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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원혜영, 이용선 공동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들이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지도부 선출을 위해 모바일투표에 참여한 국민참여 선거인단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원혜영, 이용선 공동대표를 비롯한 지도부들이 지난 1월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지도부 선출을 위해 모바일투표에 참여한 국민참여 선거인단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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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또 문자가 왔다. 국민참여경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빨리 서두르라는 내용이다. 올해 총선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이 보낸 문자다. 이런 문자를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이번 총선 내내 이어질 것이다. 아마도 얼마 뒤에는 운 좋은 누군가의 '당선사례'와, "비록 민심을 얻는데는 실패했지만 제게 보여주신 사랑 잊지 않고 살겠다"는 풀죽은 낙선자의 인사가 전화기에 찍힐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광주광역시. 사실 특정 정당에 공천이 되면 당선은 걱정 안 해도 되는 특수한(?) 정치지형을 갖춘 곳이다. 방금 온 이 문자, 국민경선참여를 독려하는 문자가 아니더라도 그들, 정치에 뜻이 있는 예비후보자들은 오래 전부터 명절이나 새해 또는 특별한 기념비적인 날이면 어김없이 잊지 않고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한 번도 그들과 개인적으로 친분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그러니 그들의, 나에 대한 사랑은 너무 일방적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문자... "늘 당신과 함께 할게요"

국민경선참여를 독려하는 문자
 국민경선참여를 독려하는 문자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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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스스럼없이 나를 '동지'라 칭하며 문자 상으로 애정을 표현해 오던 자칭 인권변호사 출신 모 후보자는 내 가족 외 친구 몇 명만 공유하는 채팅 어플에 버젓이 내 친구로 들어앉았다. 거기는 누군가 '친구초대'를 신청해 오면 상대방이 허락을 해야만 '친구 추가'가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강제로 대화방에 친구로 등록 될 수 없는, 나름 보완을 갖춘 시스템이다. 그런데 실무자들의 컴퓨터 운용실력이 뛰어났는지, 내 허락 없이도 인권변호사는 가족 외에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으로 내 방에 캐릭터를 걸어 놓고 있었다.

정말 그들의 사랑은 너무 무조건이고 일방적이다. 나야 뭐 크게 손해 보거나 상처 받을 일은 없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약간의 스토커 같은 성향이 있다. 하지만 일개 가정주부인 나를 선거철이 아니었더라면 누가 이렇게 살뜰하게 챙기고 관심이나 가져주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못 견딜 일만도 아니다.

내게 오는 문자들이라야 고작 인근 대형마트에서 딸기 한 팩을 얼마 할인해 판다거나, 식육점에서 주말을 맞아 삼겹살을 백 그램당 얼마에 판다드니, 아니면 옷을 구매한 기억이 까마득한 중저가 브랜드 매장에서 철지난 옷을 반값에 가져가라는 허접한(?) 내용들이 고작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하나같이 내 지갑을 열게 하려는 것이지, 내게 관심이 있다거나 나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자상한 예비후보자들이 아니라면 내가 언제 '늘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 곁의 든든한 일꾼 00입니다' '다가오는 새해 당신의 종이 되겠습니다' 이런 다정하기 짝이 없는 문자를 받아보겠나.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에게 '당신을 지지합니다'라고 한 번도 동의한 적 없다. 나는 한 번도 그들에게 동지가 되자, 친구를 맺자, 다정한 이웃이 되어 달라 허락한 적 없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의 필요에 의하여 어느새 그들 사람이 되어 황송한 문자를 휴대폰 가득 수령하고 있다.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들이야 당사자들이니 그렇다고 치자. 심지어는 지방자치단체 의원들까지 문자 발신에 가세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모 시의원의 사람이 되어, 여론조사 전화가 오면 시의원이 지지하는 모후보자에게 유리한 대답을 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남자, 왜 그렇게 '여자친구'가 많지?

또한 그렇게 '협조'하고 나서는 즉각 그 시의원에게 전화로 알려 당신의 공적을 쌓는 밑돌이 돼야했다. 시의원은 해당 지구당 위원장이자 현역의원이며 이번 총선의 예비후보자이기도 한 모 후보를 위하여 충성을 보여야 한다. 그의 처지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왜 '그의 사람'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내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당연하게 자신들의 사람으로 믿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현역 지자체의원,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들 문자서비스는 모두 똑같은 명단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무성의한 모집책들이 한번 확보한 명단을 이 캠프 저 캠프로 유통시키면서 거래하는 바람에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늘 누군가의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들이 공들여 보내온 문자들을 고려하면 몽땅 내 옆에 두고 종으로 또는 동지로 삼고 싶어도 내게 허락된 사람은 단 한 명 뿐이다. 이 치열한 애정공세 속에서 단 한 명만을 선택해야 한다니... 유권자로서 비애가 깊다.

지난 1월 14일 오전 서울 충신동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투표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14일 오전 서울 충신동 종로구선거관리위원회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한 시민이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투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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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우리 지역에서는 일곱 명의 남자들이 내게 간절한 구애작전을 펼쳤다. 그들은 자신의 화려한 이력이나 학벌 또는 애향심을 강력하게 내세워 문자를 통한 유혹 작전을 펼쳤는데, 나는 올봄 도도한 암컷처럼 목을 치켜세우고 그들 중 누구를 종으로 삼아 4년 동안 곳간을 지키게 하고 적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자칫하면 우리 곳간을 지켜야할 그 자신이 바로 곳간을 축내고 적과 내통하여 우리 살림을 거덜내고 자기 배만 불리는 예를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딱 한 명만 선택해야 한다는 안타까운 경우를 제하면, 선거철은 여성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해 볼수 있는, 행복한 계절이 아닐 수 없다.

