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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쪽지를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 그 여선생 님이 써 놓고 간 쪽지 저는 이 쪽지를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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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하청업체 다니다 정리해고 당하고 2년이 다되어 갑니다. 먹고 살려고 이런 일자리 저런 일자리 찾고 해보고 하다가 우연찮게 지인의 소개로 초등학교 시설관리 일자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힘들 땐 힘들지만 9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5시면 끝마치는 흐름이 좋았습니다. 물론 그 일자리도 정규직은 아니구요. 정규직 직원이 발령받아 올 때까지만 일하는 비정규직 일자리 입니다.

학교 일자리가 그렇더라구요. 학교에서 일하는 분들은 모두 교육청에서 발령 내더군요. 교사든 행정직이든. 제가 일하는 일자리는 시설관리직으로서 공무원 용어로 '기능직 공무원'이라 했어요. 교육청에서 기능직 공무원 10급에 해당하는 근무자를 뽑는 시험이 있었어요. 1차로 시험 치르고 합격되면 다시 면접을 보고 통과해야만 일자리가 제공 되었어요. 그렇게 최종 합격자에 한해서 각 학교로 발령을 내면 가서 일을 하게 되더군요. 그런데 몇 년전부터 교육청에서 일체 기능직 공무원 뽑는 시험을 치르지 않고 있다 합니다.

학교는 일정상 기능직이 없으면 불편을 겪게 되구요. 학교측에서 교육청에 기능직 공무원을 보내 달라고 요청을 해보지만 인원이 없으니 기다리라고만 한다네요. 그래서 급한대로 기간제 비정규직을 뽑아 쓰고 있나 봅니다. 저는 나이도 있고 다른 일자리 찾기도 쉽잖은 상태라 그 일자리라도 있는 게 다행으로 여기며 열심히 맡은바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6개월 근로계약하고 다니는데 6개월 더 일해도 된다고 해서 다시 올 4월 초까지는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지켜보면 저에게 무관심한 분도 계시지만 저를 많이 생각해 주는 분도 계셨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입니다. 방학 동안은 별로 할 일이 없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할 일이 있었습니다. 교실마다 다니며 파손된 책걸상을 찾아서 보수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나무가지 치기도 틈틈히 해야하고 화단관리도 해야 합니다. 방학 때는 운동장에 쓰레기가 안생기겠거니 생각했는데 학생들이 등교 할 때랑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주변에 중고교 학교가 많아서 밤마다 남녀 중고생들이 무리지어 놀러와 놀다 간다고 밤에 경비서는 분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도 오전엔 쓰레기 줍고 화단관리도 했고 오후엔 교실마다 다니며 책걸상 보수작업을 했습니다. 퇴근시간 다 되어 휴게실에 들어가니 상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엔 작은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설 잘 보내시고 행복하세요. 지난번 떨감 이야기 보고 맘이 좀 그랬어요. 사모님께 맛있는 단감 맛보여 주세요. 0학년 0반 담임 000 올림'

상자를 열어보니 5개씩 고무봉투에 든 단감이 다섯 줄 놓여 있었습니다.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친환경 단감이었습니다. 저는 그 쪽지를 보면서 3개월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 와 눈물이 났습니다. 선물 받으면 기쁘고 좋아야 하는데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그 선생님도 회원으로 있는 카페에 글을 한편 올렸는데 그 글을 3개월이나 된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었나 봅니다. 그 선생님은 작년 추석 때도 저에게 작은 선물을 주었었습니다.

선물로 준 단감 때문에 눈물이 난 게 아니었습니다. 그 선생님이 적어 놓은 쪽지 때문에 눈물이 난 것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참 예쁘고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뭉클해졌고 눈시울이 뜨거워 졌던 것 입니다.

카페에 올렸던 사진과 글

아내에게 사다준 단감
▲ 단감 아내에게 사다준 단감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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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디서 떫은 감 몇 개를 구해 왔어요.
그 감은 홍시가 되어야 먹을 수 있지요.

어제 일 마치고 집에 오니 아내가 떫은 감 하나를 다 깎아 먹었어요.
그리고... "감이 하두 먹고 싶어 떫은 감 깎아 먹었더니 속이 아프네."

그 말을 듣고는 남편인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가장인 저는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해서 돈을 많이 못 벌어 옵니다.
아내는 생활비 아끼려고 그 먹고 싶은 단감도 하나 사먹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머리 깎아라 10,000원을 주었습니다.

저는 좀 더 있다 머리를 깎아도 됩니다.
해서... 단감을 5,000원어치 사들고 오늘 저녁 퇴근했습니다.

아내는 또 떫은 감을 깎아 먹고 있었습니다.

감 담긴 봉지를 내밀었습니다.
아내는 그 자리서 2개나 깎아 먹었습니다.
너무 먹고 싶었다면서...

얼마나 단감이 먹고 싶었으면 어제 오늘
그 떫은 감을 속이 아픈데도 깎아 먹었을까요?
제 마음이 다시 아프네요.

당신에게 할 말이 없네요.
미안하다는 말 밖엔...

무능한 남편...
돈 못버는 남편...
따라 사느라 고생 많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태그:#비정규직,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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