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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지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인권위가 한국사회의 인권신장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인권·학술단체들은 지난 18~19일 서강대에서 인권위 10주년 대토론회를 개최했고, 여기서 논의된 내용을 모았습니다. 인권은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인권위 10년의 평가가 우리 사회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고 또다른 10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2009년 7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사퇴는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에 대한 정치적 탄압 결과"라고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회원들이 2009년 7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사퇴는 이명박 정권의 인권위에 대한 정치적 탄압 결과"라고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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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국제사회에 자랑거리로 자리 잡으며 국가 브랜드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11월 25일로 10돌을 맞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출범 10주년이 되었지만 경축 분위기는 영 아니다. 역사의 순리적 발전 과정을 밟았다면 지금쯤 응당 꽤 성숙한 모습을 가지고 탄탄한 국가기관으로 자리 잡아야 할 인권위에 대해 국민들의 우려가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10주년 기념일이 더 서글프게 다가온다.

주지하다시피 '21세기의 화두는 인권'이란 말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2010년 말부터 시작된 중동지역의 민주화 혁명은 튀니지, 이집트를 넘어 결국 42년간 독재정치를 일삼아온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으며, 바레인, 예멘과 시리아 등 중동지역 전역이 시민혁명을 겪으며 민주화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중심 화두는 역시 '인권'이다.

서글픈 인권위 10주년 기념일

국제사회도 변했다. 유엔은 이른바 '보호책임'의 명분을 내세우며 인권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주권을 넘나드는 개입을 해왔으며, 2006년 인권이사회의 등장과 함께 기존의 평화·안보 및 발전의 문제에 더하여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 의제(agenda)의 중심이 됐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인권중심적 체제 변화는 각국으로 확산되어 120여 국가에서 국가인권기구를 설립하였으며, 국내의 인권문제는 이제 풀뿌리 민주주의의 온상인 지역사회로 확산되어 인권조례가 만들어지고 인권도시 지정이 확산되는 추세이다.

우리나라도 세계사적 흐름에 냉담하지는 않았다. 2001년 11월 창립 당시부터 고통스런 과정을 겪어왔지만, 인권위는 우리의 지난 역사의 굴곡 속에서 피어난 '민주주의의 꽃'과 같은 제도였다. 인권위는 그 동안(최소한 이명박 정부 이전까지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견인차로서, 인권 관련 법령·정책 등에 대한 개선을 권고하고, 각종 인권 침해와 차별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며,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인권에 대한 의식과 문화를 확산시키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인권위는 한동안 국제사회에서 모범적인 사례로 명성을 날렸으며, 천여 명이 넘는 외국 인사들이 인권위를 벤치마킹하고자 몰려들었다. 요새 말하는 국가 브랜드, 국가 이미지 상승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인권위 위상은 어떠한가? 인권위의 고통스런 태동과 이후의 발전과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 정권은 인권위의 독립성을 지키기는커녕 인권위 조직을 축소시켰고, 인권위는 '알아서' 정권의 지향점에 맞지 않는 정책 사안은 시작부터 막아버렸다. 또 인권 본연의 직무에 충실한 직원은 해고하거나 징계를 하며 정권의 충실한 '알리바이' 기구로 전락해 가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인권위의 탄생 배경과 성격에 대한 절대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밖에 없으며, '인권의 견제'를 곧 '반정부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권위에 대한 정권 차원의 견제는 새삼 새로운 게 아니다. 인권위가 태동하던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인권위는 정권의 '입맛에 썩 맞지 않는' 그런 기관이었다. 문제는 입맛에 맞지 않는 그 국가기관에 대한 통치자의 태도이다. 통치자의 인권위에 대한 철학에 따라 인권위는 바로 서기도 하였고,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처지가 되기도 하였으며, '정권의 시녀'처럼 비굴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강재경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위원장 표창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강재경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위원장 표창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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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의 변화에 따른 인권위 존재감을 시기별로 나누어 진단해 보면, 국민의 정부 집권 기간은 태동기였고, 참여정부 집권기는 발전기였으며, 현재의 이명박 정부 집권기는 침체기라고 할 수 있다. 각 정권별로 인권위 독립성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예를 들어 본다.

