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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나
                                 사하는
                        할배할매
                           살랑살향기바람속
                  꿈의언덕동피으로

통영 중앙시장 앞.
지나가는 아저씨 보고 동피랑마을 가는 길을 묻는데,
어찌나 친절하게 안내하던지,
지금 있는 자리에서 우측 길로 이러저러하게 가라고 잔뜩 설명을 하고서,
조금 더 걷더라도 큰길인 데다 입구까지 보이는 좌측 길을 다시 알려주었고,
저는 그 정성에 맞갖게 좌측 길로 찾아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동피랑 아이'가 사는 동피랑 벽화마을을 만났습니다.
위의 글은 동피랑마을의 벽화 중 하나인 것을 옮겨 적은 것입니다.
소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게 뭘까요?
▲ <동피랑 아이> 표지 소녀가 손에 들고 있는 게 뭘까요?
ⓒ 리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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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 아이>는 이담원 작가님의 그림책입니다.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한 통영을 구석구석 살펴보다가 동피랑마을을 만나게 되었고, 우연히 통영의 자개공예 작가를 만나면서 그림 이야기를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수채화 바탕의 잔잔한 그림책입니다. 이야기에 긴장감이나 탄탄함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자개와 통영항 주변, 동피랑마을을 이곳저곳에 묘사하면서 소녀아이의 사랑과 꿈을 그려나갔습니다. 그림책이니 이야기보다는 그림을 눈여겨 볼 일입니다.

벽화와 카페 창 그림이 자연스레 카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동피랑마을 내 카페 벽화와 카페 창 그림이 자연스레 카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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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도 배경으로 나오는 동피랑마을 내 카페입니다. 개인주택을 약간 개조한 것입니다. 그림책에서처럼 진짜 곱슬머리 할머니가 카페 안에 계셨습니다. 손님을 기다리기보다는 거실 소파에 앉아 휴식을 취하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좁은 길목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것 때문에 혹 피곤하신 것은 아닌지…. 저기 맨 마지막 메뉴 빼더기죽은 어떤 맛일까요?

충무깁밥 1인분 상차림. '충무'는 '통영'의 예전 이름이다.
▲ 충무김밥 충무깁밥 1인분 상차림. '충무'는 '통영'의 예전 이름이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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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림책에 소품으로 나오는 충무김밥입니다. 동피랑마을 아래 중앙시장 근처 식당에서 만났습니다. 김 속에 밥 말고는 없는, 정성 부족하고(?) 크기도 작다라한 것을 어찌 먹나 도시에 있을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간단하게 요기 삼아 식당에 들러 먹은 충무깁밥은 생각 외였습니다. 순무와 오징어 무침이 반찬으로 곁들여 나온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그거 아니래도 김밥 한 개 입에 넣으니, 싱겁지 않으면서 깔끔했습니다. 1인분이 4천 원인데 제값을 합니다. 나중에 보니 항구 주변 한 쪽 골목이 충무깁밥집들로 가득했습니다.

손으로 꽉꽉 눌러 찰지게 한 김밥은 더운 날씨에 상하지 않도록 다른 반찬을 넣지 않고 만든 남녘 사람들의 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충무'는 통영의 예전 이름이었고, 행정구역상 통영이 된 이후로는 지도책을 아무리 뒤져봐도 충무는 나오지 않습니다. 통영이 충무이고 충무가 통영입니다. 다만 이 곳을 굳굳히 지켜낸 충무공 어르신을 존경스레 기억할 뿐이지요.

전날부터 비가 흩뿌리던 날씨라 빨래집게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 동피랑마을 전날부터 비가 흩뿌리던 날씨라 빨래집게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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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 그대로 쓰이는 빨랫줄과 빨래집게도 멋진 미술 소품이 됩니다.

우측으로 통영항이 보인다. 동피랑마을은 통영항 동쪽 벼랑 위에 있다.
▲ 보일러 기름통 캔버스 우측으로 통영항이 보인다. 동피랑마을은 통영항 동쪽 벼랑 위에 있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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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동네나 제가 사는 부산 산동네는 기름 보일러를 사용합니다. 지난 번 겨울 경험으로 안 거지만 정말 기름값이 장난이 아닙니다. 벌써 걱정입니다. 이럴 때는 따뜻한 공공장소에 좀더 오래 머물다 집에 갈 일이지요. 암튼 보일러 기름통도 멋진 캔버스가 됩니다. 멀리 통영항이 보입니다. 

동피랑마을 정상에 올라가니 오전부터 생기다 말다 한 빗줄기가 더 굵어졌습니다. 항구 바닷물 위로 상가들의 형형색색 네온사인 자락들이 출렁거립니다. 그 파도 자락을 뚫고 통통배 하나 퇴근하듯 입항합니다. 동피랑 아이가 기다리는 아빠가 타고 있는 배같이 말입니다.

어두워서 밤에는 동네 골목 사이로 들어가 구경하기가 힘들다. 다만 동피랑마을 아래에 넓게 단장된 큰 골목에서는 조명에 비친 벽화들을 올려다볼 수 있다.
▲ 동피랑마을 야경 어두워서 밤에는 동네 골목 사이로 들어가 구경하기가 힘들다. 다만 동피랑마을 아래에 넓게 단장된 큰 골목에서는 조명에 비친 벽화들을 올려다볼 수 있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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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피랑마을의 야경입니다.

역시 밤에 찍은 사진.
▲ 이중주 벽화 역시 밤에 찍은 사진.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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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이중주. 잎사귀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분의 글자는 '함께'이겠지요?

동피랑마을 정상을 오르고 계속 직진하고서 둘러 나가면 동네 한 바퀴를 돌게 됩니다. 이 곳 초입에 있는 황금잉어빵 할머니와 개를 만나보고 가시지요. 잉어빵도 사먹으면서요. 그렇게 내려와 중앙전통시장과 중앙활어시장도 돌아볼 일이지요.

끝으로 이곳에 사는 할머니를 소재로 한 절절한 내용의 시 한 편 전문을 싣습니다. 동피랑마을 아래 넓은 골목에 전시된 시화전 작품 중의 하나입니다.

가풀막에 핀 꽃

          전현배

통영 동피랑,
삐죽이 고개 내민 채 거드름 피우는
꽁치 한 마리
뒷짐 진 꽁무니에 달고 귀갓길 재촉하는
김 간난 할매

어물창고 붙박이로
굴 껍데기 까느라
웅크려 앉아 다 놓쳐버린
물때로 더께지어 각질만 남은
여든 평생,

조붓한 가풀막
한 서린 점액 뱉어 내며
가다 쉬고, 쉬다가는 또 냉큼 몸 일으켜
무겁게 떼어놓는 걸음걸이
칠십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뒷걸음질해보는 십년

초년 과수되어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바람처럼 나뜬 자식들
시린 발등 적실 뜨실 물이 될 깜냥으로
거친 숨 몰아쉬며 오르고 내린 길

손바닥만 한 툇마루에
까칠하게 여윈 하루 내팽기듯 부려놓고
굽은 허리 바짝 세워보면

우두둑 우두둑 소리 내어
앙살하는 나이, 어는 한 곳 겨울 아닌 것이 없어
불거져 내릴 듯해
늘 아슬아슬한 김 씨 할머니

(**가풀막 ; 가파르게 비탈진 곳)


동피랑 아이

이담원 글.그림, 리잼(2011)


태그:#동피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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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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