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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설립된 지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인권위가 한국사회의 인권신장에 기여한 바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이에 인권·학술단체들은 지난 18~19일 서강대에서 인권위 10주년 대토론회를 개최했고, 여기서 논의된 내용을 모았습니다. 인권은 한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입니다. 인권위 10년의 평가가 우리 사회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고 또다른 10년을 준비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말]
오는 25일은 2001년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설립 10주년이다. 출범할 당시 인권위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에 '인권 보호·신장을 위한 제도적 틀' 마련이라는 뜻 깊은 이정표를 세웠다. 이는 "'인권전담기구'를 통해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앞당기는 견인차로서, 인권 관련 법령·정책 등에 대한 개선을 권고하고, 각종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며, 교육과 홍보를 통해 인권에 대한 의식과 문화를 확산시키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기구 탄생"이라고 그 설립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인권위는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인권 감시자이자 인권 옹호자로서 비교적 충실히 역할과 책임을 해왔고 '몇 년 전만 해도' 국제사회에서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과연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현재, 인권위는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위한 국민들의 오랜 열망, 수년간에 걸친 인권단체의 노력, 그리고 정부의 의지 및 국제사회의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대한 관심이 함께 어우러져"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인권 감시자이자 인권 옹호자로서의 그 역할과 책임을 흔들림 없이 다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의 인권위 흔들기

강재경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위원장 표창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강재경 인천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이 2010년 12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세계인권선언 62주년 기념식'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며 위원장 표창 수상을 거부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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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개탄스러운 현실은 이명박 대통령이 앞장서서 취임 이전부터 줄기차게 인권위의 역할과 위상을 훼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되뇌며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삼권분립의 미명하에 인권위를 대통령직속기구로 하는 정부조직개편을 시도하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한 바 있다. 이후 이명박 정부는 행정안전부를 통해 21%에 이르는 조직축소를 단행, 인권위 역할과 기능을 마비시키기에 이른다. 결정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인권 문외한이었던 현병철을 위원장 자리에 앉히고서는 '인권'이 아닌 정권의 '안위'만을 고려하는 정부기관의 '일개 장'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이처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등 보수집권세력은 끊임없이 인권위의 역할과 기능을 훼손해 현재의 지경까지 이르게 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인권위는 '표현의 자유 후퇴', '비정규직 문제', '뉴타운개발 등 무분별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강제철거와 주거문제', '빈곤문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및 파업', '무상급식·반값등록금 등 교육복지 문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건설로 인한 평화적 생존권 침해' 등 현안이 되고 있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아예 외면하거나 손을 놓고 있거나, 시의적절한 대처와 개입을 못하고 있다. 인권위는 더 이상은 우리사회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인권위의 4대 기능 중 하나인 국내·외 협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못해, 명실공히 인권위와 인권NGO와의 거버넌스(협치)가 붕괴되었다고 하겠다.

반면에 인권위는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충실히 따르기 위해 '북한인권침해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거나 '북한인권' 문제만을 다루는 '대북인권단체'와의 협력만을 확대하는 듯하다. 다만, 인권위는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무한반복되고 있는 경찰 및 군대 가혹·폭력행위 문제나 장애차별 문제의 개입에서처럼 일부 영역에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해결보다는 적당히 발 담그는 '알리바이 인권기구'의 활동에 자족하는 듯하다.

이같은 인권위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그 책임을 온전하게 보수집권세력에만 지울 수 있을까? 지금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잘 운영되던 인권위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갑자기 그 역할과 기능이 위축되고 급기야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것일까?

인권위원의 구성과 문제점

인권위 법제 가운데 가장 미흡한 부분은 바로 인권위원 인선에 관한 것이다. 현행 법제에서는 인권위원장 및 인권위원의 선임에 관한 어떤 실체적 자격기준도 제시되어 있지 않고, 또 절차에서 어떤 투명한 검증과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인권위의 인적 구성이 인권위의 독립성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요소라고 할 때, 이는 매우 심각한 결함이다. 인권위의 독립성은 단지 고립과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적 대표성과 책임성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연결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위 구성의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국민들의 직접선출일 것이다.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직무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이 인권위원을 선출 또는 지명해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제5조 제1항에서 위원회의 구성은 "위원장 1인과 3인의 상임위원을 포함한 11인의 인권위원으로" 하고, 위원의 자격과 임명방법에 대해서는 제2항에서 "위원은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 중에서 국회가 선출하는 4인(상임위원 2인을 포함한다),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제3항), "위원 중 4인 이상은 여성으로 임명한다"고 규정하여 위원장을 포함한 11인의 위원 중 여성이 4인 이상이 임명되도록 하고 있다(제5항).