먼저, 국민의 정부 하에서 인권위는 태동을 위해 몸부림치는 시기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국민의 정부에서 추진한 인권위법 제정 당시부터 인권위의 소속과 그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치열하였다. 그 논란의 주요 골격은 인권위를 특수법인으로 만들어 법무부 산하에 두려는 법무부의 입장과 국가기관으로 만들어 독립성을 강화하려는 인권시민단체의 대립이었다. 결국 논란 끝에 인권시민단체의 뜻대로 되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인권위였기 때문에 출범한 이후에도 독립성에 대한 정부의 견제는 만만치가 않았다.

인권위, 이렇게 정권과 불화했습니다

인권위의 독립성을 둘러싼 국민의 정부의 견제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02년 11월 인권위 위원장의 해외출장에 대해 '대통령의 사전 결재'를 득하지 않은 이유로 청와대가 인권위 지도부를 강력 경고한 사건이다. 그런데 이러한 청와대의 경고에 대해 인권위 측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며 "인권위원회는 '권한에 속하는 업무를 독립해 수행하는 기관'이며 청와대가 위반 근거로 내세운 '공무국외여행규정'은 행정부 소속 국가공무원의 국외출장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인권위원장이 이 규정의 적용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와 행정자치부가 반발하며 다시 별도의 보도자료를 내어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해 비판하였으며, 정치권도 이에 가세하여 인권위를 성토하였다.

이러한 갈등에 대해 당시 사회 분위기는 국민의 정부 말기에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을 우려한 정권의 과잉반응이라는 평가와 인권위 위원장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에 대해 '오만방자'하다는 평가로 양분되었다. 정부와 국회의 날선 비판과 아울러 보수언론의 부추김에 편승하여 청와대와 인권위의 갈등이 달아오를 듯하였지만, 양측의 추가 대응 자제로 이 사건은 하루 만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양측의 시시비비를 떠나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서 인권위의 존재와 그 독립성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킨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감히' 신생 국가기관이 대통령의 권한에 이의를 제기하고 보도자료를 통해 항의한 사례는 인권위 10년 역사에 전무후무하다.

둘째, 인권위는 노무현 정권의 참여정부 하에서 비약적인 발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참여정부 하에서 인권위는 인권위 역사에 남을만한 정책(법령 개선 포함) 권고를 여러 차례 하였으며, 독립성 차원에서도 상당한 위상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크게 대변하는 것 중 하나가 참여정부 출범 초기에 이루어졌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의견표명'(2003. 3. 26)과 이에 대한 대통령의 대응이었다.

이라크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인권위의 의견표명은 당시 한국사회 정치계 및 언론계는 물론 사회전체에 폭발적인 대응 반응을 야기하였다. 특히 파병 동의안 비준을 앞둔 국회의 반응은 냉랭함을 넘어 거의 '성토' 분위기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인권위의 의견표명은 당시 국내 사회의 분위기에 비추어 볼 때, 큰 도전이었음과 동시에 역설적으로는 노무현 정부에서 인권위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국정의 일부를 책임지는 국가기관인 인권위 스스로가 대통령의 정책에 반하는 의견을 표명한 것은 대통령이 임명하였던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각오해야 할 정도의 사안이었다. 그런데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인권위에 대한 인식은 남달랐다. 의견표명 직후 노무현 대통령은 "인권위는 그런 일을 하라고 만든 것"라고 정리를 함으로써, 인권위는 국가기관이면서도 정부 정책에 대해 인권의 관점에서 제한 없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견제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이명박 정부 하에서 인권위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으며 존재의 이유를 잃어가고 있다. '잘 나가던' '인권위호' 위기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부터 미리 그 서곡이 시작되었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정부 구조 개편 작업을 진행하면서 인권위가 헌법기구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대통령 직속기구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에 대하여 국내 인권활동가들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노숙농성을 하는 등 강력하게 저항하였을 뿐 아니라, 유엔을 비롯하여 국제인권조정기구와 아태지역인권기구포럼 등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인수위는 인권위의 대통령 직속기구화 시도를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휴식 기간을 가진 것이었을 뿐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무력화 시도는 계속되었는데, 결국 2009년 4월에 인권위 조직을 21.2% 감축하는 '보복성' 조치를 취하였다.

