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학교에서 청소기 12대 챙겨 놓으라 해서 청소기를 12대 청소 했습니다.
▲ 청소기 청소 학교에서 청소기 12대 챙겨 놓으라 해서 청소기를 12대 청소 했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지난해 봄, 그 학교에 취업했습니다. 정확히는 4월 5일부터 일을 했습니다. 우리 동네 초등학교입니다. 제 입장이 있어 그 학교 이름은 밝히지 못합니다. 저는 계약직이고 비정규직 시설관리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6개월 한 번씩 재계약 후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경 한 차례 재계약되었습니다. 임시직이라 교육청에서 정규직 시설관리자 발령을 내면 저는 출근을 중단해야만 합니다. 학교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생소한 부분도 많습니다.

학교를 대표하는 교장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일해야 하고요. 행정실에서, 교무실에서 지시하는 사항도 처리해야 합니다. 각 교실에서 근무하는 담임 선생님이 시키는 일도 처리해야 합니다. 제가 다니는 학교는 본관과 별관, 그리고 체육관까지 큰 건물이 세 동 있습니다. 혼자 그 넓은 지역을 관리해야 하니 일이 많을 땐 벅차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제게 주어진 일이 인쇄물 입니다. 교무실, 행정실, 교사가 가져오는 인쇄물을 인쇄해 놓아야 합니다.

학교에서 시키지는 않았지만 저는 매일 아침 조금 일찍 출근해서 운동장의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교장은 일주일 한두 번 하라 하셨는데요. 매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뒹구는 여러 가지 쓰레기가 볼썽 사나와서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치워야 속이 시원합니다. 쓰레기가 바람결에 날리는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뛰어 놀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3월 초부터 제가 다니는 학교도 주 5일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2월까지 한 주는 토요일 오후 1시까지 근무하고 한 주는 토요일 출근하지 않고 했었는데요. 3월부터는 토, 일 모두 출근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주 5일제가 되면서 조금 바뀐 상황도 있었습니다. 2월까지는 오전 9시까지 출근해서 오후 5시면 퇴근했습니다. 그러나 3월부터는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하라고 행정실에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주 5일제가 되면서 근무시간이 변경되었다고 하더군요. 근무 시간이 1시간 연장 되었지만 일당제인 제 월급엔 아무 영향이 없었습니다. 저는 한 시간 더 하면 1시간을 더 쳐주나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새학기가 되니 참 바쁩니다. 다른 학교로 발령난 교사도 있고, 새로 오시는 교사도 있었습니다. 올 1학년은 140여 명 입학 했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니 반 수도 줄어들어 교실 배분도 달라졌습니다. 빈교실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게 됩니다. 폐기처분해야 할 책걸상과 비품이 엄청 쏟아져 나왔습니다. 고장난 구형 청소기도 다 내 놓았습니다. 창고는 가득 찼고 밖에도 폐기처분할 비품으로 넘쳤습니다. 폐기물 처리 업자가 와서 다 실어 갔습니다. 새로 바뀐 교실에 부임한 담임 교사로부터 이것저것 손 좀 봐달라는 주문도 많아 졌습니다. 새학기가 되면서 일이 많아지니 몸이 피곤함을 많이 느낍니다. 저는 일용직으로 고용계약이 되어 있어서 언제 나가랄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내일 당장 나가라 할지라도 저는 오늘도 열심히 시키는 일을 해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변 주사님. 요즘 많이 힘들죠. 저번에 딸이 고등학교 입학한다는 소식 듣고 전교조 우리학교 분회 회원들이 모여서 이야기 나누다가 뜻을 모았어요. 따님 고입 축하 드리고요. 고등학교 들어가면 이것저것 들어가는 돈이 많을 거예요. 얼마 안 되지만 보태쓰세요. 부담 갖지 마시고요."

며칠 전 오후 4시경 인쇄실로 여교사 두 분이 오셨습니다. 밀린 인쇄를 하고 있었는데 들어 오시더니 대뜸 봉투 하나를 내밀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받긴 받았지만 처음엔 이유도 없이 그런 걸 받자니 마음속엔 부담이 생겼습니다.

저는 두 분이 가신 후 봉투를 열어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봉투 속엔 5만 원짜리 지폐로 16장이나 들어 있었습니다. 제 월급에 가까운 큰돈이 들어있었던 것 입니다. 이렇게 큰돈을 왜... 그속엔 돈과 함께 인쇄된 편지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편지를 읽으며 잠시 감정이 복바쳐 올랐습니다. 저에게 신경을 써 주시는 교사가 몇 분 계시는데요. 그날 인쇄실을 방문했던 두 여교사는 더욱이 저를 챙겨 주시는 분들 입니다.

알고보니 두 분은 전교조 활동을 하는 교사분들이셨습니다. 무시하지 않고 남달리 봐주시는 우리 학교 전교조 회원 분들이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입니다.

'요즘 날마다 힘든 일도 많고 심란하시지요?
그래도 용기 잃지 마시고 힘내세요.

그래서 저희가 변 기사님의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축하 살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따님의 장학금을 주면 좋겠다는 뜻이 모아져 장학금을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따님의 고등학교 생활에 힘이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변 기사님의 열심히 사시는 모습에 모두 감동하여 훌륭한 아빠를 둔 자녀에게 주는 저희들의 마음의 표현이니 너무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따님이 커서 이 사회를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지요? - OO초 전교조 분회원 일동 드림 -'

요즘 어려운 거 맞습니다. 그래서 근심 속에서 일하고 있는데 제 근심을 읽으신 전교조 분회원 도움을 주신 거 같습니다. 딸이 고등학교 입학했는데 입학금과 교복비 합쳐서 100여 만 원이 들어갔습니다. 일당 5만3000원 정도 받고 있고 한달 100여 만 원 생활비로 가져다 줍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숨통을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이번 장학금 모음에 뜻을 함께해주신 선생님들께 깊이 고개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전교조 선생님 편지 고맙습니다.
ⓒ 변창기

관련사진보기



태그:#초등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간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노동해방 사회는 불가능한가? 청소노동자도 노동귀족으로 사는 사회는 불가능한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