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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떠난 인천여행은 내게 무궁화호 열차 여행과도 같았다. 내가 사는 공릉동 공릉역에서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온수역까지 간 다음, 1호선으로 환승 후 인천역까지 갔다. 두 시간 반 동안 앉아서 갔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물도 마시고 창밖도 내다보았다. 모든 종류의 열차와 더불어 지상 위의 지하철도 열차다. 

책을 소재로 삼아 떠난 여행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관). 사진작가 윤정미 님이 15펀의 근현대소설을 읽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골라 '소설을 사진으로 각색'한 시도 중 한 작품. 가족은 부서진 집터에서 ‘빈곤의’ 식사를 하고 있다.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윤정미 님 사진 작품을 재촬영한 것. '사진으로 읽는 인천 근현대 소설'(한국근대문학관 기획전시관). 사진작가 윤정미 님이 15펀의 근현대소설을 읽고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골라 '소설을 사진으로 각색'한 시도 중 한 작품. 가족은 부서진 집터에서 ‘빈곤의’ 식사를 하고 있다.
ⓒ 윤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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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인천을 배경으로 한 조세희 작가(1942~2022년)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오정희 작가(1947년~)의 <중국인 거리>를 소재로 삼아 떠난 여행이다. 

많은 이들이 아는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은 단편집 중 네 번째에 해당하는 소설이다. '서울시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재개발지역 내 난쟁이 가족의 이야기이다(바른 표기는 '난쟁이'다). 

난쟁이에겐 두 아들과 딸이 있는데, <난쏘공>의 1장은 큰아들 영수, 2장은 둘째 아들 영호, 3장은 막내딸 영희의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다. 세 자녀의 각기 다른 시각으로 자신이 한 일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 주변 환경을 소개하며 글을 얼기설기 얽고 있다. 집이 철거돼 은강시(인천시)로 오기 전의 일이다. 

두 번째 단편 <칼날>에서는 옆동네 이웃인 신애가 억울하게 거인 같은 사나이에게 구타당하고 있는 난쟁이 아저씨를 엄호하고 나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약한 몸 어디에 끔찍한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감추어져 있을까 놀랄 정도였다. 이때까지 그와 그의 식구들은 더러운 동네, 더러운 방, 형편없는 식사, 무서운 병, 육체적인 피로, 그리고 여러 모양의 탈을 쓰고 눌러오는 갖가지 시련을 잘도 극복해왔다.'(<칼날> 중에서)
   
공원(노동자)들에게 너무도 중요했던 우체국.
▲ 인천만석동우체국. 공원(노동자)들에게 너무도 중요했던 우체국.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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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난쟁이 아버지는 은강시를 다룬 작품들에서는 추억으로만 나온다. 우리가 처음 그 흔적을 둘러본 은강시 북부지역의 구체적 모습은 일곱 번째 소설 <기계 도시>에 자세히 소개돼 있다. 영수, 영호, 영희가 일한 그 기계 도시의 현재 모습을 둘러보았다. 활처럼 둥그렇게 휘어져 있는 경인선 전철 너머 인천시 동구 만석동이 그곳이다. 

지금은 거의 흔적이 없지만, 원래는 이 북부 공업지대를 위한 산업철도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오정희 작가의 <중국인 거리>에서 소녀를 비롯한 꼬마 무리들이 조개탄을 훔치는 곳도 아마 이 산업철도였을 것이다. 이 주변이 다 매립지역이라는 게 놀라웠다. 

소설 속 난쟁이 아내와 자식들이 이사해 살았던 만석 3차 아파트를 위한 용지, 만석어린이공원, 동일방직(소설 속 은강방직) 사택, 공원(노동자)들이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기 위해 수없이 들렀던 만석동우체국도 살펴보았다.

<잘못은 신에게도 있다> 작품에서는 밤샘 작업하다가 깜박 졸고 있는 영희의 팔에 반장이 옷핀으로 찔러 깨우는 장면이 나온다. 가슴 아픈 내용이다. 

인천역 주변으로 돌아와 한국근대문학관으로 향했다. 우선 기획전시실을 관람했다. <난쏘공>과 더불어 위와 같이 오정희 작가의 <중국인 거리> 사진 작품도 볼 수 있었다. 술에 취한 미군이 2층에서 던져버려 죽고 만 매기언니의 시신을 작품화했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시절 주인공 소녀는 이 사건 이전, 성당(지금의 답동성당)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일정한 파문과 간격으로 한없이 계속되는, 극도로 절제되고 온갖 욕망과 성질을 단 하나의 동그라미로 단순화시킨 그 소리에서 한밤중 꿈속에서 깨어나 문득 듣게 되는 여름밤의 먼 우렛소리, 혹은 깊은 밤 고달프게 달려가는 기차 바퀴 소리에서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두려움과 비밀스러움이 있었다.' <중국인 거리> 중에서 

오정희 작가의 문체 미학이 이런 구절들에 숨어 있다. 

이날, 한국근대문학관 도서열람실에서 대선배님의 작품론을 들었다. 

왜 아직도 이 소설이 읽히는가 슬퍼했다는 작가

<난쏘공>을 옴니버스 소설이라 칭한다. 옴니버스라서 좋은 점이 각각을 독립된 작품으로 만들면서,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놀랍게도 조세희 작가는 70년대에 서울 재개발 현장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곧바로 문방구에 가서 펜과 노트를 사서 <난쏘공>을 썼다고 한다.

작가는 생전, 2000년대가 넘어서도 이 소설이 읽힌다는 걸 슬퍼했다고 한다. 재개발 지역의 입주권 관련한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오정희 작가의 <중국인 거리>에 나오는 '중국인 거리'(지금의 차이나타운)은 청나라 조계지다. 상업활동을 하려는 외세에 의해 억지로 열린 개항지 인천의 청나라, 일본, 그 외 각국 조계지는 쉽게 말해 '외국인 거류지', 치외법권지역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오정희 작가가 10살 전후 무렵의 기억을 더듬어 소설을 썼지만, 쓰는 동안에 이곳에 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상상력 발휘에 저해가 될까 봐서다. 그렇게 했어도 <중국인 거리>는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완성형의 미학 소설로 남아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사진.
▲ 개항 시기 인천항.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사진.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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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청 주변에서 바라본 인천항은 거리가 한참 된다. 그러나 개항 시기 사진을 보면 수십 척 배들이 지척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무척이나 넓은 바다 개펄이 매립된 것이다. 

<중국인 거리>에 보면 소녀가 맥아더 동상에 올라가 바닷가와 중국인 거리를 보며 그 어린 나이에도 "인생이란……" 하고 답 없는 질문을 혼자 중얼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맥아더 동상은 한 없이 큰 거인이다. 어른도 올라갈 수 없다. 해설사에게 물어보니 1957년 지어진 현재 동상 이전에, 전쟁 후 작게 동상을 지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곳을 소녀가 장군의 망원경 위치까지 올라간 것, 소설 읽을 때 들었던 의문이 그제야 풀렸다. 

한편, 소설 속 난쟁이 아버지가 손가락을 가리키며 천문대 일을 하고 싶어 하던 달의 4월 1일 새벽 모습은 하현 반달이다. 그런 꿈과 환상을 비루한 현실이라는 판에 조각하는 작업이 문학일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그 조각 작품에 손을 대 위안을 받는 것에 그칠지라도 말이다. 

조세희 작가는 속도감 있는 단문, 오정희 작가는 머물러 있는 듯한 미문(美文)이라는 조각칼을 사용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인천기행이 가져다준 몽상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인천, #난쏘공, #중국인거리, #문학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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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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