사상 유례가 없는 민주통합당 국민경선참여가 실시되고 각 예비후보자 진영은 선거인단 모집에 혈안이 되었다. 4.11 총선은 그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민주통합당 독식체제의 호남지역 후보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당내 경선이다. 경선만 통과한다면 그날부터 4.11총선 당일까지 집에서 잠만 자고 있어도 당선은 거의 확실하다.

나머지는 민주통합당이라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표를 몰아주는 호남유권자들의 애향심에 맡기면 될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목숨 걸어 매진해야 할 것은 경선인데 이번엔 처음으로 국민 참여경선이 실시되고 보니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일이 그 무슨 일보다 가장 중요한 선거업무가 되었다. 선거인단 모집 과정의 다소 불미스런 일들이야 당선 되고 나면 거의 대부분 묻히기 마련이고 당장은 통, 반장들을 동원하는 불법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일자리가 간절한 여기 주부들 입장에서 보면 통합되기 전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치열하게 각축하던 시절이 그래도 호시절이었다. 그때는 당내 경선도 중요했지만 본선도 못지않게 중요해서 선거 막판까지 지속적인 고용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성향이 비슷한 두 정당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유권자들 마음을 잡기 위한 인력동원과 홍보활동이 선거 당일까지 얼마자 치열하게 전개되었던가.

그런데 내용이야 어찌됐든 표면적으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통합을 한 마당에 본선은 이제 별 의미가 없어졌다. 당내 경선만 마무리 되면 일당독식체제의 지역에서 본선까지는 실상 모든 경비와 인력이 감축될 것이다. 그래서 당내 경선에 주력하는 예비후보자들뿐만 아니라 거기 동원된 인력들도 마지막 선거 특수를 누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분위기다.

각 예비후보자 진영마다 사람들을 동원한 선거인단 모집에 혈안이 되었는데 거기에 가장 적합한 모집책은 아무래도 동네 통반장들이다. 통반장 자리 하나 차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오래된 얘기다. 통반장, 부녀회장들 만큼 효율적으로 선거인단모집을 수행할 직책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불법인줄 뻔히 알면서도 손쉬운 모집책으로 그들을 활용하는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급기야 광주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흥미로운 선거구로 진즉부터 관심을 모았던 동구선거구에서 사건이 터졌다. 모 예비후보자 진영 모집책으로 활동하던 작은 도서관장이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거기에 통장, 구청장, 모 예비후보자에게 수사가 확대되면서 결국 광주 동구는 무공천 지역으로 남게 되었다.

광주, 통반장은 어떻게 모집책이 됐을까

사실 우리에게도 통장이 선거인단 모집을 하러 왔었다. 본인 스스로 통장이라고 밝히기 전엔 난 통장이 누군지도 모르고 있었다.

"통장님이 직접 이렇게 다니시는 거 불법 아닙니까?"
"네, 그렇기는 한데요. 뭐, 다들 이렇게 합니다."
"통장님도 누구 특정후보 진영에서 파견되었을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제가 중립을 지키고, 특별히 개인적으로 누구를 지지해 달라 말하지는 않습니다."

통장 본인은 당 지침에 따른 선거인단을 모집하러 다니기만 할 뿐 특정후보 지지를 거론 한 적 없으므로 활동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는 '자체 해석'이었다.

"그렇지만 통장님도 분명 특정후보 진영에서 파견 나온 것은 맞지 않습니까?"

그러자 통장님은 사실 후보자 중에 먼 친척 관계의 사람이 있긴 하지만, 밝히지는 않겠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듣는 상투적인 관계설명이다.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어느 선거 때나 특정 후보 지지를 당부하며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그 해당 후보랑 자기가 원래 친한 사이라는 둥, 시골 친척이라 는 둥, 아님 동창이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관계망을 조작해 낸다. 즉흥적으로 동원된 운동원은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예전 어떤 지자체의원 선거에서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가 열심히 모 시의원 후보자를 홍보하며 길거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도 그 후보자가 자신 친구라 했다. 그 후보자는 결국 당선했는데 내 주변에만 그와 친구라는 여성들이 벌써 여럿이다. 남자고등학교를 나온 그 시의원에게 어떻게 그런 많은 여성 친구들이 형성됐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녀들은 하나같이 후보자와의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선거를 돕고 있을 뿐, 푼돈이나 벌자고 뛰어든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굳이 밝히고 싶어 하는 듯했다.

내게 끊임없이 구애 작전을 펼치던 일곱 남자들 중 한 명은 분명 올봄 화려한 금배지를 가슴에 달게 될 것이다. 과연 누가 끝까지 살아 남아 '예비후보자'라는 거추장스런 꼬리표를 떼고 '후보자' 라는 명함을 확보할지 궁금하다. 우리 지역에서 특별한 이변이 없는한, 그는 곧 '당선자'이기 때문이다.

누가 되더라도 그동안 동지를, 친구를, 종을 가장하며 공들인 비용을 만회한다고 우리 곳간을 도륙내는 일만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명의가 거래되어 또 누군가의 사람으로 유통되는 불만스런 상황을 견디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정미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총선, #주부,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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