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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포구로 내려가는 길엔 높이 3미터의 철제펜스가 둘러쳐 있다. 해군은 저 펜스 안에서 온갖 절차를 무시해가며 불법 탈법 공사를 강행하다 이번엔 사업비 96.3% 삭감 당하는 유례없는 수모를 당했다.
 강정포구로 내려가는 길엔 높이 3미터의 철제펜스가 둘러쳐 있다. 해군은 저 펜스 안에서 온갖 절차를 무시해가며 불법 탈법 공사를 강행하다 이번엔 사업비 96.3% 삭감 당하는 유례없는 수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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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은 구럼비 바위를 폭파해 일직선 도로를 깔고 있다. 이 도로는 강정포구 쪽의 선착장으로 보이는 시설물과 이어진다. 주민들의 항의로 공사 자제 반입이 육상에서는 힘들어지자 해상을 통해 반입하겠다는 해군의 꼼수가 엿보이는 현장이다.
 해군은 구럼비 바위를 폭파해 일직선 도로를 깔고 있다. 이 도로는 강정포구 쪽의 선착장으로 보이는 시설물과 이어진다. 주민들의 항의로 공사 자제 반입이 육상에서는 힘들어지자 해상을 통해 반입하겠다는 해군의 꼼수가 엿보이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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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강정마을은 어느 해 세밑보다 활기가 넘쳤습니다. 국회가 2012년 제주해군기지 예산 1327억 원 중 1278억 원을 삭감했기 때문입니다. 해군이 신청한 예산의 96.3%를 삭감한 것입니다.

그나마 반영된 49억 원은 설계비와 보상비로 공사비는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으니 사실상 '전액삭감'입니다. 주민들은 그토록 바라던 '해군기지 전면백지화'로 가기 위한 첫 단추를 뀄다고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중덕해안 구럼비 바위로 내려가는 길은 여전히 높이 3m 철제 펜스로 막혀 있습니다. 해군은 그 펜스 안에서 크고 작은 공사를 쉼 없이 하고 있습니다. 구럼비 바위 일부를 폭파해 강정포구 쪽으로 가는 직선 도로를 놓았습니다. 그 직선 도로 끝엔 접안시설로 보이는 구조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해군이 다른 사업도 아닌 국책안보사업의 예산 96.3%가 삭감당하는 수치를 당하고도 공사를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돈'이 있기 때문입니다. 2011년 사업비로 책정됐다가 이월된 예산 약 1000억 원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죠.

강정마을 주민들이 2012 해맞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를 하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2012 해맞이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길놀이를 하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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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바다에 지는 해. 2011년 강정마을 주민들의 눈물과 웃음을 모두 지켜본 저 해는 2012년 다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뜰 것이다.
 강정바다에 지는 해. 2011년 강정마을 주민들의 눈물과 웃음을 모두 지켜본 저 해는 2012년 다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뜰 것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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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해군은 이렇게 느긋한 계산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닌 듯합니다. 왜냐면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당은 2011년 해군기지 사업비 자체가 국회 예산부대조건을 어겼다며 사업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고, 심지어 국회 예결위는 소위원회까지 만들어 '사업검증'을 권고했기 때문입니다.

해군은 이 '검증'이 강제사항이 아니라고 '여유'를 부리다가 이번에 혹독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여야 등 국회는 항만설계 검증 등 권고를 무시한 해군에게 2012년 제주해군기지 사업비 사실상 전액삭감이라는 강한 응징을 했습니다.

아울러 마을주민들과 전국 시민사회단체들은 '이월금 즉각 환수와 해군기지 사업 전면백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통합당 지도부 선거에 나선 일부 후보자들 역시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명분과 근거를 상실한 제주해군기지 사업에 대한 전면적 검토와 백지화를 요구하는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요구는 드세질 수밖에 없습니다.

해군이 이런 요구를 무마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사업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해군은 제주도와의 검증을 위한 사전협의에서 "해군기지 항만 설계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한 이후 그 어떤 검증절차에도 자신있게 나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도, 시간도 심지어 믿었던 여당도 해군의 편이 아님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끌려가 징역 살고, 벌금내고, 고발당한 이는 주민들이지만 초조한 쪽은 주민들이 아니라 해군 측이 되고 있는 형국입니다.

