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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표지
 <질문?!> 표지
ⓒ 에코리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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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참 이상하다. 장마 때도 비가 많이 왔고, 장마가 지난 다음에도 날마다 비가 온다. 비가 이렇게 오래도록 그리고 많이 내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2011년 7월 한 달 동안 서울에는 1100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왔다. 지난 30년 동안 서울 연평균 강우량이 1450밀리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강우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비가 올 때 길을 걷다보면 지렁이와 개미들이 자주 눈에 띈다. 몸이 퉁퉁 불어 저세상으로 가버린 지렁이를 가엾이 여기는 시선도 있지만, 징그러워 집밖으로 안 나오는 여성도 있다. 그런데 나의 궁금증은 다른 데 있다. 비가 적잖게 내리는데 왜 개미들은 우산을 쓰지 않는 것일까. 어째서 오는 비를 고스란히 맞고 돌아다니는 것일까.

과학 분야 프리랜서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랑가 요게슈바어의 <질문?!>은 여러 가지 의문에 빠진 사람들에게 적절한 해답을 제시한다. 책의 부제가 그것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일상의 궁금증에 관한 과학적 풀이.' <질문?!>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사소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그 끝을 알기 어려운 우주의 신비에 이르는 문제까지 다룬다. 

인간의 신체는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사람이 살면서 절대로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게 있다. 운명 말고 무엇일까. 웬만한 것은 다 참거나 이겨낼 수 있지만 도무지 안 되는 게 하나 있다. 설사나 구토는 죽기 살기로 버티면 견딜 수 있다. 재채기도 적절한 시점에 코를 움켜쥐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딸꾹질은 물을 마시거나 숨을 멈추면 어느 샌가 멈춰있음을 알게 된다. 답은 소름이다.

소름은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 소름을 유발하는 주원인은 흥분과 공포 그리고 추위다. 소름은 피부의 상층이 살짝 부풀면서 무수한 돌기가 형성된다는 것을 뜻한다. 조상들의 무성한 털은 진화과정에서 퇴화했지만, 추위를 막기 위해 털을 곤두세우는 반사작용은 그대로 남아 털이 성긴 우리 피부에서 소름이 돋음으로써 나타난다.(51-52쪽)

제22회 '청룡영화상'에서 이제는 고인이 된 배우 장진영에게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겨준 <소름>(2001)을 기억하시는지. 미금아파트 504호에서 벌어지는 연쇄적인 죽음의 미스터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숨 막히는 스릴러. 제목처럼 관객들은 누구나 머리털이 쭈뼛거리고 온몸에서 소름이 돋는 경험을 기억할 것이다. 소름은 세상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세계 여성들의 80퍼센트는 자신들의 발이 차다고 불평한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에 발이 차다고 투덜거리는 남성은 상대적으로 그 수효가 훨씬 적다. 왜 그럴까.

체온유지 관리 면에서 남자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체중의 40%가 근육이다. 근육이 활동할 때 쓰이는 에너지 가운데 일에 투입되는 비율은 3분의 1이고, 나머지는 열로 발산된다. 근육이 난방장치인데 여자는 23%만 근육이다. 남녀가 몸집이 같다 해도 피부표면적은 젖가슴 가진 여자가 더 크고, 따라서 열손실도 여자가 더 크다.(57-58쪽)

우주와 자연에 대하여

인간이 맨눈으로 볼 수 있는 가장 먼 물체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500미터 혹은 1000미터. 아니면 10킬로미터나 20킬로미터 쯤 될까.

우리 은하 근처에는 모양이 비슷한 이웃 은하가 있다. 그것은 밤하늘의 안드로메다자리에서 관찰되며 맨눈으로도 볼 수 있다. 맨눈으로 보면 흐릿한 별 하나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안드로메다은하는 우리에게서 270만 광년 떨어져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보는 안드로메다은하의 빛은 270만 년 전에 출발한 빛이다.(79쪽)

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다. 빛의 속도로 270만 년을 달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의 은하를 맨눈으로 볼 수 있다니. 정말 소름 돋는 이야기다. 그런데 안드로메다은하는 초속 266킬로미터의 속도로 우리 은하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약 30억 년 뒤에 안드로메다은하와 우리 은하가 충돌할 것으로 예측된다. 종말이다. 너무 먼 얘기지만.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 일부 중국인들은 자기네가 동시에 바다에 오줌을 싸면 가라앉을 나라가 일본이라고 생각했다는 우스개가 있다. 혹시 이런 생각은 어떤가. 중국인 13억 명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땅에 떨어진다면 어떤 규모의 지진이 일어날까. 해답은 조금 실망스럽다. 사람이 약한 진동을 느끼는 진도 3의 지진이 일어난다고 한다.

