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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없네. 도대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 거야?"

 

대전현충원 언덕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취재진은 지쳐갔다. 서울현충원은 나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목적지까지 900m가 남은 건 마찬가지였다. '국립묘지의 최고봉'인 현충원을 가볍게 여긴 '벌'이었다.

 

취재진이 19일 국립 서울·대전 현충원을 찾은 발단은 얼마 전 논란이 됐던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 안장 문제였다. 2010년 10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안장할 때도 시끄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선 현충원이 어떤 곳인지 직접 보고 싶었다.

 

묘역의 높이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불끈 솟아올랐다가는 엎드리는 듯 줄기와 봉우리, 병풍처럼 둘러친 좌우능선이 좌청룡·우백호를 이루고 있어….'

 

국립 서울·대전 두 현충원의 웅장함을 보여주는 수사들이다. 서울현충원은 관악산, 대전현충원은 계룡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직접 본 서울·대전현충원은 산 따라 솟구쳐 내려 이룬 능선을 따라 묘역들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묘역이 높은 곳에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찾는 묘역들만이 유독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국가원수', '장군', '국가유공자', '국가․사회공헌자'. 그곳에 있는 인물들은 이른 바 '높으신 분'들이었다. '그분'들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높았다.

 

대전현충원의 셔틀버스 운전기사는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은 아직 멀었다"며 "애국지사, 장군 1묘역과 함께 '저 위에' 있다"고 말했다.

 

당겨오는 허벅지를 툭툭 때리며 겨우 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높으신 분'들에게 이르는 길엔 특별히 화강암 계단이 '3단'으로 펼쳐져 있었다. 올라오면서 봤던 사병·장교 묘역에선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위치한 곳의 높이'가 그분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서울현충원은 고인의 '과거'에 따라 계단이 더 많았다. 서울현충원 가장 위, 그것도 정가운데엔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묘역이 있다. 장군 묘역도 특별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를 한 호랑이 비석이 늠름하게 서있었다. 반면 애국지사·임시정부 묘역과 장교·사병들이 안장된 묘역은 장군묘역보다 아래쪽에 있었다.

 

국립묘지의 한 관계자는 서울현충원 묘역 배치 기준과 관련해 "현재 위치만 가지고 말하기엔 좀…"이라고 말끝을 흐리더니 이렇게 해명했다.

 

"서울 현충원은 1955년 국군묘지로 시작해 처음엔 군인들만 안장했었고, 군인 계급별로 안장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배치가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군대에서 중요한 건 계급이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높은 계급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후 65년 말에 국립묘지가 되면서 빈자리에 국가유공자, 그 다음에 애국지사, 임시정부 묘역을 설치했습니다."

 

궁금한 게 하나 더 있었다. 서울현충원은 왜 국가유공자 묘역보다 임시정부·애국지사 묘역이 아래쪽에 자리하게 된 것일까. 이 관계자로부터 "당시 묘지 설치 기록이 없어 설명드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번 묻히면 문제가 있어도 쉽게 이장할 수 없어"

 

다시 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으로 다가갔다. 묘역 앞 정자에 경비원이 앉아 있었다. 취재진을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요즘 안현태씨 안장문제 때문에 시끄러워서 (안현태씨 묘역을) 주의 깊게 봐줘야 한다"고 답했다.

 

근무 교대시간이 되자 다른 경비원이 왔다. 그는 취재진에게 좀더 자세한 근황을 들려주었다.

 

"혹시나 5·18 단체에서 안현태씨 무덤에 해를 가할까 봐 저쪽을 유심히 봐야 해요. 말뚝 같은 거 박으면 어떡합니까? 49제때도 5·18 쪽에서 많이들 왔었어요. 엄청 힘들었어요."

 

그래도 황장엽 전 비서 안장 때보다는 약했단다. 그는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서 '북한에서 황장엽 무덤을 파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며 "그때는 밤까지 보초를 서며 묘역을 감시했다"고 귀띔했다.

 

안현태·황장엽씨 외에도 안장문제로 논란이 된 인물은 더 있었다. 대전현충원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김창룡, 민복기씨 등이 안장돼 있다. 이들의 이장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서울현충원 관계자가 친일전력으로 큰 논란이 됐던 백선엽씨를 서울현충원에 안장할 예정이라고 밝혀 논란이 더욱 커졌다.

 

논란이 될 만한 인사들을 현충원에 안장하는 이유가 뭘까? 경비원은 이렇게 답했다.

 

"기준만 통과하면 여기에 안장될 수 있어요. 안현태씨도 마찬가지고. 한번 묻히면 나가기 힘들죠. 문제가 있다 해도 쉽게 이장할 순 없을 겁니다. 그리고 여기선 우리 같은 경비들이 수시로 지켜주니깐 안전해요."

 

대전 현충원에서 만난 한 관리인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현태씨가 들어왔다는 건 앞으로도 5공 때 인물들이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는 말"이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 사후 안장문제에 직면하면 더 시끄러워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천하의 나쁜 놈도 판단 기준에 맞으면 통과시켜준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도 기준에 맞으면 사후에 안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옛날엔 훈장도 몇 개나 있어야 안장이 됐지만, 대전 현충원이 보훈처로 넘어오면서 안장 기준 폭이 넓어졌다. 안장 기준만 맞으면 안장 해준다. 안현태씨도 복권된 사람이니 보훈처에선 그의 안장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덧붙이는 글 | 이주영·김민석·윤성원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국립묘지, #현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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