MB가 새겨들어야 할 말...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2010년 11월 9일 오전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들의 호된 질책을 받은 뒤 목을 축이고 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2010년 11월 9일 오전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들의 호된 질책을 받은 뒤 목을 축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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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으로, 인권위의 독립성에 더욱 치명적인 타격을 준 것은 현병철씨가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된 이후였다. 2009년 7월 정권의 인권위 탄압 조치에 대해 "정권은 짧고 인권은 영원하다"는 말과 함께 안경환 위원장이 퇴임하였다. 후임 인권위원장으로 취임한 현병철 위원장은 인권에 대한 전문성도 부족하고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적 위상에 대해서도 문외한이라는 점을 여러 차례 걸쳐 스스로 밝혔다.

예를 들면 그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소신"이라며 인권위의 기존  결정을 부인하고, 국회에서 인권위 독립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하였으며, 용산참사 관련 전원위원회에서는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며 날치기로 폐회한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상에서 소개된 일부 사례로 모든 것이 설명될 수는 없겠지만, 역대 통치자의 인권위 독립성에 대한 태도와 입장의 일면을 진단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의 정부는 인권위 창립을 주도한 정권으로서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면서 태동기의 인권위 독립성은 그런대로 유지되었다. 진보정권 집권 2기인 참여정부 시절 동안, 인권위의 독립성은 상대적으로 볼 때 역대 정권 중에서 최상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인권위 독립성은 철저히 부정되었으며, 인권위 운영 자체도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되었다. 어렵게 시작한 한국형 국가인권기구가 이처럼 '총체적 난국'에 빠진 원인은 인권위 외부에 있는 통치권자의 태도가 가장 핵심이었다.

물론 독립성 위기를 자초한 인권위 내부의 요인들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인권위원장 및 인권위원들의 인권위 독립성에 대한 무지와 인권전문성 부족, 인권위 일부 직원들의 인권감수성 및 인권전문성 부족, 인권위 지도부의 부당한 인사권 행사와 '겁먹은' 직원들의 줄서기,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한 인권위의 의도적 외면, 그리고 이러한 인권위의 실망스런 행태에 대한 시민사회의 외면 등도 인권위 독립성의 위기를 초래한 핵심 요인으로 짚을 만하다.

다른 할 일도 많고 그래서 욕먹을 일도 많은 정부로서는 우선 말 잘 듣는 인권위가 편하고 좋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하는 일에 제발 '딴지' 걸지 말고 정권의 입맛에 맞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주는 인권위의 모습이 고마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인권위는 말 그대로 '정권의 시녀'이자 알리바이 기구일 뿐이다. 

인권위는 태생적으로 국가권력의 자기성찰적 기구로 태어났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국가인권기구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반기는 정권은 거의 없다. 아니 전무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오죽하면 뉴질랜드 인권위원회는 2000년 인권보고서 첫머리에 "이 보고서는 정부가 원하지 않는 것이다"고 노골적으로 표기해서 제출했을까? 하지만 정부의 입맛에 맞는 일만 하는 인권위야말로 정말 '국민이 원하지 않는' 인권위일 것이다.

2003년 인권위가 정부의 이라크파병 정책에 반대했을 때, 한순간 엄청 곤혹스러웠을 당시 대통령은 "인권위는 바로 이런 일을 하라고 만든 것"이라고 정리했다. 인권위가 반대했지만 결국 이라크 파병은 실행되었다. 그때의 정부인들 '해외파병'과 같은 민감한 국가정책에 '딴지' 거는 인권위가 맘에 들었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 된다. 인권위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책에 대해 '인권적인'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국가기구이다. 그 인권적인 원칙이 설령 정부의 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정부는 인권위의 입장을 존중해야 하고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독립성은 인권위를 지탱하는 최고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그 독립성이 보장될 때 인권위는 다시 건강하게 부활할 수 있고 비상할 수도 있다.

늦었지만 많이 늦지 않았다. 인권위 10주년 기념일이 우리 모두의 자성을 담아 '재도약'을 다짐하는 엄숙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를 쓴 정영선 기자는 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태그:#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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