노래에 맞춰 '강정막춤'을 선보이는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
 노래에 맞춰 '강정막춤'을 선보이는 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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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균 강정마을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여름 강정에서 살다시피 했던 여균동 감독(왼쪽에서 세번째) 등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지난 여름 강정에서 살다시피 했던 여균동 감독(왼쪽에서 세번째) 등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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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을 지키는 다국적 연합군. 강정에 상주하는 뱅자맹 모네(맨 오른쪽)와 그의 세네갈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강정을 지키는 다국적 연합군. 강정에 상주하는 뱅자맹 모네(맨 오른쪽)와 그의 세네갈 친구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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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만약 우리 주장에 1%라도 거짓과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면 어떻게 5년 세월을 버틸 수 있었겠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주민들은 "질긴 놈이 이긴다, 세계평화는 강정에서 얼쑤"하며 날마다 노래 부르듯 구호를 외칩니다.

지난 12월 31일 오후 3시부터 열린 '강정마을 2011년 해넘이와 2012년 해맞이 축제'는 질긴 견딤이 잉태한 낙관을 서로 확인하는 자리였습니다. 특히 이날 축제에는 여균동 감독과 정우철 감독 등 지난 여름을 함께 강정에서 났던 이들도 간만에 찾아와 주민들을 비롯한 평화활동가들과 정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삶은 돼지로 국물을 낸 떡국을 서로 나누고, 잔 가득 채우는 막걸리에 정이 넘칩니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모두가 백댄서가 되어 이른바 '강정막춤'을 선보입니다. 모두 바보처럼 웃습니다. 국책사업 96.3% 삭감이라는 무시무시한 사고를 이끌어낸 이들이 늘 그랬듯 아무 생각 없는 얼굴을 하고선 서로 보듬으며 새해 덕담을 건네느라 분주합니다.

다시 내일 아침부터 강정마을에 비상 사이렌이 울릴지 모릅니다. 주민들은 또 10명, 20명 잡혀갈지 모릅니다. 신부님들은 또 "차라리 우리를 가두라"며 억센 어깨들 앞에 나설 것이구요. 평화활동가들은 비명보다 깊은 한숨을 내뱉을 사이도 없이 경찰차에 실려 가겠지요. 그 모든 쓸쓸하고 잔인한 풍경을 우린 또 육지 저 멀리서 안타깝게 지켜보다 분한 눈물을 삼킬 테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마을 주민 누구 한 분 주눅 들어 하지 않습니다. 강정에 살고 있는 평화활동가 누구 한 명 후회하지 않습니다. 비록 육지에 살지만 강정을 사랑하는 이들이 하루가 멀게 늘어갑니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날마다 응원활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강정평화를 지키는 다국적 연합군'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2012년 1월 1일 00:00에 맞춰 '해군기지 결사반대' 구호에 불을 붙인 뒤 서로 보듬어주며 새해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2012년 1월 1일 00:00에 맞춰 '해군기지 결사반대' 구호에 불을 붙인 뒤 서로 보듬어주며 새해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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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행사가 끝나는데도 사람들이 돌아가지 않자 강정마을 밴드인 '신짜꽃밴(신나고 짜릿한 꽃밴드)'이 즉석 공연을 하고 있다.
 준비된 행사가 끝나는데도 사람들이 돌아가지 않자 강정마을 밴드인 '신짜꽃밴(신나고 짜릿한 꽃밴드)'이 즉석 공연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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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과 평화활동가들이 건네준 막걸리로 얼굴이 불콰해진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주민들에게 얘기했습니다. 해군기지 백지화 싸움, 이제 9부 능선 넘었다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주민 200여 명이 전과자가 됐어요. 우리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도둑질을 했습니까. 사실상 사업비를 전액삭감 당했지만 해군은 또 공사를 강행하겠지요. 불법공사인 만큼 우리는 또 막을 수밖에 없고, 그럼 또 끌려가겠지요. 그러나 결국 우리 주민들이 이겨요, 평화가 이겨요. 이제껏 그래왔으니까요."

강정포구의 갈매기떼. 어떤 갈매기는 날고 있고, 어떤 갈매기는 졸고 있고, 어떤 갈매기는 물질을 하고 있다. 이처럼 강정마을도 많은 이들이 각자 선 자리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강정포구의 갈매기떼. 어떤 갈매기는 날고 있고, 어떤 갈매기는 졸고 있고, 어떤 갈매기는 물질을 하고 있다. 이처럼 강정마을도 많은 이들이 각자 선 자리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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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제주도, #일출,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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