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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에 고 김근태 의장을 조문했다. 몇몇 지인과 함께 슬픔의 예를 취한 뒤, 식사를 하고 조문 온 인사들을 만나는 기쁨이 있었다. '애중희(哀中喜)'라고나 할까? 그 중엔 몇 십 년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대사에 공을 세운 비중 있는 인사의 죽음이라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았다.

그런데 정말 이 사람은 의외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그와 고인이 된 김근태 형과의 친분 관계에 대해 잘 모른다. 무슨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그분도 한 때 국회의원을 지냈으니 같은 상임위 활동을 하면서 알고 지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는 내가 학생시절 유명세를 독차지 했던 영화배우 신성일씨이다.

신성일은 은빛 머리를 하고 있었다. 정장은 아니었지만 검은 쉐터에 검정 외투, 그리고 목도리까지 검은색이었다. 노 배우의 조문 차람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는 시종 침통한 표정을 지어 조문객으로서의 예를 잃지 않았다.
▲ 고 김근태 형을 조문하러 온 노 배우 신성일 신성일은 은빛 머리를 하고 있었다. 정장은 아니었지만 검은 쉐터에 검정 외투, 그리고 목도리까지 검은색이었다. 노 배우의 조문 차람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는 시종 침통한 표정을 지어 조문객으로서의 예를 잃지 않았다.
ⓒ 이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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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보수당의 줄기인 신한국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걸로 알고 있다. 아마 대구의 한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지냈었다. 그때의 이름이 강신성일이었다고 기억된다. 정확히는 몰라도 그의 나이도 70대 중반은 넉넉히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장례식장을 찾은 그는 유명 배우의 품격을 잃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가 참 어려운 걸음을 했다고 생각했다. 김근태 형의 장례식장은 분명 그가 놀던 판과는 상이한 곳이다. 나는 그가 장례식장에 입장하고부터 돌아갈 때까지 줄곧 지켜 보았다. 슬픔 기색이 역력한 가운데 누구 하나 그에게 말을 거는 이들도 없었다. 본인은 미처 생각지 못했을지 모르나 '꿔다놓은 보릿자루'라는 속담이 떠오를 정도였다.

신성일은 은빛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 빛에서 노 연예인의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정장은 아니었지만 조문 온 사람으로서의 예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검은 쉐터에 검정 외투 거기에 검은색 목도리까지의 차림을 볼 때, 상가 조문을 많이 의식한 듯한 외양이었다. 홍조를 조금 띤 안경을 쓰지 않았다면 그의 젊은 시절을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연예인'하면 체제 순응적인 사람들로 인식해 왔다.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 때는 정말 그랬다. 인기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의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나서는 연예인들 중에도 자기 색깔을 내며 할 소리를 참지 않는 이들도 있다. 젊은 연예인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몇몇 발견된다. 언론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개념 연예인'이라는 딱지를 붙여 불러주고 있다.

노 배우 신성일의 김근태 형 조문을 두고 그의 생각의 변화를 읽는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의 조문은 순수하게 조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조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은 생각하고 있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그가 했기 때문이다. 나는 노 연예인들 중에도 소위 '개념'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것은 무조건 기존 질서와 국가 체제에 반대하라는 말이 아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져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문제엔 자기 소리를 내라는 얘기이다. 어느 영역 못지않게 연예계의 민주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인기는 즉자적 민중으로부터 나오는 인기가 아니라 대자적 민중으로부터 나올 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신성일 아니 강신성일님의 김근태 형 조문을 보면서 생각의 나래를 펴보았다. 한 편의 궁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조문이 나의 눈에는 의외로 보였다는 것, 그리고 그가 어려운 걸음을 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연예계도 생각과 행동의 폭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이 사회의 민주화에서 예외 영역은 하나도 없다.


태그:#신성일, #김근태 조문, #개념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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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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