거 때는 그렇게 뽑아달라고 굽실거려놓고 결국 제 입맛에 안 맞으면 제 살 길 찾아서 떠나는 게 정치인이에요. 그래도 박원순 같은 사람 시장 만드니까 일 잘 하잖아요. 학교 무상급식도 약속한 대로 지키고. 전여옥이 어디 가서 뭐 하든 관심 없어요."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영등포시장으로 장을 보러 나온 40대 박미정씨의 말이다. 그녀는 "정치인들이 하는 약속을 잘 따져봐야 한다"며 "정치인들이 뉴타운이니 4대강이니, 정말이지 국민 좀 피곤하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영등포 뒷골목에서 바라본 풍경. '생막걸리 1잔 1000냥' 간판은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에서 골목 끝 맞은편에 신세계백화점이 있다.
 영등포 뒷골목에서 바라본 풍경. '생막걸리 1잔 1000냥' 간판은 서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에서 골목 끝 맞은편에 신세계백화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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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은 처음에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의 '영동'이라 불렸다. 그만큼 영등포는 잘 나갔고 강남은 그다지 별 볼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의 영등포와 강남은 그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영등포역과 영등포시장의 중간 지역, 족히 1km는 넓게 이어진 대표적인 유흥가 골목길을 걷다가 '막걸리 1잔 1000냥'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길을 벗어나면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가 말끔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막걸리 1잔 1000냥'과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서민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한 1000냥에 머물러 있지만, 국회의원들은 과거 선거운동을 하던 시간을 잊고 신세계에 머물고 있다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각, 1000냥짜리 막걸리를 몇 잔이나 비웠을까. 이미 붉어진 얼굴을 한 시민은 선거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거칠게 반응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선거가 다 무슨 필요예요. 정치인이 언제 우리 같은 사람 생각해 준 적 있답니까? 지들끼리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러쇼. 젠장. 새누리고 민주고… 우리한테 해 준 게 뭐가 있소?"

"투표해서 국민이 무섭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전여옥 의원이 당적을 옮기며 떠난 영등포갑 선거구 주민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일방통행-표 사냥-사랑한다! 썅'이라고 할 수 있다.
 전여옥 의원이 당적을 옮기며 떠난 영등포갑 선거구 주민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일방통행-표 사냥-사랑한다! 썅'이라고 할 수 있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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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선이 이렇게까지 차가울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현재 거의 모든 정당이 이름을 바꾸는 등 변신을 시도했다. 그리고 신당 창당과 탈당, 무소속 출마 선언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선은 차가운 듯하다. 

'일방통행'의 정치는 유권자에게 마지못해 '사랑한다 썅!'이라는 애증만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비단 전여옥 의원만의 이야기는 아닐 터. 하지만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바라다보이는 당산역 앞에서 만난 30대 자영업자의 말은 전여옥 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분명히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치는 다 함께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정치인들은 자기들 살 것만 궁리해요. 당 이름 바꾸고, 대통령 지지했다가 인기 떨어졌다고 대통령 내치고, 마음에 안 든다고 공천 안 주고, 탈당해서 당 바꾸고… 이게 상식적인 사회예요? 장사하는 우리도 메뉴 하나 만들려면 손님들에게 두루 평가받고 고민하는데. 투표해서 국민이 무섭다는 걸 보여줘야 해요."

당산역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이곳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유권자들이다.
 당산역에서 바라본 국회의사당. 이곳의 주인은 국회의원이 아니라 유권자들이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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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최육상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전여옥, #총선, #4.11총선, #영등포갑,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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