진원에서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진폭 1밀리미터의 진동이 감지되면 지진강도는 정확히 리히터 규모 3이다. 리히터 규모는 지진으로 방출된 에너지양을 알려준다. 리히터 규모는 선형이 아니라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한다. 규모 4인 지진은 규모 3인 지진보다 10배 강하고, 규모 5인 지진은 규모 3인 지진보다 100배 강하다.(95쪽)

지난 3월 11일 일본을 휩쓴 대지진은 리히터 규모 8.8이었다.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가 하루 만에 1만 30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남극대륙의 빙하를 파괴하는 장면이 8월 11일 사진으로 보도되었다. 이번에 부서져 나온 빙산 덩어리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가로 9.5킬로미터, 세로 6.5킬로미터로 여의도 면적의 약 7배에 달했다. 실로 엄청난 파괴력이다.

동물의 비밀과 숫자 이야기

채소와 과일 뿐 아니라, 달걀 값이 많이 올라서 주부들의 장바구니 물가가 심상찮다는 소식이 들린다. 달걀에는 두 가지 색깔이 있다. 하얀색과 갈색이다. 그런데 어떤 닭이 하얀색 달걀을 낳고, 어떤 닭이 갈색 달걀을 낳을까. 하얀 닭은 하얀색 달걀을 낳고, 갈색 닭은 갈색 달걀을 낳을까. 아니면 닭들 마음대로 시시때때로 달걀 색깔을 바꾸는 것일까.

하얀 닭은 하얀 달걀을 낳고, 갈색 닭은 갈색 달걀을 낳는다는 말은 틀렸다. 달걀 껍데기 색깔은 닭의 깃털 색깔과 무관하다. 갈색 달걀을 낳는 하얀 닭, 하얀 달걀을 낳는 갈색 닭, 갈색 달걀을 낳는 갈색 닭, 하얀 달걀을 낳는 하얀 닭이 있다. 닭 한 마리는 하얀 달걀만 낳거나 갈색 달걀만 낳지, 하얀 달걀과 갈색 달걀 모두를 낳는 일은 없다.(145쪽)

이런 이야기와 함께 숫자에 관한 논의도 자못 흥미롭다. 숫자 0은 인도에서 발명되어 13세기 초에 아랍인과 이탈리아인이 교역한 덕분에 유럽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유럽에서 0은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유럽에서 무(無)는 신이 없는 공간, 금지된 공간이자 금기였기 때문이다. 공백공포는 수백 년 동안 서양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생각을 지배했다.

0이 거친 여정은 언어에서도 드러난다. 0을 뜻하는 인도어 수냐(sunya)는 아랍어 시프르(sifr)가 되었다. 시프르는 이탈리아에서 제피로(zefiro)로 변형되었다. 제피로는 베네치아 사투리에서 제로(zero)가 되었다. 영어 제로는 그 사투리에서 유래했다.(295쪽)

지은이는 108번째 항목인 '이 책에 실린 글은 왜 108꼭지일까?!'에서 숫자 108에 담긴 함의를 12와 9, 그리고 108과 연관시켜 재미나게 설명한다.

12와 9는 특별한 힘을 가진 수다. 12는 완전수이고, 9는 특히 아시아에서 독특한 마법을 발휘하는 수다. 임의의 수에 9를 곱한 결과의 각 자릿수를 모두 더한 값은 언제나 9의 배수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는 대략 태양 지름의 108배이며,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는 대략 달 지름의 108배다. 이렇게 지름과 거리의 비율이 같기 때문에 지구에서 본 태양과 달은 크기가 거의 같다.(317-320쪽)  

글을 마치면서

<질문?!>에 담겨 있는 108가지 짤막한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어렵거나 복잡한 수식을 동원하지 않으며, 장황하게 너스레를 떨지도 않는다. 아주 간명하고 명쾌하게 논지를 풀어나간다. 손수건은 모두 왜 정사각형일까, 눈이 내리면 왜 사방이 고요해지는 것일까, 철새들은 왜 브이 자 대형으로 날아갈까, 모기는 누구를 좋아할까 등등.   

하지만 서책에는 개미가 비를 맞으면서도 어째서 우산을 쓰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 없었다. 며칠을 곰곰 생각하다가 동료에게 물었더니 맞춤한(?) 대답이 돌아왔다.

"개미에게는 특수 장비가 장착돼있다. 온몸을 고어텍스가 감싸고 있기 때문에 따로 우산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햇볕이 쨍쨍할 날에는 풀이파리를 물고가면서 자외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양산도 필요 없다."
"으으~ 이럴 수가."

인간이 오늘날 진화의 사다리 정점에 올라서서 세상을 호령하는 배경에는 지적 호기심이 자리한다. 끝없는 궁금증을 가지고 '왜'와 '어떻게'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해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혹시 산소통을 짊어지거나 혹은 무산소로 에베레스트에 올라간 코끼리나 개미를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달나라에 가보려 했던 원숭이나 치타를 보셨는지.

덧붙이는 글 | <질문?!>(랑가 요게슈바어 쓰고 그림, 전대호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2011년)



질문?! - 일상의 궁금증에 대한 과학적 풀이

랑가 요게슈바어 지음, 전대호 옮김, 에코리브르(2011)


태그:#궁금증, #자연, #과학,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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