인권위 설립부터 2011년 11월 18일 현재까지 총 45명의 인권위원이 임명되어 활동했거나 활동 중에 있다. 이들 중 판사, 검사, 변호사, 법대 교수 출신의 법률전문가가 27명, 여성위원은 15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여성단체 등 NGO 출신, 언론인, 종교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5명의 위원장 모두가 법조인 출신이고,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반면, 12명 상임위원 중 법조인 출신은 3명에 불과하고, 여성은 7명으로 상당히 높은 구성비를 차지한다. 비상임위원 28명 중 법조인 출신은 19명이고, 종교인이 5명, 그 나머지를 여성단체 등 NGO 출신 2명, 기타 정치학교수, 복지재단 이사장 등이 차지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촉한 전문·자문·상담위원들이 지난 2010년 11월 15일 오전 국가인권위 사무실에서 '61인 동반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반인권적 결정을 반복해왔다"며 현병철 위원장 사퇴와 청문회 등 인사시스템 도입 등을 촉구한 뒤 사퇴서를 제출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촉한 전문·자문·상담위원들이 지난 2010년 11월 15일 오전 국가인권위 사무실에서 '61인 동반사퇴 기자회견'을 열고, "현병철 인권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며 반인권적 결정을 반복해왔다"며 현병철 위원장 사퇴와 청문회 등 인사시스템 도입 등을 촉구한 뒤 사퇴서를 제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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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총 45명의 인권위원 중 법률전문가가 60%를 차지하고 있어, 파리원칙 등 국가인권기구 설립에 관한 국제규범에 따른 다양성과 다원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다. 여성위원도 33%에 불과해 위원회법 제5조 제5항의 "위원 중 4명 이상은 여성으로 임명한다"라는 규정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에 의한 인권위원 지명·임명의 경우 법률전문가에 치우쳐 있고 여성위원 비율도 낮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대법원에 의한 인권위원의 경우 11명 모두가 법률전문가로 지명됐다. 이는 국민으로부터 선출 받지 않은 권력인 대법원장이 인권위원 구성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무시하고 '법률전문가=인권전문가'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인사를 행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한된 구성으로는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진정한 대표성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경우와 달리, 국회에 의한 인권위원 선출은 여성, NGO, 언론인 출신 등 비교적 다양성과 다원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총 15명이 상임위원과 비상임위원 중 법률전문가는 6명에 불과하고 여성위원이 8명으로 반이상을 차지한다. 이는 국회 의석배분에 의해 여야 추천에 따라 선출되므로 그 과정에서 논의와 합의에 통해 후보검증이 가능하고,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국회의원에 의해 다시 선출되기 때문에 대표와 책임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충실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후 인권위원의 구성에 대한 법제도 개선에서도 대법원장의 지명권을 배제하고 민주적 통제가 가능한 국회를 통한 선출권을 확대·강화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칙과 인권위원 구성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확보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이다.

이와 같이, 현행 인권위법상의 인권위원의 추천·임명절차는 ▲ 지명/선출권을 가진 각 부의 내부절차의 부재 ▲ 인권위원의 인권전문성과 인권지향성에 대한 검증장치의 부재 ▲ 인권위원의 다원성 부재(법조계 과대대표, 장애인 등 인권소수자 과소대표) ▲ 시민사회와의 협의 과정 부재 ▲ 여대야소 정치지형에서 정부여당의 과대대표성(현재의 정치지형으로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사실상 7명까지 선출·지명·임명이 가능) 등의 이유로 비민주적이며 반인권적 인권위원의 추천·임명을 통제할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인권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국가인권기구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인사청문회의 도입이다. 현행 국회법 및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각각 임명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국무위원,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국가정보원장, 국세청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또는 합동참모의장의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제도화하고 있다. 이들 인사청문 실시 대상에 인권위원을 포함시킴으로써 인권위 업무수행을 위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사람인지를 검증해 인권위원 임명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둘째, 인권위원 후보추천위원회의 구성이다. 대법원추천자문위원회(대법원 내규), 대법관추천위원회(여상규 의원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과 같이 후보추천위원회 제도를 도입해 추천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추천권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추천된 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인권위원의 공개적이고 투명한 인선을 위해 가장 적합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국회 선출 몫을 확대하는 것이다. 인권위원의 민주적 대표성과 다원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대법원장 지명을 폐지 또는 축소하고 국회 선출 몫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들이 선택한 정치적 지형이 인권위 운영에 반영될 수 있고, 정부여당의 이해관계가 과대대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인권위의 활동이 주로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또는 구금·보호시설의 업무 수행과 관련하여 인권을 침해당한 경우 이를 조사하고 구제하고, 인권 관련 법령·정책 관행의 조사·연구 및 개선의 권고 또는 의견을 표명하는 등 행정부를 비판·견제하고 대립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회를 중심으로 한 인권위 구성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사람보다는 제도가 더 중요하다

지난 2월 28일 강인영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인권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 조사관은 인권위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동조한 인권위 직원 14명이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2월 28일 강인영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이 인권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 조사관은 인권위가 노조 활동을 이유로 계약 연장을 거부했다고 주장했으며 이에 동조한 인권위 직원 14명이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강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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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설립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사람보다는 제도가 더 중요하다', '완전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권력자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거나 반인권적이고 부적격한 인권문외한에 의해 역할과 기능이 훼손되지 않고,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인권감시자이자 인권옹호자로서 책무를 다하도록 인권위 설립 당시에서부터 잉태됐던 인권위법의 한계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끊임없는 법제도 개선운동이 요구된다.

더불어, 인권위가 맞닥뜨리고 있는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대한 투쟁과 내부역량을 함께 키워가야 한다. 이를 위해 법적·제도적 미비점의 보완에 앞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이 바로 우리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차별받고 억압당하고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을 증진하고 보호하고자 하는 인권위의 인권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들과 내부 구성원 모두가 '인권지킴이'로서 입법부·사법부·행정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독립된 국가인권기구라는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인권위 독립성만은 지키겠다고 하는, 그동안 인권위의 활동을 계승·발전시키고자 하는 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과 구성원들의 일치된 의사와 확고한 신념과 의지 그리고 실천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현병철 위원장과 인권위 체제가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인권감시자이자 인권옹호자로서의 그 역할과 책임을 흔들림 없이 다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품위유지'와 '집단행위'를 이유로 직원들에 대한 징계처분을 했던 인권위의 최근 행태를 보면 더 이상의 바람이나 기대도 의미가 없어졌다고 할 것이다.


태그:#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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